효율, 표준화, 그리고 완벽한 개인화에 대하여
AI 시대의 교육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라오다 보면, 오히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AI 시대의 교육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은 지금까지 교육이 '성과'라고 믿어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효율은 언제부터 교육의 미덕이 되었을까
효율은 분명 중요하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더 적은 노력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 산업사회 이후 교육은 효율을 중심 가치로 삼아왔다. 표준화된 교과과정, 학년제, 시험과 성적. 이 모든 것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AI는 이 흐름을 극대화한다. 2023년 우루과이의 한 초등학교에서 110명의 학생(8-14세)을 대상으로 ChatGPT를 활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AI가 학생들의 지식 수준에 맞춰 학습 자료를 동적으로 조정했다. 결과는? 학생들의 학습 자료 집중도가 향상되었고, 학습 성과가 개선되었으며, 교육 효율성이 증가했다.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교육처럼 보인다. 개인에게 맞춘 학습 경로, 즉각적인 피드백, 불필요한 반복의 제거.
하지만 교육학자들은 이런 단기 성과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Monash University의 Neil Selwyn 교수는 2022년 연구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교육 상황의 맥락적 층위를 통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회적 구성요소의 폭에 의해 본질적으로 타협될 수밖에 없다." 그는 AI가 "기술적으로는 스마트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리석은" 시스템이 될 위험을 경고하며, 교육을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더 우려스러운 발견도 있다. 2021년 Harati 등의 연구는 잘 알려진 학습 플랫폼에서 학생들의 자기조절 학습(Self-Regulated Learning) 능력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음을 보여줬다. 2024년 Deng 등의 메타분석도 비슷한 결과를 보고한다. AI 사용으로 단기 성과는 증가했지만 학생들의 정신적 노력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학생의 필요를 미리 예측하고 최적화된 경로를 제시할수록, 학생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교육에서의 효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효율인가? 교육은 언제부터 '빠름'을 목표로 삼았을까?
빠른 이해, 빠른 성취, 빠른 결과
빠른 이해, 빠른 성취, 빠른 결과. AI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2024-2025년 여러 조사에 따르면, 기업 교육에서 AI 기반 학습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학습 효율성이 57% 증가했다. 교사들의 행정 업무 시간도 44% 단축되었다.
그러나 사유의 역사에서 보면, 중요한 생각들은 거의 언제나 느렸다. 그리스의 철학도, 과학의 탄생도, 모두 비효율적인 사유의 산물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 오래 머물렀고, 여러 번 실패했고, 종종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2024년 Fan 등의 연구는 ChatGPT 사용이 "메타인지적 게으름"을 유발한다고 보고한다. 학습자들이 GenAI 지원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메타인지 과정 참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2025년 Gerlich의 연구는 더 나아가 GenAI의 빈번한 사용이 비판적 사고 능력과 부적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밝혔다. 인지적 부담을 AI에 떠넘기는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이 매개 요인으로 작용한다.
AI 시대의 교육이 오직 빠름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교육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속도를 포기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표준화는 언제부터 안전한 선택이 되었을까
표준화는 교육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기회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질을 보장한다. 그러나 표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표준화된 교육은 표준화된 질문만 허용하고, 표준화된 답만 평가한다.
AI는 이 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데이터는 평균을 좋아하고,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경로를 선호한다. 그 결과, 표준에서 벗어난 사고는 점점 더 "비효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질문은 언제나 표준에서 어긋난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교육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했다. 정교한 개인화 학습 시스템이 오히려 학습자의 주체성(agency)과 자기조절(self-regulation)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21년 Dignath와 Veenman은 자기조절 학습을 향상시키는 4가지 필수 조건을 제시했다. 자기주도성(의사결정 자유), 협력 학습(학생들의 협업), 구성주의적 학습 원리(여러 해결책이 있는 문제), 그리고 전이에 대한 초점(실생활 맥락으로의 통합). 그러나 많은 AI 개인화 학습 시스템은 이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 시스템이 학생의 필요를 미리 예측하고 최적화된 경로를 제시할수록, 학생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감소한다. AI가 모든 결정을 대신해주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점점 더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AI 시대의 교육이 표준화를 포기하지 못한다면, 질문 역시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완벽한 개인화는 정말 이상적인가
개인화 학습은 AI 교육의 가장 매력적인 약속이다. 2024년 파키스탄 489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학생들은 AI가 개인의 학습 여정을 지원하고, 학습을 개인의 속도에 맞추며, 효율성과 참여에 대한 즉각적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놓치기 쉬운 전제가 있다. 완벽한 개인화는 학습자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각자의 수준에 맞는 콘텐츠, 각자의 속도에 맞는 진도,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는 피드백.
하지만 질문은 종종 자신의 수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태어나고, 타인의 사고와 충돌하는 순간에 생긴다. 너무 잘 맞춰진 교육은 학습자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흔들지는 못한다.
1963년 Richard Held와 Alan Hein의 실험을 생각해보자.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어둠 속에서 키웠다. 한 마리(A)는 스스로 회전목마를 돌릴 수 있었고, 다른 한 마리(P)는 바구니에 담겨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두 고양이 모두 같은 시각 자극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자기주도적 움직임을 보인 고양이 A만이 정상적인 시력을 발달시켰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수동적 학습자는 능동적 학습자처럼 발달하지 않는다. 학습에는 주체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완벽한 개인화를 목표로 삼기보다, 의도적인 어긋남과 충돌의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포기란 후퇴가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 AI를 쓰지 말자는 말인가?" "기술 발전을 거부하자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포기란 후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2023년 미국 교육부 보고서는 이렇게 경고한다. "AI가 교육적 의사결정을 대규모로 자동화할 때, 교육자들은 원치 않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일부 학생에게는 교육 과정 속도를 높이고 다른 학생에게는 속도를 낮춘다면(불완전한 데이터, 빈약한 이론, 또는 학습에 대한 편향된 가정에 기반하여), 성취도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
AI 시대의 교육은 모든 것을 최적화하려는 유혹 앞에서 어디까지를 교육의 영역으로 남길 것인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빠를 수 있지만, 일부러 느리게 남겨둘 것. 정확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애매하게 남겨둘 것. 편리할 수 있지만, 일부러 불편하게 남겨둘 것.
이 선택이 없다면, 교육은 기술의 하위 기능으로 흡수된다.
다시, 다음 질문으로
그래서 우리는 다시 다음 질문 앞에 선다.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한 뒤에도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AI 시대에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2025년 전망에 따르면, AI 교육 시장은 2025년 75억 7천만 달러에서 2034년 1,123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술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교육은 무엇을 버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끝까지 붙잡을 것인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