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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Mar 01. 2018

통계는 당신의 성공을 반대한다

교묘하게 상속되는 문화적 자본의 실체 -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요.
통계적으로 봤을때, 내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사다리를 끝까지 오르지 못하는 이유


저는 교육의 사다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믿을 건 제 자신 밖에 없어요. 처음에 대학에 합격하고 상경을 하게 되었을 땐, 그저 소녀 같은 마음으로 많은 것이 아주 많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은 시골 도시에서 예쁜 여대생 언니 한 명 보지 못하고 자랐는데, 제가 그런 여대생이 되어 있으니 말이에요.


진정한 도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어요.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해외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저는 그런적이 없었기에 교환 학생을 어렵게 준비해서 다녀오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난생 처음 영어 학원도 등록했었죠. 학부를 졸업했고, 하고 싶은 공부를 조금 더 했어요. 다행히도 이후에 나쁘지 않은 직장을 구했고,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외모로 무시 받지 않을 정도로 피부관리, 머릿결 관리를 하고 운동도 꾸준하게 해요.


하지만, 전 성공한 것 같지 않았어요.

아니, 성공할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았어요


잘못된 것은 하나 없었지만, 남들보다는 조금씩 더딘 인생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제 주장을 펼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들 동안 쉽게 분노한다거나 우울해지는 일들도 많았어요. 20대 초중반의 긴 시간을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 지하방에서 보냈기에, 약간의 수입이 생긴 후부터는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는데, 그런 것들은 저를 늘 허기지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상황이 알아서 좋아지길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이력서에 적어 넣은 스펙으로는 넘치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제 스스로가 성공에서 멀다고 느꼈던 걸까요?




어쩌면, 난 성공하기 힘든 사람으로 태어났던 건 아닐까?


2017년 빌게이츠가 여름 휴가를 위해 들고 갔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은 실리콘 밸리의 한 유망한 젊은 청년이 자신의 성장과정과 처참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었죠. 수 틀리면 기다란 총을 들고 현관 앞에 나가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외할머니, 마약에 중독되어 자신에게 소변 샘플을 부탁했던 어머니, 끊임없이 갈아치워지는 새 아버지들과의 어색하고 낯선 시간들로 가득차 있던 그의 십대 시절의 이야기가 수백 페이지에 거쳐 기록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품격이 떨어지고 문제가 많은 가족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경멸적이지 않았고, 하지만 그들을 억지로 감싸려고 하거나 포장하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이 모든 불행한 환경을 이기고 예일대학의 로스쿨을 졸업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32살의 J.D. 밴스이고, 이 책은 바로 2017년 미국에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이슈를 던져주었던 화제의 책인 '힐빌리의 노래' 입니다.



힐빌리는 '언덕배기에 사는 Billy'라는 뜻으로, 달동네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2017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여 판세를 뒤엎은 백인 저소득 계층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자본가를 돈 없는 사람들이 지지한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고 있죠)


우리나라의 북리뷰에서는 그저, 안 좋은 가정을 딛고 일어선 한 사람의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의지와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화성공을 한 사람들의 문화, 이 두 가지의 문화를 동시에 겪으면서 자신의 느꼈던 이질감을 수백 페이지에 거쳐 기록한 것이죠.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 경멸하면서도
성공할 만한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들


무리하게 수표를 쓰면서도
크리스마스에는 수백 달러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아이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고성을 지르며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Boys, Not be ambicious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는 무언가가 결핍된 것을 약물이나 남자를 통해 찾으려고 했고, 그들과의 관계는 성숙한 적이 없었죠. 어머니는 저자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을 지속하려는 가족 앞에서 약에 자신이 가장 힘든 사람이라며 딸이나 아들 앞에서 막말을 하기도 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사랑과 전쟁을 구분할 줄 몰랐고, 품격 있게 자녀를 대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전형적인 노동 계층으로, 그의 외할머니는 거센 여자였어요 수틀리면 장총을 들고 현관으로 모두를 쏴버리겠다고 위협할 성품의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 그들이 무언가를 박탈당하거나 뺏긴다는 느낌이 들면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조금도 갖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는 어머니의 불안정한 심리 대문에 여러 번 삶의 보금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고, 성공할 만한 어른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내게 되어요. 오히려 일찍 '어른아이'가 되었고, 어머니를 보호하는 역할을 마음 속으로 늘 하게 되어요. 그의 마음은 소년에게 필요한 어떤 희망이나 야망을 갖지 못한 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어요.




통계는 밴스의 '실패'를 예견한다


통계적으로 밴스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성공한 사업가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 까요?


그는 미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같은 가정에서 자란 대부분의 거의 대 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우수한 교육을 받지도, 좋은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대부분의 고향 친구들은 마약중독자가 되어 고향에 남았죠.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중에서 얼마나 다양한 우연들이 자신이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수 틀리면 장총을 들고 나갔지만, 손주를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호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던 외 할머니가 있었고, 많은 친척들이 그를 감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이모와 외 삼촌은 고향을 떠나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죠.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돈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해병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다녀오면서 나쁜 습관을 고치고, 군대 내에서 돈에 대해서 배웠던 것도 신의 한 수 였습니다.


즉, 그의 인생은 통계적으로 실패해야만 하는 인생이었지만, 여러 번의 신의 한 수들과 기적적인 도움으로 통계를 이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는 그의 가족들에게서 성공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배우지 못한 채 자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간혹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밴스가 말하는 문화 자본적인 결핍을 저도 느끼고 있었거든요. 밴스가 말한 문화적 차이는 최고급 오페라를 가족끼리 보느냐, 유럽 여행을 다녀 올 수 있느냐와 같은 부류의 것이 아니었어요.


아래의 질문과 답을 통해, 성공의 문화를 가정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볼까요?


(질문)

"엄마, 나 저번에 아르바이트로 지원했던 투자회사에 면접 보러 갈 건데, 옷은 어떤 걸 입어야 될까?"


(답)

1. "그딴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라는 거야, 너가 알아서 못 해?"

2. "글세.. 엄마는 그런 면접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3. "캐주얼한 면접이라고 했다면, 각진 정장보다는 세미 정장 풍의 느낌이 도움이 될 것 같네."


실제로 밴스도 면접을 갈 때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로스쿨 입학 후에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해요. 하물며 사회 생활에서 반드시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자세, 착실하게 돈을 저축하거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업적들을 쌓아가는 방법을 1번, 2번과 같은 대화를 하는 집에서는 배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인지?  식당에서 맛이 없거나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났어야 했는지..?


밴스는 에일대 로스쿨에서 만난 여자친구의 집에서는 명절에 다른 가족이 불참하더라도 그 사람을 욕하지 않았고, 그들의 불행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죠. 이런 작지만 삶을 관통하는 취향, 문화, 습관의 차이가 결국 가난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를 그는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미국 백인 저소득 계층의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지는 이해하게 되었죠. 나아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지는 각종 정책과 제도들이 얼마나 무쓸모 한 지에 대해서도요.




문화적 자본으로 은근히 부를 세습한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부르디외'라는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보게 됩니다. 상류층은 실질적인 '물질적 자본'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방식, 취향, 선호, 문화적 경험과 같은 '문화적 자본'을 통해 교묘하게 부를 세습하고 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한 이론인데요.


나는 교육의 사다리를 통해 힘들게 오르고 있지만, 이 지진한 싸움이 끝이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과 시작점에서 다른 '문화'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요?


Against, all odds


단순히, 이종 문화간의 격차, 가난의 이유 같은 사회적인 화두를 던지는 것에 앞서 이 책은 한 명의 개인으로써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에요. 거칠고 격 없는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밴스지만, 몇 백 페이지에 거친 책을 서술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문화. 습성, 언어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모든 필연적인 실패의 가능성을 딛고,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문화를 객관화하고 고칠점을 찾았기 때문일 거에요. 단순히 지적인 능력으로 교육의 사다리만 올라간다고 해서 성공의 길이 그 앞에 깔려 있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나는 얼마나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아니 성공할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스스로 성공에서 멀어진다고 느껴던 것은 성공한 사람들과의 문화/습관의 차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겉으로 그럴싸하게 따라하는 것 만으로는 성공에 가까운 습관, 문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의 힐빌리 문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맹렬히 노력한 것으로, 결과를 달라지게 할 수 있음을 J.D. 밴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사람들을 속물이라던가 사기꾼처럼 비웃었던 적은 없었는지? 남들의 작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장총으로 무장한 채, 나를 공격하려는 마음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날카롭게 커뮤니케이션 했던 적은 없었는지? 내 자신도 부족한 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비는 과하게 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진짜 경제적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긴 했었는지..?


우리 스스로는 내 자신의 습관과 삶의 양식에 대해서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나요?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주는 일에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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