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달라고 하면 사줄게
"밥 사줄게(밥 묵자)"
예전 선배님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밥 사줄게"라는 말을 했을까.
그렇게 샐 수 없이 밥을 얻어먹으며도 "왜 밥 사주세요?"라고 한 번도 묻지 않았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저녁에 특별히 하는 여가활동도 없었고 선배가 밥 사준다고 하니 당연하게 시간을 냈다.
그리고 밥 안 사주는 선배님보다 밥 사주는 선배님이 더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밥 사줄게"라는 말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얼마 전 한 선배님의 개인적인 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시간을 내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좋은 마음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름의 미션 수행이 끝나자 그분은 "밥 먹자. 언제 시간 돼?"라고 하셨다.
내 도움에 대한 보답일 테지만 마음만 받고 싶었다.
하루 시간을 내려면 그날 스케줄도 확인해야 하고, 내가 없는 저녁시간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며 무엇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그냥 집에서 쉬고 싶은 요즘이었다.
그러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건 그 또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시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도 피곤했을까..
불현듯 스치는 생각.
나의 “밥 사줄게”에 함께 했던 후배들도 이러했을까.
내가 하는 이 밥 사주는 베풂과 선배로서의 책무(?)가 내 마음이 중심이 되어 행했던 제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 사줄게(밥 묵자)
나에게 물어본다.
"너 왜 후배들한테 '밥 사줄게'라고 하는 건데?
-그냥 지금 이 집단에서,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있으니까 종종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선배 된 도리?
-후배들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예뻐서 그래서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 안에서 내가 지갑을 열면 매력 있는 선배이지 않을까. 그래야 밥도 먹으며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맛있는 게 천지인 요즘 세상에.
한 끼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가지는 바깥에서 한 끼 식사의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달은 건 아닐까.
특히나 요즘 후배님들은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촘촘한 스케줄이 있는데 선배의 "밥 사줄게"라는 말에 핸드폰 스케쥴러를 열어보는 그 모습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표정 안에 숨겨진 마음은 무엇일까.
정말 아주 쪼금이라도 반갑지 않고 불편함을 부르는 베풂(?)이라면 굳이 꺼낼 필요가 있을까.
선배로서의 베풂,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꼭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함께하는 식사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 이제야 이 생각이 들었으니!
작은 학교에서 함께 일하며 울고 웃으며 인연을 맺은
그야말로 잘해주고 싶고,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은 몇 명의 후배들과 만남을 가졌다.
꼭 고맙고 소중한 마음을 같은 자리 식사로 표현하지 않아도 됨을 깨우치기 전 '밥 사줄게'라는 내 일방적 카톡 메시지로 잡았던 약속이라 고깃집에서 밥묵자를 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딱 기분 좋게 부른 느낌과 함께 각자의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톡으로 스타벅스 상품권을 전송했다.
나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과 함께하는 디저트가 더 맛있지 않을까.
내 마음의 본질은
그들이 내 사랑과 고마움의 표현으로 조금이나마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거니 그 표현 방법이 어떠하면 더 좋을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더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빌러 내 마음을 전하는 일은 줄여나가리라.
그러나 그들이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고 한다면 기쁘게, 반갑게 내 시간을 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까...
이제 후배들과 식사하는 건 공식 회식에서야 가능하겠구나.
띠링-
오랜만에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부장님, 저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ㅋㅋㅋㅋㅋ"
"오늘 보자!"
(후배님, 나도 바쁘긴 하지만 기꺼이 내 저녁 시간을 내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