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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Apr 11. 2018

교육의 혁신과 그 후

혁신적 순간과 그 후의 일상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 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어떻게 지속하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최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의 한 문장이다. 작가는 우리가 TV, 드라마 속에서 보는 불꽃같은 감정과 뜨겁고 질긴 인연의 고리는 사실은 기나긴 '사랑의 첫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랑의 본질은 그것을 유지함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고향에 다녀오는 왕복 기차에서 다 읽어버릴 정도로 극심하게 애정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위의 문구를 인용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교육의 혁신이 시작될 때에는 과도하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을 어떻게 지속시킬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 듯 하다 


불꽃 같은 순간은 아무리 그 순간에 강렬한 주체와 뜨거운 열정이 있더라도 순간에 그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것이 지리하고 고리타분하게 지속될 수 있느냐... 이다. 


모든 분야에 '혁신'에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과 관련해서 '혁신'은 좀 더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고, 그것이 촉발되는 그 순간보다도 유지되거나 망해가는 재미없는 순간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교육적인 문제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실은 교육의 문제가 아님에도), 사람 하나를 망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임에도 단편적인 것을 혁신함으로써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과장 광고를 많이 하는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많은 수의 교육 혁신은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공을 통해 배울 것은 한정된 반면,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아마 부끄러워서 다들 말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인식이 아직 못 따라 왔다...'고 했겠지...)




당신이 관심 없었던 교육 혁신의 뒷 이야기 


마이크로 스쿨의 화려한 시작 


미국의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기업이 투자를 받듯 기금을 조성하고, 투자금으로 혁신을 꿰했던 학교들이 있었다.  학교의 제도적 교육을 거부하고, 학교마다 저 마다 교수/학습 방법 면이나 교육의 목표 등에서 차별화를 하며 이목을 끌었다. '모두가 연구자'이다 라는 컨셉을 걸고 '완전학습'을 테마로 한 칸랩스쿨이 유명했으며,  구글의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출신이 문을 열어 데이터로 학생의 학습 결손을 파악하겠다는 '알트스쿨'은 국내 여러 매체에도 보도될 만큼 유명해졌다. 


이런 것들은 '마이크로 스쿨'이라고 불렀는데, 홈스쿨링, 언스쿨링과 본질적인 문제 의식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 그리고 IT 기술을 이용한 교수/학습 방법의 혁신을 노렸다는 점에서 실리콘 밸리 내의 부유한 진보 계층으로 큰 지지를 얻었다. 설립 이념으로 내세웠던 메시지나 그들이 기술을 사용한 방식은 '기술과 교육'의 접점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효과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학교의 탄생이나 운영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 기업이 IT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외치고 투자금을 모아가는 과정과 너무나 익숙해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 스쿨의 무한해 보였던 가능성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 중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가장 대규모의 투자금을 조성했던 알트스쿨이었다. 구글의 데이터과학자가 설립한 학교답게 IT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학습 내용을 전파하고, 학습 결과를 추적하여 학생의 학습 손실도 기술을 통해 파악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요 컨셉이었다. 하지만 학교 수업에서 활용했던 소프트웨어를 솔루션으로 판매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방향을 틀면서 오프라인에서 운영하던 학교들을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하여 미국 전역 4개 지역에 있던 캠퍼스 중 2개의 캠퍼스는 문을 닫았으며 뉴욕, 샌프란시스코의 2개 캠퍼스도 2018년 봄 학기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대상이 유치원 생 부터 초등생 등 어린 학생이었던 만큼이나 학부모들의 강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실험용 쥐'가 되었다며 한탄하고 있다. Founder인 Max가 팔고자 하는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베타 테스터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앉게 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학부모들의 의견은 이윤이 높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며,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교육은 수익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이라며,  아이는 '읽기' 방법을 선생님께 배우지 못하고 녹음된 오디오 파일만을 들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학습 결손에 대한 부분을 걱정하자 한 달에 200불에서 800불의 비용을 내면, 개인적인 튜터링을 받을 수 있음을 학교가 안내해 주었다고도 했다. 



모든 강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알트스쿨이 문을 닫는 시점에서 비판을 받는 포인트는 결국 그들이 강점으로 내세웠던 것들이다. IT 기술을 활용한 교육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녹음된 파일을 재생하는 것'으로 그치게 되기도 하고, 이제껏 아무도 안 해봤던 새로운 시도가 확장가능(scalable)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그들의 계획을 바꾼 순간, 교육적 메시지에 동감해서 참여했던 사람들은 하나의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동원된 베타테스터로 전락되고 말았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듯이 투자금을 만들어 모아진 이 학교에서 투자자의 의견이 중요해졌을 뿐, 학부모들은 소외 받았다는 주장도 결국 사람들이 이 학교에 끌렸던 바로 그 지점과 동일한 지점이다. 


같은 지점에서 이번에는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MOOC은 모두를 위한 대학이 될 수 있었을까? 


2013년 내가 몸 담고 있었던 대학은 대중에게 대학의 강의를 나누어 주기 위한 작업이 분주했다. 플랫폼을 만들고, 교수님들의 강의실을 쫓아 다니면서 현장을 녹화하고 트렌드에 맞게 10분 미만으로 쪼개어 동영상 강좌를 뽑아냈다. 


EdX나 Coursera같은 명문 대학의 엘리트 멤버쉽에 기반한 콘소시엄과 사회적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기였고, 강의를 공개함으로써 대학에서 질이 나쁜 강의가 사라지면서 대학들의 우열이 사회적으로 결정되게 될 것이며, 비용이나 지리적인 이유 등의 이유로 대학의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이니 그야말로 혁신 중의 혁신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찼다. 2013년 첫 해에 열린 한 강의는 전 세계에서 16만 명이 수업을 들었다고도 했고, 그 결과 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에서 그 사람들을 채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정말 순수한 이론가였던 나는 세계적인 교육 혁신에 동참함에 진심으로 감동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대학과 혁신적인 교수법을 담았다는 강의들의 실제 참여율은 매우 저조하다. 2013년 Penn State 대학에서 초기 MOOC 16개 강좌에 수강한 100만 명을 조사해 본 결과, 강의에 등록한 사람 중 절반 만이 단 한번이라도 강의에 방문을 해 보았다고 했다. 평균적으로 4%정도만 완주에 성공하고, 어떤 강의는 2% 수준이었다고 했다. 현재도 교육 콘텐츠를 많이 다루는 입장에서 매우 믿음직 스러운 수치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도 비판 중 하나이다. 기회를 모두에게 주겠다고 했지만, 마치 채식주의자들에게 프라임 립을 제공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MOOC을 통해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집단은 기존에 대학 학습 경험이 없는 집단이었음이 명확해졌고, 고기도 먹은 놈이 잘 먹는다고 이미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MOOC을 즐겁고 신나게 잘 활용했다고 한다.  



길게 좀 봐주세요, 제발 


하지만 속단 하기는 이르다. 2016년에서 2017년에 이르면서 주요 MOOC 제공자들의 그들의 모델을 조금씩 바꾸었다. 채식 주의자에게 고기를 먹이진 못했을지언정 최상급의 특별한 방식으로 조리하여 제공하면서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소식이 2017년과 2018년에 연속적으로 들리고 있다. 


실리콘 밸리 내에서 교육 관련한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투자금을 모으고 있기도 한 Coursera의 경우 연간 이윤이 최소 1억 달러 선이며, Coursera에서 제공하는 강의들로 기업 내에 교육을 하는 기업만 해도 최소 1,000곳으로 성장했다. 1년 사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의 수는 2배 이상으로 성장했고, 2018년 2월 기준으로 1,600개 이상의 인증(degree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나도 49불씩 6개월째 비용을 지급하고 공부는 소홀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초기 Big MOOC Provider중 하나였던 Udacity는 나노디그리(Nanodegree) 라는 과정으로 '학위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더니, 2018년 봄이 되면 Udacity School of AI와 Udacity Universe 라는 상위 개념의 콘텐츠 모듈을 우리에게 던지면서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분야로 콘텐츠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Udacity의 Founder인 Sebastian Thrun은 Stanford의 교수이며 Google X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학위에 준하지만, 학위보다는 작으면서, 미래의 직업 세계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을 '나노디그리'라는 고유 명사로 불러도 될 만큼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익숙해진 개념이 되었다. 혁신이 정착된 것이다. 


강점을 강점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성공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초기에 가지고 있었던 강점을 그대로 잘 유지하면 성공의 길로 가게 된다. Udacity는 Sebastian Thrun이라는 스타 교수의 명성과 신기술 분야의 교육을 선도해서 나간다는 컨셉을 유지하며 발전하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제안하며 앞으로 나간 결과 넘사벽 에듀테크 기업이 되었다. 동종 업계에서 따라가기가 정말 벅차다. Coursera나 EdX도 초기에는 매우 비슷했지만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더 찾아간 결과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각자 잘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주도해서 MOOC을 플랫폼을 만들어갈 정도이니, 이 정도면 나름 정착된 혁신이다. 




반복되는 역사 


여러 번 반복하지만 교육은 정말 길게 봐야하는 것 같다. 대성공처럼 보였던 알트스쿨이 생각보다 빨리 한계를 드러낸 것이나, 망할 줄 알았던 MOOC등이 제각각 강점을 드러내며 사회적인 의미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해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 속단은 역시 금물이다. 그럼에도, 교육의 혁신과 그 뒷모습을 살펴보다 보면 오묘하게 늘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면 비판의 목소리나 성공을 찬양하거나 기대하는 들뜬 목소리에서 내가 이미 들어본 그 목소리들이 묻어 있다. 




1. 지금 모든 사람들이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학교 교육'과 '집합 교육' 역시 한 때는 가장 핫하고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집에서 공부하고, 귀족들만 가정교사랑 공부하면 되는데, 왜 모두가 모여서 공부하고 보편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당체 알 수가 없다며 머리를 저었을 것이다.


2. 지금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 버린 집합적인(collective) '학교 교육'은 효율성(efficiency)에 집중했다. 적은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내는 것이 이것의 목표였다. 그래서 오늘날의 혁신은 대부분 효과성(effectiveness)과 개인화(personalization)을 이야기 한다. 가령, 시스템으로 개인에 가장 적합한 교육을 제공해 줄 수 있다거나 개인이 가진 배경과 무관하게 어떤 것이든 시작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3. IT 기술 등이 발전하면 비용을 늘리지 않고도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상당한 scalability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동네 장사로 될 수준이 아닌 듯 하다(ㅠㅠ). 그 전 까지는 그 기술과 방법에 누군가가 자신의 노동을 통째로 갈아 넣거나, 투자자나 선량한 patron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가 관심이 없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가 큰 비용을 지불 하고 있다.


4. 효과가 좋고, 개인에게 맞춤으로 제공이 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귀족 신분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오늘날 사회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사람이기에 혁신이 교육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 같으면 또 거부감을 느낀다. 


5. 따라서 대부분 3에 적힌 것과 같은 기대는 '증세없는 복지'의 약속을 믿은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비용이 부담된 집단이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효과성(effectiveness)과 개인화(personalization)라는 것이 돈 놓고 돈 먹기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3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돌아간다.


6.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이번에는 3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면, 모두가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그 사람을 취재하여 그 혁신이 얼마나 대단한 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7.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다. 


8. 단편적으로 좋았다, 나빴다 만을 쪽대본처럼 대중에게 보여줄 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시니컬 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교육적인 혁신을 바라고, 그 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우리나라의 에듀테크가 오랜 시간 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우려를 최근 들어서 많이 본 것도 있었고, 교육에서의 혁신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1에서 8과 같은 상황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서 혁신은 왜 안하는거야? " 라는 질문을 할 때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교육이 바뀌지 않는게 않는게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는 게 문제일 게다. 교육이라는 것이 본디 세상을 앞서 가긴 어려운 경향이 있다. 


오늘도 돈도 안되는데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실패를 위해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모두 존경한다. 대학원 졸업 후, 나를 탈락 시켰던 모든 면접에서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다. "교육을 하는 사람은, 사하라 사막의 모래 한 올을 옮겨도 세상을 바꾼다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던 것 같다. 그 때는 회사에서 실적이 안 되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나 옮길 인간을 선호하지 않는 다는 것을 몰랐기도 했지만, 그런 것 또한 변화라고 순수하게 믿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무엇을 하든, 그건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함께 길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교육을 주제로 다루는 사람들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 단지 그 방법에서 헤맬 뿐이었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가? 

파도를 보지 말고 조류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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