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 싶으면 질문이 나올 것 같아요.
사회시간이었다.
옛날 가족의 형태는 '확대가족', 농사를 주로 짓고 살았던 옛날엔 일손이 필요해서 아이도 많이 낳고 결혼한 자녀도 한 집에서 살았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농사일을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대강 이런 내용...
그런데 이렇게 잘 진행되던 수업이 이 한 마디로 멈춰졌다.
"얘들아, 지금 너희들 할머니 연세보다는 많겠지? 현재 70대인 할머니들 중엔 너희 나이일 때 여자는 공부를 많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 부모님이 계셨어. 그래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더 높은 학교를 못 간 분들도 많으셔."
"네???"
"여자라고 대학교를 안 보냈다고요?"
"그땐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었어."
"그런 게 어딨어요?"
"옛날에~ 그랬다고~"
"아니 옛날이라도 그건 아니죠! 그런 게 어딨어요!"
혼란을 일으키고자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
'옛~~ 날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좀 더 솔직히는 '우린 배움에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흥분할 줄은 몰랐다.
우리 엄마이야기니까.
엄마는 공부를 더하고 싶었지만 외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시절 엄마는 순순히 받아들였겠지.
내가 고등학생일 땐
남녀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알게 모르게 소소한 차별들이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없었다.
물론 옛날 사람인 엄마는 소소하게 오빠와의 차별을 느끼게 했지만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고
나를 비롯한 내 여고 친구들 누구도
딸이라서 공부를 덜 시키고, 딸이라서 학원을 덜 보내고, 재수를 안 시키고 하진 않았다.
내가 바로 아들딸 차별 없이 자란 세대다.
그러나 우린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이 아이들처럼의 거부감은 없다.
부모 세대를 가엾게 여기기도 하고,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해 줌에 감사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에겐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더욱이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남녀 차별이 웬 말인가.
왕자님, 공주님으로 자란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들고, 심지어 분노까지 일어난다.
일부러 수업을 하기 싫어서 저러나. 싶기도 했지만
남학생들 반응도 매우 충격적인 듯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
내가 간접적으로도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란 참 어렵다.
그땐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현시대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기엔 '여자라서'라는 것에 이미 마음이 닫힌 듯하다.
아이들에게 뭔가 더 설명을 해줘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하지.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다들 당황해하고 화는 내지만
단 한 명도, 어느 누구도 "그런데 선생님 옛날엔 왜, 무엇 때문에 그랬어요?"라고 묻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가졌으면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야지. 왜들 결혼을 안 하려고 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밖에 몰라. 애도 안 낳고."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자기 권리만 말해."
"요즘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
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상처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내 경험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그게 정말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었다면
질문을 할 것 같다.
'왜?'냐고.
그러나 굳이 내 행동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 그 마음에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는 그 마음에
굳이 상처받을 필요가 있을까.
내 생각과 마음을 몰라준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있을까.
질문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결론 내려 말할 때는
그냥 쿨하게 씨-익 웃으며 넘겨도 되지 않을까.
교복 줄여 입기가 유행하던 고2 그 시절
교복 줄여 입은 친구들을 선생님들은 정문에서 잡고,
치마 바느질을 뜯어내어 펑퍼짐하고 긴치마를 만들며 흡족해하셨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 진화해 치마 2개를 준비했고
등교할 땐 줄이지 않은 치마를 입고, 하교할 땐 줄인 치마를 입었다.
각자의 행동만 있을 뿐 질문과 소통은 없었다.
꽤 오랫동안 줄인치마는 잡힐 듯 잡히지않는 학교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교탁에 서서 우리를 한참을 쳐다보시더니 물으셨다.
"그런데, 너희 왜 치마 줄여입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니 유일하게 이유를 물어본 선생님이다.
'왜' 그러냐고.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그 이유들을 끝까지 모두 들어주셨다.
우리 말에 반박도 지적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난 너희가 이해 안 된다.'
괜찮다.
선생님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물어봐주셨으니까.
우리 반은 그때부터 선생님을 열렬히 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