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 자기 위로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들으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우리 가족은 요즘 유튜브로 여행을 구경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들이 푹 빠진 유튜버는 빠니 보틀. 이 자는 (이 사람은 영상 멘트에 자신을 3인칭화 하는 ‘이자는’이란 표현을 즐겨쓴다. 그래서 나도 이 사람을 이 글에서 이 자라고 부르려 한다.) 돈 2천만원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여행하는 유튜버다. 이 자는 하루에 3만원으로 생활하고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이동하며 최대한 텐트에서 자는 것을 기본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 대표 유적지나 박물관은 이 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폐허 마니아라고 스스로를 부르며 다 무너지고 관리 안되는 으스스한 건물을 찾아가 구경하고, 아무리 멋진 건물도 자연풍경을 뛰어넘지는 못한다며 마음 끌리는대로 동선을 잡고, 걷다 걷다 힘들면 텐트 칠 수 있는 곳을 찾고, 어떤 음식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닥치는데로 먹는다. 물론 사기 당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누군가 호의를 보이면 큰 의심 없이 호의를 받아들이고 돈은 딱 먹고 자는데만 쓴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예측하고 통제하고 계획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날것 그대로의 개고생과 도전과 위험을 함께 경험한다. 그래서 이자는 집콕 생활을 하며 느끼는 답답함과 무료함과 지겨움을 긴장감 가득한 활기로 바꿔주며 우리 가족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글은 빠니 보틀을 홍보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다.
이자가 여행을 시작하고 2~3달쯤 지나 구독자가 몇만을 훌쩍 넘던 시기에 댓글로 질문을 받아 답하는 내용으로 영상을 올린게 있었다. 그 Q&A 덕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형! 여행지에서 자기 위로는 어떻게 하세요?”란 질문이었다. ‘여행 중 자기 위로라. 그래 심신이 지칠때가 많을텐데 자기를 잘 돌보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이 있을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며 보고 있는데 ‘어!!!! 이게 뭔 소리야???’ 나는 질문의 의도를 완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질문의 의도가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 쓰는 자기 위로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거다. 여기서 자기 위로는 자위를 뜻했다. 이 자는 "다 나름 방법이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노 코멘트!”라 답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여성 여행 유튜버들은 여행 중에 생리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구요.”
아! 여성의 월경과 남성의 자위가 왜 동급으로 등장하지? 난 궁금했다. 월경은 식욕, 수면욕, 성욕 등 인간이 기본으로 충족해야 하는 욕구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개념이 아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설계된 몸이라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나는 일이다. 이 것을 같은 층위로 두고 이해를 한다는건 남성의 자위는 여성의 월경처럼 반드시 일정한 시기에 한번씩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남자들은 여행 유튜버에게 성욕 해결에 대한 안부를 저리도 자연스럽게 묻고 저리도 자연스럽게 답하는데 난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자위는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을 받아본적이 없다.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것도 본적이 없다. 여성의 성욕은 해결하기 위해 함께 걱정해야할 고민해야 될 무엇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성도 성욕이 있고 여성의 성욕도 남성의 성욕 만큼이나 관심받고 배려받고 해결해야할 중요한 무엇으로 대접받았으면 좋겠다. 여성 유튜버에게도 자기 위로 생활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던져졌으면 좋겠고 빠니보틀처럼 아무렇지 않게 1도 당황하지 않으면서 “다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세한 방법은 노 코멘트”라고 웃으며 쿨하게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빠니보틀처럼 여성 여행자도 여행중 거추장스런 머리카락을 확 밀어버리는 선택이 가능 했으면 좋겠고 여행 짐을 쌀 때 버리기 바로 직전인 옷들만 골라서 쌀 수 있으면 좋겠고 허허벌판에서 텐트를 치고 자면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 무너져가는 건물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상상이 가능했으면 좋겠고 힘든 여행 일정에 옷과 화장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더우면 아무곳에서나 옷을 훌러덩 벗고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성추행과 강간을 염두해두고 남자들의 호의를 이해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sns에서 “나 얘랑 잤다”라는 태그로 돌아다닐 걱정 없이 사진찍자는 제안에 ok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슬리핑 기차칸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래서 빠니 보틀을 다 훑고 다른 여행 유튜버를 찾다가 여성 2인과 남성 1인이 여행하는 채널을 찾았다. 여성 2인이 여행하고 남성 1인은 기획하고 촬영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역할을 했다.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뒤를 쫓아다니며 여행을 하는데도 이 여성들이 겪은 어려움을 보고 있으니 빠니 보틀이 우리 가족에게 주었던 기쁨은 이 자가 남자였기에 선사할 수 있었던 기쁨이 8할이었다는 사실을 진정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진정 남자로 태어난다는건 그것 자체로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로 산다는건 어떤걸까. 누군가는 너한테 남자처럼 살지 말라고 한적 없다 할테지만 내가 그런 삶을 산다는걸 상상하기도 힘든걸 보면 나를 가둔 쇠창살 자물쇠를 누군가 풀어준다 한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살 수 있을까 싶다. 누가 열어주는건 의미가 없다. 나를 가두고 있는 창살이 무엇인지 하나씩 깊이 헤아려보고 용기를 내어 하나씩 걷어내고 치워내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다. 그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내가 얻고 싶은건 매우 간단하다. 나는 단지 여자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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