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불편함, 그리고 느린 사고
AI 시대의 교육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효율, 속도, 표준화, 완벽한 개인화. 이것들은 더 이상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아니 어쩌면 대신하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 교육은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질문은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우리는 흔히 질문을 교육의 성과나 심화 단계로 생각해 왔다. 지식을 어느 정도 익힌 뒤에야 질문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라오면, 이 순서는 거꾸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질문은 배움의 결과가 아니라, 배움이 시작되기 위한 조건이다. 질문이 없으면 지식은 정보로 남고, 학습은 소비로 끝난다.
2025년 SBS 스위스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게를리히가 영국에서 6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명확한 결과를 보여준다. AI 도구 사용과 비판적 사고 능력 사이에 강한 역상관관계가 있었다. AI 사용이 많을수록 비판적 사고 점수는 낮았다. 특히 17-25세의 젊은 참가자들이 AI 도구에 더 의존했고, 비판적 사고 점수가 더 낮았다.
연구에 참여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AI 도구를 거의 모든 것에 사용합니다. 식당을 찾거나 업무에서 빠른 결정을 내릴 때도요. 시간은 절약되지만, 예전만큼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아 걱정됩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더 솔직했다. "AI에 너무 의존해서 그것 없이는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AI 시대의 교육이 질문을 다시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질문이야말로 인간이 시스템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게 만드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장치이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다
지금까지 교육은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해하기 쉬운 설명, 즉각적인 피드백, 좌절하지 않도록 설계된 학습 경로. AI는 이 흐름을 완성에 가깝게 만든다.
그러나 불편함은 교육의 결함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 말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태. 이 불편함 속에서 사람은 멈추고, 돌아보고, 질문을 만든다.
최근 PMC에 발표된 연구는 이를 "인지적 역설(cognitive paradox)"이라고 부른다. AI는 개인화된 교수와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학생들이 AI 기반 답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비판적 사고와 자기 추론 같은 필수적인 정신 작용을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이다.
2024년 뮌헨 공과대학의 연구는 더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한다. LLM을 사용해 글쓰기 과제를 수행한 대학생들은 인지 부하가 감소했지만, 전통적 검색 방법을 사용한 학생들에 비해 추론과 논증 능력이 더 낮았다. 다른 연구에서는 LLM을 사용한 학생들이 더 좁은 범위의 아이디어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더 편향되고 피상적인 분석을 했다.
AI 시대의 교육은 이 불편함을 제거하는 대신, 안전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불편함을 견딜 수 있게 돕는 것, 그 자체가 교육이 된다.
느린 사고는 시대착오적인가
느리게 생각하는 것은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는 종종 비효율이나 뒤처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느린 사고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느린 사고란 바로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며, 스스로 납득할 시간을 허용하는 사고다.
웨스턴 미시간 대학의 교육 자료는 이렇게 지적한다. "AI는 사고를 자극하는 질문, 반론, 토론 프롬프트를 생성하는 데 탁월하다. 학습자들은 이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피상적 참여를 조장할 수 있으며, 학습자들이 자신의 분석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데이터 생성과 아이디어 형성을 위해 기술에 더 의존하게 될 수 있다."
AI는 빠른 답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 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AI 시대의 교육이 느린 사고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책임은 느린 사고에서만 생기기 때문이다.
책임은 교육의 마지막 주제다
AI는 답을 제안할 수 있고, 판단을 도울 수 있으며, 선택의 근거를 정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을 "내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뿐이다.
책임은 누군가 대신 생각해 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생기지 않는다. 왜 이 답을 선택했는가, 다른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그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판단은 인간의 것이 된다.
여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이 있다. "인지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이다. 개인이 정신적 노력을 외부 도구에 전가하는 현상이다. 간단한 계산을 계산기에 맡기는 것은 실용적이지만, 복잡한 추론 작업까지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학생들의 분석적 사고와 독립적 문제 해결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학생들이 가설을 형성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필수적인 인지적 노력을 건너뛸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과학적 탐구의 근본적인 기술입니다."
AI 시대의 교육이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책임의 감각이다.
교육은 무엇을 하는 일인가
여기까지 오면 교육에 대한 정의는 조금 달라져 보인다. 교육은 더 이상 더 많은 지식을 주는 일이 아니고, 더 빠르게 문제를 풀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AI 시대의 교육은 인간이 질문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이다. 질문할 시간을 남겨두고, 불편함을 제거하지 않으며, 느리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선택의 문제다.
미국과학교사협회(NSTA)는 AI 시대의 과학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1. 과학 데이터와의 능동적 참여 촉진: AI가 답을 생성하게 하는 대신, 학생들이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스스로 해석하게 한다.
2. 증거 기반 추론을 통한 가설 검증: 학생들이 추가 연구와 증거 기반 추론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게 한다.
3. AI를 정보의 출처가 아닌 과학적 탐구에 참여하는 수단으로 활용: 적절히 계획되고 모델링되면, AI는 정보의 출처가 아니라 더 깊은 수준에서 과학적 탐구에 참여하는 수단이 된다.
다시, 프롤로그의 질문으로 돌아가며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다. 질문이 사라질 때, 교육은 무엇이 되는가?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질문이 사라질 때, 교육은 훈련이 된다. 하지만 질문을 지켜낼 때, 교육은 여전히 인간을 변화시킨다.
2025년 Big Think와의 인터뷰에서 게를리히는 AI의 양면성을 강조했다. "AI가 해방시킨 인지 자원을 혁신적 과제에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연구와 관련 연구들은 많은 사용자들이 이 자원을 AI가 큐레이션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I 시대의 교육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만큼이나, 사라지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교육은 언제나 그래왔다. 시대가 가장 쉽게 놓아버리려는 것을, 끝까지 붙잡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