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필요없는 이유

하루엽서•스몰 에세이

by ok 온숨

한때는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2박 3일 동안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보이지 않던 자연을 느껴보곤 했죠.

일상도 느슨했지만, 여행지에서 더 느슨한 일상의 안식을 즐겼어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훌쩍 떠날 용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젠 하루 24시간 안에서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헤매는 기분이니까요.

늘 새롭게 들리는 음악, 달그락거리는 선풍기 소리마저 음악처럼 다가오고,

하루 두 끼조차 "무얼 먹을까?"라는 질문이 설레며 복잡하게 다가옵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면 전혀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오고,

익숙했던 말조차 때때로 낯설게 들리곤 해요.


데이터만 연결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작은 사각형 안으로 몰려듭니다.

듣고 싶었던 소리, 보고 싶었던 풍경,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글로, 소리고, 영상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죠.


그걸 느끼고 즐기기에도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멍하니 있고 싶어 멍하니 있다 보면,

그조차도 시간의 끝에 가닿아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여행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어지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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