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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바바 Nov 09. 2022

송이버섯을 날로 먹다

녀석은 늘 교실 앞 복도에서 날 기다렸다. 아니 어디서든 기다렸다. 정말 날 좋아했다. 나는 선생님이고 넌 학생이야 라고 드라마속 김하늘처럼 외치며 회초리라도 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이미 애 둘딸린 아줌마샘이였다. 아 녀석은 똑똑했고 순수했다. 훌륭한 제자였다. 나에게 너무 집중하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녀석이 나에게 갖다 바친 것만 해도 셀 수가 없다. 뭐가 먹고 싶냐고 매일 물어봤다. 남편도 그러지 않았다. 큐빅이 채워진 액세서리 볼펜, 내가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걸 보고서는 운동용품 가게에서 별려서 사다준 라켓, 겨울 춥다고 목도리와 장갑, 빼빼로데이 과자 상자, 저녁 석식에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내가 좋아하는 감자 과자. 부산에서 최고로 비싼 뷔페 주말 저녁 4인 식사. 녀석이 나를 생각하고 뭔가를 가져온 횟수는 셀 수도 없다. 


 그 중에서도 지금 얘기하는 이것이 단연코 압권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조회 준비를 하는 나에게 다가온 녀석이 내민 건 락앤락 용기였다. "이게 뭐니?" "선생님, 열어 보세요." 긴장된 표정으로 용기 뚜껑을 열어본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데 녀석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거 우리집 산에서 아버지가 캐오신 진짜 송이버섯이예요." 가운데 손가락만한 것 하나, 엄지 손가락만한 것 둘 해서 세 개의 송이버섯이 락액락 용기 안 깔려있는 키친타올 위에 아주 보물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송이버섯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 귀하고 좋은 거라서 만날 수 없었다. 그 말로만 듣던 송이버섯이라니. 이 비싼 것을 어떻게 사왔냐고 혼낼까봐 일찌감치 자기집 산에서 캐온 거라고 입막음하였던 것이다. 나는 순간 놀라기도 했고 또 가져온 정성을 생각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나의 복잡한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이거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드세요. 애도 남편분도 주지 말고 이건 선생님만 드세요. 후라이팬에 살짝 구워서 드시면 맛있어요." 이런 부르주아 같은 녀석이라고. 츤데레였던 나는 뚜껑을 탁하고 닫으며 알겠으니 우선 수업부터 하자며 교실로 서둘러 돌려보내고는 송이버섯을 다시 열어 바라봤다. 송이향이 일품이라고 하던데 라며 코도 대고 킁킁거려보았다. 그래도 이 비싼 걸 받는 거는 아닌데라며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업을 갔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교무실로 오니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혹시 락앤락 통하나 가져가지 않았나요?" "예, 송이버섯 들어있는 통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얘기인즉슨 남편이 산에서 송이버섯을 캐와서 냉장고에 고이 모셔놓은 걸 아들이 자기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아침 일찍 가져와 그걸 냅다 선생님에게 가져다 준 것이었다. 나는 난처하였다. 가져가라고 하자니 어머니 기분이 안좋을거 같고. 쩝. 마지못해 어머니는 선생님 잘 드셔라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녀석이 아침부터 아니 그 전부터 내게 송이버섯을 가져오기 위해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했을지가 눈에 선했다. 그 생각을 하니 녀석의 나를 향한 애정이 과하다 싶을 정도였지만...난 감복했다. 녀석의 어머니가 남편의 보신을 위해 키친타올을 깔고 모셔두었던 송이버섯 세 개를 나는 받기로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가 내 남편에게 먹였다. 날로도 먹고 구워도 먹었다. 다음날 녀석은 나에게 잘드셨냐고 물었다. 그럼 네 덕분에 한 일년은 더 건강해진거 같다고 했다. 녀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이니 법위반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내 그 녀석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떤 선생님이 이런 사랑을 받아보았을까! 녀석의 안녕과 행복한 날들을 빌어본다. 열여덟 녀석의 순정과 그 따뜻한 마음에 대해 표현해주지 못했던 선생님의 고마움과 함께.  여기 이 지면을 빌어... 

그리고 짙은 그리움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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