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미트에서 마주한 현실과 나의 침묵의 50분
월요일 저녁,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흥미로운 공지를 발견했어요. "영어 스피킹 모임 멤버 모집! 초보자 환영!" 이런 제목이었거든요. 설명을 읽어보니 매주 화요일 저녁 8시에 구글 미트로 모여서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초보자 환영"이라는 말에 혹했어요. 그동안 혼자서만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실제로 말해볼 기회가 없어서 답답했거든요. "나처럼 영어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격려하며 연습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바로 참가 신청을 했어요.
화요일 저녁이 되어 설렘반 긴장반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구글 미트 링크를 클릭하니까 벌써 7명 정도가 들어와 있더라고요. 모두들 카메라를 켜고 있어서, 저도 얼른 카메라를 켰죠.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새로운 모임에 처음 참여할 때의 그 어색함과 기대감. 마치 첫 출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모임 대표라는 분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Hi everyone! Welcome to our English speaking club! I hope you're all doing well today. Let's start with a quick round of introductions. Sarah, would you like to go first?"
어? 뭔가 이상했어요. 너무 유창한 거예요. 발음도 좋고, 억양도 자연스럽고... "초보자 환영"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초보가 아닌 것 같은데요?
Sarah라는 분이 자기소개를 시작했어요. "Of course! Hi everyone, I'm Sarah. I've been learning English for about three years now. I recently started reading English novels, and I'm really enjoying it. I work in marketing, so I often need to communicate with international clients..."
제 머릿속은 그때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같았어요. "잠깐, 이게 초보라고?" 3년 공부했다고 하는데, 완전히 자연스럽게 말하잖아요. 그리고 영어 소설을 읽는다고요? 국제 고객과 소통한다고요?
다음 분도 마찬가지였어요. "Hello, I'm Mike. I'm preparing for the IELTS exam, aiming for a band 7. I usually practice speaking by watching TED talks and shadowing the speakers..."
IELTS 7점을 목표로 한다고요? TED 강연으로 쉐도잉 연습을 한다고요? 이분들이 말하는 "초보"와 제가 생각하는 "초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어요.
한 명씩 자기소개가 이어졌는데, 모두들 유창하게 말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유학 경험을 영어로 술술 풀어내고, 또 다른 분은 토익 900점대라면서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왔다고 하고...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예상할 수 있었을 일이지만요. 저는 정말로 이분들과 저의 실력 차이를 실감했어요. 제가 생각한 "초보"는 "Hello, my name is..."도 버벅거리는 수준이었는데, 이분들의 "초보"는 "아직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대화는 가능한" 수준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제 차례가 왔어요. 모임 대표가 저를 보면서 말했어요. "How about you? Could you introduce yourself?"
그 순간, 제 뇌 속 '영어 조종사'는 이미 조종간을 놓고 도망쳤고, 대신 패닉본능 원숭이가 탑승한 상태였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준비했던 자기소개도 다 날아가버렸어요.
"Uh... hi... I'm... my name is Kim..." 시작부터 더듬거렸어요. 다른 분들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건 어설픈 단어들뿐이었어요.
"I... I study English... for... uh... six months? I'm... beginner... very beginner..."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더 부끄러웠어요. 다른 분들은 몇 분씩 자기소개를 했는데, 저는 10초도 안 되는 어색한 문장 몇 개로 끝낸 거거든요.
모임 대표가 친절하게 격려해줬어요. "Thank you for sharing! Don't worry, we're all here to learn and improve together."
하지만 그 격려조차 저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함께 배우고 발전한다"고 하는데, 저만 너무 뒤처져 있는 것 같았거든요.
자기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어요. 주제는 "What's your favorite way to spend weekends?"였어요.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I love hiking! Last weekend I went to Seoraksan and the autumn colors were absolutely breathtaking..."
"I'm more of a homebody. I enjoy cooking new recipes and binge-watching Netflix series..."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대화에 끼어들려고 했어요. 왜냐고요? 나니까요. 모임에 왔으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다들 빠른 속도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저는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뭔가 말하려고 하면 이미 주제가 바뀌어 있었고, 겨우 문장을 구성하면 다른 분이 먼저 말씀하시고...
결국 저는 거의 관찰자가 되어버렸어요. 카메라는 켜놓고 있지만, 입은 거의 열지 않은 채로 다른 분들의 대화를 듣기만 했어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예상과 달랐어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격려하며 천천히 영어 연습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거의 원어민 수준의 사람들이 유창하게 대화하는 자리였던 거죠.
중간에 모임 대표가 저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Kim, what about you? How do you usually spend your weekends?"
모든 시선이 저에게 집중됐어요. 뭔가 대답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한국어로 대답이 나오는 거예요. "주말에는 보통 집에서 쉬면서 넷플릭스 보고, 가끔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이런 내용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I... uh... stay home... and... watch TV... sometimes meet friends..."
정말 어색한 대답이었어요. 문법도 틀렸고, 단어 선택도 어색했고... 다른 분들이 "breathtaking", "binge-watching" 같은 자연스러운 표현을 쓸 때, 저는 중학생 수준의 단어만 사용한 거죠.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어요. "위험! 위험! 실력 차이 심각!" 그제야 깨달았어요. 제가 이 모임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요.
50분간의 모임이 끝나고 나서, 모임 대표가 마무리 인사를 했어요. "Thank you all for joining today! Same time next week, and Kim, I hope to see you again!"
친절한 말씀이었지만, 저는 속으로 "다음 주에는 안 올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모임이 끝나고 컴퓨터를 끄면서 한참 생각했어요. "역시 내 영어 실력은 아직 멀었구나." 다른 분들과 비교하니까 제 부족함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곰곰 생각해봤어요. 모임 자체는 좋은 취지였지만, 제 수준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보자 환영"이라는 말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았던 거죠.
결국 다음 주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어요. 아직 제가 그런 자리에 나갈 준비가 안 된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저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더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영어 모임에 참여하실 때는 "초보"의 기준을 미리 확인해보세요. 음... 그냥 지금은 혼자서라도 꾸준히 연습해야겠네요. 언젠가 다시 도전할 수 있을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