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역마살 이야기
내게는 흔히 말하는 역마살(驛馬煞 : 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팔자)이 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들과 옆 동네들을 걸어서 돌아다니곤 했다. 금호동, 응봉동, 장충동, 약수동, 한남동까지… 가끔은 옥수동에서도 너무 먼 성수동, 광장동까지도 큰 집 제사에 맞춰 혼자 걸어서 찾아가곤 했다.
걸어서 간 이유는 내게 차멀미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 뒷좌석에서 버스 바닥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 일부터, 중3 여름 방학 때 동네 친구 녀석과 위액까지 토해내며 금산과 장항(지금의 서천군 장항읍)까지 돌아다닌 것은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다.
<걷기왕>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공감이 갔던 것도 멀미와 걷기의 상관성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부터 걷고, 돌아다니고,
멀미를 멈춘 청년 시절부터 혼자 낯선 도시와 거리에서 걸었던 나의 경험은
마치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알제(알제리의 수도)의 해안을 걷고,
<구토>의 로캉탱처럼 세상에 구토를 느끼고,
퀸의 보헤미안처럼 간절한 외로움으로…그런 마음으로 걸었었고 방황했던 것 같다.
강릉, 속초에서 부산, 울산, 마산, 여수, 목포까지 혼자서 걸었던 수많은 길을 통해
내 역마살은 조금이나마 잠잠하게 수그러 들었다. 그렇게 위로 삼았다.
30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내 역마살은 전주에 살면서 걷기 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아갔다.
전주에 정착한 후에도 가끔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집 떠나 혼자 여행을 다녀오곤 했지만, 이제 이 도시는 걷는 것 만으로 나의 낯섦에 대한 쾌락을 채워주기도 했다. 익숙한 낯설음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그 외로움은 나를 찾는 길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주는 그 무엇,그 실존을 깨닫게 함을….
오늘도 행복한 걷기를 해본다.
이 도시는 참 걷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휴일 이른 아침에 걷는 길은
조금의 상쾌함과 조금의 쓸쓸함, 조금의 밝음과 조금의 숙연함이
내 걸음걸음마다 묻어나 찌릿하게 온몸을 자극한다.
2024년 1월. 로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