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un 09. 2020

다시 보는 라라랜드

연인의 꿈까지 사랑했던 그들

얼마만에 간 영화관일까. 넓디 넓은 공간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스크린. 의자에 푹 파묻혀 그곳을 바라보면 안도감과 편안함이 몰려온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나만의 공간! 내 안에 무엇인가가 속삭인다. “숨었다. 괜찮아!” 영화를 본다. 2시간 가까이 주인공이 사는 삶을 숨가쁘게 같이 살면서 울고 웃는다. 그리고 큰 숨을 몰아쉬고 영화관을 걸어나올때면 온갖 감정을 경험하던 내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숨어있고 싶어 찾아가서 주인공이 되어 걸어나오는 분열적 기대를 모두 채워주는 곳. 나에게는 영화관이다.


그래서 너무 지치고 힘든데 들키고 싶지 않을때 영화관을 간다. 가서 자도 좋다. 그냥 그렇게 숨어있다가 나오면 다시 세상을 만날 힘이 생긴다. 착실히 반복되는 일상. 아무 문제도 없지만 문제가 없는게 문제인 그런 날. 영화관을 간다. 내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뜨겁고 격렬한 무언가를 만나면서 내 삶의 온도를 조금은 높이고 일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하루를 감사한다.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부대낄때 그래서 더 속상하고 혼란스러울때 영화관을 간다. 영화속 인물들이 나한테 말한다. “사는거 다 비슷해. 그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고. 미워할때도 있고 사랑할때도 있고. 그런데 미워하는건 최선을 다 안해도 되는데 사랑하고 싶어질때는 그 순간을 놓치지마!” 부대끼던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져 거친 숨이 차분해진다.


그래서 나는 액션 영화를 보기 힘들어한다. 물리적 힘이 한계를 모르고 부딪히면서 무언가가 계속 부서지고 죽고 다친다. 주인공은 모든 우여곡절을 겪으며 내 눈앞에 계속 나타나지만 주인공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 주인공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 주인공이 놀고 있던 공원의 가족들은 먼지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런 불편한 여운이 쌓이고 쌓이면 너무 피곤해지고 결국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트랜스포머 이런 영화는 소음에 가깝다. 마블 씨리즈도 페미니즘 영화냐 아니냐 시끄럽길래 처음으로 영화관 가서 봤고 누군가는 마블 세계관을 얘기하지만 나의 정신세계와는 잘 접속이 안되는 무엇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애정했던 액션 씨리즈는 엑스맨이었다. 다 좋았던건 아니지만 [로건]은 정말 훌륭했다. 초능력자의 처절하고 비참한 노후생활을 그 시리즈에 담아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엑스맨 최고 캐릭터를 사람들 마음에 묻어주면서 훌륭하게 떠나보내는 멋진 예. 삶의 희노애락이 묵직하게 넘실거리면서 산다는건 누구에게나 얼마나 고되고 위대한건지 낮은 자세로 속삭여주던 영화. 그래서 나는 교보문고 몽블랑 만년필 코너에서 늘 만나는 휴잭맨을 보면 인사한다. “당신이 훌륭하게 떠나보낸 로건이 제 마음에 머물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늘 라라랜드를 보았다. 몇년전 보았던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심상?은 이러했다. 음악이 너무 좋다. 저 둘은 백수면서 어쩜 저렇게 맨날 만나서 놀고 연애하냐? 저 두 배우는 연기, 노래, 춤 다 되는거야? 끝내주네. 노을 정말 예쁘다. 뭐 이런 것들. 오늘은 사실 롱테이크로 차막히는 도로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뮤지컬 군무를 보여주는 첫장면부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스크린에서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신나게 노래부르고 춤추고 있는데 코로나시대에 금지된 것을 하면서 신나고 뜨거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우리에게 금지된 것들이 선명해졌고 금지가 사라졌을때 우리가 뜨거워져도 될때 가까이 있어도 될때 손을 잡아도 될때 부대끼며 땀을 뻘뻘 흘려도 될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5년만에 서로의 꿈을 이룬 뒤 재즈바에서 우연이 재회하고 피아노 연주와 함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꿈을 잠시 꾼뒤 서로 따뜻한 눈빛으로 상대의 삶을 응원하며 돌아서는 장면을 본다. 한때 미치도록 서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 사람의 꿈까지 함께 사랑했던 연인. 서로 견인하고 격려하다가 “우리 흘러가는대로 가보자”라고 이야기 하고 헤어졌던 그들. 자신의 꿈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이들이기에 또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웃음으로 떠나보내줄 수 있었겠지. 아름답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을 살면서 타인의 삶을 지원하고 응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줄 수 있을때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그러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 무엇을 포기해야할지 알고 미련을 갖지 않는 자세.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입해본다.


여전히 그들이 춤추던 곳 노을은 끝내주게 아름다웠고 두 배우가 가진 재능은 탐이났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죽도록 했을꺼야? 암. 그랬을거야.

작가의 이전글 꼭 구별해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