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참는 것보다 품는 게 더 나을까

해보면 알겠지

by 승아리

남편의 은사님을 뵈러 갔다.

발령 첫 해, 사제지간으로 연을 맺고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자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를 찾고 싶을 때가 문득문득 있다.

남편에게 오늘이 그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옛날 얘기, 근황 얘기, 학교 얘기, 진로 얘기 등

어느새 남편보다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요즘 학교가 참 힘들잖아요. 학부모, 학생들 뿐만 아니라 관리가 힘든 교사들도 있잖아요. 교감, 교장선생님들 뵈면 너무 힘들어 보여요."


사실 요즘,

관리자의 길로 들어설지 말 지 고민하는 나는 먼저 간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요즘 너무 힘드니까 너는 이 길로 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선생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진 않을까?

기대하며 말을 꺼냈다.

"힘들지.. 그래도 어떡해. 품어야지."


"진짜 정말 정말 이상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교사도 있잖아요."

"있지! 꼭 있지!"

"뭐라 하면 갑질이라 할 거고,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여요."

"품어야지~"

"참는 것보다... 품는 게 어찌 보면 더 낫다."


정말 참는 것보다 품는 게 더 나을까?


이선생은 오늘도 참았다.

최부장은 지금도 참고 있다.


참긴 참았지만

참는 대신 분란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평화를 얻은 대가로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런데 품는 건 어떤 걸까?

정말 참는 것보다 품는 게 더 나을까?


참는 건 이런 걸까.

할 말이 있어도 다 하지 않는 것

불합리한 판단과 결정에도 굳이 대응하지 않는 것

나이에 지위에 관계에서 하위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 품는다는 건 뭘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이해해보려 하는 것

'저 사람의 치열한 삶에 나까지 힘듦으로 들어가지 않아야겠다'라고 다짐하는 것

'당신의 삶이 평안해지길 바랍니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엄마가 품에 안은 아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듯 내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참는 것보다 품는 건

지위든, 지혜든, 그게 무엇이든

수준이 우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태도 같다는 생각은 분명히 든다.

좀 괜찮아 보인다.


신뢰와 격려보다 지적과 불만이 앞서는 샛별이 어머님은

아이 담임을 품지 못하겠지만

나는 샛별이 어머님을 품어보려 한다.

콩떡이 주변 친구들이 나빠서 콩떡이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아버님은

콩떡이 친구들을 품지 못하겠지만

나는 콩떡이 아버님을 품어보려 한다.

본인은 다 맞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김 선생님은

동료들을 품지 못하지만

나는 김 선생님도 품어보려 한다.

뭐만 하면 엄마 때문이라며 투덜거리는 사춘기 입구에 다다른 그런 아들도

입꼬리 올리며 품어보려 한다.


오라, 누구든

그대를 품어줄 테니


일단 해보면

참는 게 쉬운지, 품는 게 쉬운지 알 수 있겠지.


피할 수 없다면

쉽고, 좋은 걸 선택하며 살아가는 게 지혜인가 보다.

그 지혜를 어른에게서 배우는 건 감사하고 풍요로운 일이다.


선생님과 작별 인사 후

돌아오는 길에 지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고2 때 철딱서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우리 반 경미란 아이

은은하게 반 아이들이 경미를 멀리하고 거부했음에도 지희는 늘 같이 놀아주었다.


"야, 니는 경미 안 얄밉나? 어떻게 같이 놀아지는데?"

"야, 쟤를 친구라고 생각하면 같이 못 논다.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되더라."


18살 동생이 셋 있는 내 친구는 이미 그때부터 만인의 밉상 경미를 품고 있었다.


어쩌면 지희도,

나를 20년 넘게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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