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아이들은 안녕할까요?
1. 아이들 하루 살이에 가장 중요한 일 두가지를 뽑으라면 놀기와 싸우기다. 두가지를 슬기롭게 잘 하는 날 아이들은 표정도 좋고 잠도 푹 자는 것 같다. 놀기와 싸우기는 보통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데 지켜본 결과 신나게 놀수록 또는 건강하게 싸울수록 아이들은 더 많은 양의 침을 발산하며 말하거나 웃거나 운다. 침을 튀긴다는건 파르르 온몸의 에너지를 혼심을 다해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나 사이에 유지해야 할 안전한 거리를 익히며 관심과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만들어간다. 아이들은 자기 침을 튀기며 친구가 튀기는 침을 맞으며 그렇게 관계를 배우고 삶을 배워간다. 그래서 궁금했다. 아이들은 tv만 켜면 나오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란 말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2. 개학이 3주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가 길어지고 잔기침 조차도 눈치보이고 마주보고 음식을 먹어도 될까 조심스러운 지금. 확진자 동선을 피해 집에서 조심 조심 살고 있는 흐름 속에서 그간 너무 당연했던 교실 풍경을 떠올려본다. “나랑 같이 놀래?”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아이들. 쉬는 시간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닥거리는 아이들. 살살 장난 끝에 서로 엉켜서 바닥에 구르는 아이들. 마주보고 노래를 부르며 쎄쎄쎄 하는 아이들. 친구 무릎에 앉는 아이들. 친구를 뒤에서 안는 아이들. 친구 다리에 기대고 누워있는 아이들. 친구 의자에 엉덩이 디밀고 같이 앉아 있는 아이들. 급식실에서 앞 친구랑 웃으며 떠드는 아이들. 뭘 같이 먹다가 “이건 내꺼!” 하며 침 발라 놓는 아이들. 떡볶이 한접시에 젓가락 여러쌍이 들락날락거리는 아이들. 불과 한달전만해도 당연하고 정겨웠던 모든 풍경이 이제는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3. 급식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 교육청에서 보내온 급식실 운영방안을 보면 식당에서는 한 방향으로 앉고 교실에서는 정면을 바라보고 식사하라고 한다. 밥 먹으면서는 대화를 하지 않도록 지도해야하고 식당에서도 밥 먹을때를 빼고는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한다. 윽박지른다고 해서 이런 풍경이 가능할까도 모르겠지만 가능하다고 하면 더 무서울 것 같다. 급식실에 마스크 쓰고 들어와 말 한마디 없이 식판만 내려다보고 밥을 먹은뒤 다시 마스크 쓰고 나가는 아이들? "친구 반찬에 침 다 들어간다! 제발 입다물고 밥먹어라" 잔소리하던 급식실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4.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 23일 이후 교실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 하라는 공문이 온다면 어떤 내용일까 상상해본다. 우선 책상을 시험대형으로 배치해야겠지? 체스판에 말처럼 같은 간격으로 떨어져 앉아 모두 칠판을 바라보도록 말이다. 모둠 활동 안되고 몸이 닫는 활동 안 되고. 더군다마 마스크를 써야하기 때문에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활동도 안되고. 그럼 애들이 나만 바라볼텐데 서로 마스크를 쓰고 상호활동 없이 나 혼자 떠드는 수업에서 나와 아이들은 어떤 즐거움을 만들 수 있을까? 쉬는 시간도 상상해본다. 복도에서 상호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할테고 화장실에 갈 아이들만 한명씩 내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놀라고 해야할까? 모든 애들이 쉬는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앉아 혼자 노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다. 그리고 음악시간. 마스크를 벗은채 함께 노래를 부르고 리코더를 연주하고 리코더에 고인 침을 빼고 게다가 내가 가르칠 4학년은 하모니카를 배우기로 했는데....음악 시간에는 무얼 할 수 있을까?
5. 지금 아이들은 뭐하나 - 아이들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못하는 일상 속에서 운동장에서 놀 수도 없고 돌아다닐수도 없고 친구집에 놀러가기도 어렵다. 그나마 tv보기, 스마트폰 하기, 컴퓨터로 e-학습터 들어가서 잠깐 공부하다가 게임하기로 그럭저럭 이 시간들을 건너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아쉽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어른들의 고립감과 우울감에 대해서는 정부와 언론에서 관심도 많고 대책도 세우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공부를 못해서 어쩌냐는 걱정 말고는 다른 걱정이 없어보인다.
6. 침과 행복의 함수관계 – 그래서 제일 무서운게 비말이 되버린 지금 학교를 가지 못하고 가끔 멍하니 집에서 혼자 앉아있으면 목청 높여 소리지르고 떠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노는 아이들이 생각나고 많이 보고 싶다. 침 튀길 일이 많은 아이들은 그만큼 건강하고 활기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고 주변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세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개학을 앞두고 있으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 아이들에게 나는 마스크를 종일 쓰게 해야하고 친구와 침이 튀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게 해야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때문에 난 얼마나 많이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게 될까. 당연했던 일상이 낭만적 상상이 되어버린 이 현실 속에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면서도 우정과 사랑과 관심을 나누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아 두렵다. 당장 집에 갈때 아이들과 해왔던 악수, 하이파이브, 허그를 무엇으로 대체해야할지도 모르겠다.
7. 거리두기로 인해 놓치면 안 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한다. 마스크를 썼으니 더 정성들여 서로의 눈 바라보고 이야기 들어주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더 깊이 생각해보기. 바이러스로 부터 안전하게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멋진 방법들 찾아보기.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없는 것들을 추억하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충분히 감사하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나고 나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 떠올려보고 계획하기.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찾아보기 등등등.
8. 무서운 바이러스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교사로서 놓치지 말고 가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짐해본다. 23일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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