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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an 24. 2023

"선생님.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이게 최선이에요!"

내 기준으로 최선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학부모님

2년 만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간 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 준 사람과 사건을 끄적거리며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싶어졌다. 2003년에 만난 학부모에 대한 기억으로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3년 교사가 된 첫해 여름이었다. 지현이는(가명) 자주 말썽이었다. 언제나 화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과 다툼이 잦았으며 수업시간에는 딴짓을 했다. 나는 그 시절 좋은 교사가 되겠다며 열정에 사로잡혀 들떠 있었던지라 겁도 없이 불쑥 전화해서 가정 방문을 가겠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물었다. “선생님. 술 좀 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학교 앞 허름한 맥주집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약속 시간이 10분쯤 지나서 “사장님! 500 한잔이요”라고 말하면서 등장하셨고 창가 자리에 앉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곧 사장님은 내 앞에 500 한잔을 내려두고 가셨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맥주 드세요. 저는 술은 못 해서요 담배 피울게요.” (그 시절은 어디서든 실내 흡연이 가능했다.) 나는 지현이가 일으키는 말썽에 대해 소상히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말문이 막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500잔을 입에 물었고 어머니는 세상 급할 일 없다는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내뿜었다. 어색이 넘쳐흐를만한 첫 만남에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운 침묵이 흘렀고 어머님은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지금 우리 지현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게 엄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아.......... 네?”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만 껌뻑이고 있는 나에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선생님. 제가 지금 우리 지현이랑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어요. 지현이 동생이 장애가 있어서 시설 생활하는데 제가 버는 돈을 대부분 거기로 보내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두 번째 담배를 비벼 끄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제가 우리 지현이 재우고 먹이고 입혀서 어떻게든 학교는 보낼 테니 선생님은 우리 지현이한테 관심 많이 가져 주시고 따뜻하게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표정도 억양도 없이 덤덤히 늘어놓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나 역시 단지 버티는 것이 최선이었던 삶 속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동안 지현이가 왜 그리 말썽을 피웠는지 다 알 것 같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학교에 나와 웃고 떠들어주었던 지현이가 너무 고마워 가슴이 뻐근했다. 어느새 나는 지현이가 부린 말썽을 쏟아낼 생각은 말끔히 사라진 채 어머니께 지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하겠다며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500잔을 말끔히 비웠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지현이에게 무엇이든 해줄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를 만나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음날부터 지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지현이는  나와 반 친구들을 참 많이 웃게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길을 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그 술집을 바라보면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신 ‘최선’에 대해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최선’의 모습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내 기준에 맞는 ‘최선’을 쉽게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학부모를 만날 때면 지현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보호자 모두들 때로는 거칠고 비극적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려고 애쓴 다는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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