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인가 현실인가? 혹은 자아 비판
2학기가 되어 교실을 들어가면 나와 아이들 사이에 다른 공간이 멀티버스처럼 나누어진다.
몇몇 아이들(아주 소수)은 자신의 수능 공부를 하고, 다수의 아이들은 잠을 잔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이러한 풍경을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시스템의 문제이다.
수시와 정시로 나뉜 입시제도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시를 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능은 최저기준(상위권 대학만 있거나 최저기준이 약하다: 그래서 공부도 적당히 한다.)이거나 필요 없다(대부분의 지방대나 종합전형은 생기부만 본다.:그래서 수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수시 생기부가 마감되는 1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의 상당수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 찬란하게 아름다운 10대의 시간을 자면서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저녁에는 학원을 간다.: 부모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대피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그러니까 학교에서 잠을 잔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핑개거리일 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1) 수시에서 높게 쓰면 안 될 수도 있으니 수능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2) 좀 더 좋은 대학, 학과를 가려고 끝까지 공부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결론 먼저 말하자면
착각이다.
(1) 아이들은 대부분은
“수시에서 6개나 쓰는데 설마 떨어질까”
“어차피 수시로 들어가는데 뭐 하러 수능 공부를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 한 곳은 합격한다.
저출산의 시대라 대학은 학생수가 모자라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하게 꿈을 조정한다.
(2) 아이들의 꿈은 고1 때는 스카이, 고2 때는 서울권대, 고3 되면 지역거점대로 바뀐다. 꿈은 있으나 의욕은 없고, 의욕이 있어도 노력의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굳이 노력하며 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쉽게, 적당히 잘 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의 잔소리에 귀를 막고
잔다.
요즘은 고교학점제 여파로 많은 과목이 비수능과목이고 진로선택과목이다. 참 신기하게도 수능 공부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비수능, 진로 과목이라서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교사에게 눈치를 준다.
땀 흘리면 수업하고 나가는 나에게 한 학생이 위로하듯 말한다.
“비수능 과목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조언(?)이다.
예전에는 억지로라도 아이들 깨우고, 큰소리로 못 자게 하고, 혼 내기도 했지만… 다 먼 옛날이야기다.
언제 어디서 학부모 신고, 민원, 교육청, 인권위에 고발될지 모르는 불안으로 조심스러운 고양이처럼 소심하다.
예전에 졸업하고 대학 간 제자가 문자로
“선생님 덕분에 학창 시절 추억이 너무 많아 감사드린다.”는 말은 이제 말 그대로 추억이 되었다. 요즘은 1년, 2년을 같이 보낸 아이들과도 별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
내 열정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교사는 롤모델이거나, 나침반이거나, 이상형이거나, 연예인이 아닌 것이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환상적이지도 않고, 그냥 식상한 꼰대일 뿐… 지금의 우리 교육은 지금의 우리 교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대학과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목표가 된, 의학계열로 몰빵 하는, 인문학이 소멸하는 지금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선생님들은 나락으로 가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수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24. 8. 로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