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인먼트의 전성기야 와라!
나를 즐겁게 해 주는 '배움'에 기꺼이 투자하는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는 조용히 다가온 '*인포테인먼트'의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슈를 가벼운 듯, 가볍지 않게 풀어낸 <썰전>에 열광했고, 온갖 잡스러운 정보를 동네 아저씨들이 술 먹듯이 이야기해주는 <알쓸신잡>이 크게 이슈가 되었습니다.'이슈 풀어주는 OO'등의 Youtube 크리에이터 계정 등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다수의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뉴스와 시사 이슈를 가볍지만 깊게 다루면서 자신의 색깔들을 갖추어 나갔고, 사람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관습적으로 진지했던 기존의 뉴스/보도들 보다도 쉽게 설명해주는 새로운 포맷의 미디어들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저 뉴스 채널들도 진지한 serious news를 보완하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 채널을 통해 카드 뉴스 등을 발급하고, second 영상 채널 등으로 B컷 뉴스 등을 내보내고 있죠.
*인포테인먼트 = 인포메이션 + 엔터테인먼트의 신조어. 뉴스나 보도 등을 소프트하게 풀어주는 것을 의미. https://en.wikipedia.org/wiki/Infotainment
위의 사례들을 보면 지금이야 익숙한 것이기도 하고,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주는 재치와 창의성에 감탄을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 전달에 '재미'를 넣는다는 것은 무시받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뉴스 등에서 내용을 소프트하게 다루는 것은 여자나 하는 짓이다..라는 뉘앙스로 여성 저널리즘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인포테인먼트라는 표현이 쓰였다고 하죠. ^^;
인포테인먼트에 비하면, 에듀테인먼트는 차라리 더 친숙한 영역입니다. 에듀(학습) +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로, 즐거움을 주지만 그 와중에 학습이나 배움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육용 게임, 노래/동영상 등의 콘텐츠가 여기에 해당되고, 팟 캐스트 등으로 유익한 정보/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에듀테인먼트에 해당이 됩니다. 위에게 익숙한 TED Talks, 세바시와 같은 강연 프로그램도 에듀테인먼트가 될 수 있죠. 교육적인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그 '재미'를 주기 위한 기저에서는 '학습'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도 공부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크게 좋아하지는 않기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집단적 고민을 오랫동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유아/초등 에듀테인먼트
특히 주의 집중할 수 있는 시간(attention span)이 짧고 청소년, 청년기보다 본능에 충실해 놀이를 좋아하는 유아동, 초등 저학년을 타겟으로 한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한참 성장하는 시기에는 노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놀이와 학습이 결국 동일한 것은 모든 동물에게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낯선 성인 에듀테인먼트
반면 청소년/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배움의 측면에서 '에듀테인먼트'는 상당한 고행을 걸어왔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입시나 취업과 같은 입신양명의 유일한 길로 여겨지던 한국에서는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은 '공부'나 '배움'으로 여겨지지도 않았죠.
오래 씹어 먹어보면서 내용을 숙고하도록 것보다는 중요한 것 위주로 찍어주는 족집게 과외가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시험에 나오는 것만 가르쳐준다는 콘셉트의 제목으로 요약집과 문제집들이 버젓이 나와 불티나게 팔리곤 합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공부하는 것은 '무식한' 짓이고, '낭비'라는 인식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시험에서 탈출하게 된 성인들은 대체로 연필을 꺾습니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이야기. 대학생 중에서, 전공 서적 등을 제외하고 독서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30%대에 불과하는 통계들이 뉴스로 전해졌습니다. 성인들은 미래에 영향을 주는 또는 점수에 영향을 주는 시험에 최대한 집중하되, 그 외의 '배움'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면서도 막상) 싫어하는 '강의'와 '학습'을 전면에 내세우고도 최근 1주년 특집 방송으로 시청률 5.5%를 기록했습니다. 교수들을 모시고 강의를 한다는 점, 사이트로는 '강의 노트'를 제공하는 등 은 전형적인 대학 '특강' '강의'의 요소입니다. 대학에서도 특정한 주제로 명사를 모셔 특강을 하고 강의노트를 제공하는 것은 일상적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강의를 듣는 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게임이나 쇼핑처럼 즐기지는 않습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강의를 듣는 내내 졸고, 빠지고 도망가고 싶은 적이 많았잖아요. 물론, 통찰과 실력은 기본이거니와 말솜씨 자체가 좋은 분들을 명사로 모셨겠으나, 1시간의 강의를 듣는 것이 하나의 TV show로써, 개그 프로그램 뉴스 등 모든 종류의 콘텐츠와 경쟁해서 저 정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 등이 계속 기획되고 소비되는 것 그 자체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강의'와 '학습'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도 막상 싫어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게임을 하게 하기는 쉽지만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만들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지루한 것에는 '재미'와 '흥미'의 요소를 더하려고 노력을 하고,
여가의 시간을 지적으로 보내고 싶어하는 최근의 트렌드가
만나는 곳에서 에듀테인먼트가 발현됩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가 시청률 상승곡선을 타며, 여러 채널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의 경향성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최고의 교수들의 강의를 모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는 Great Course 의 CEO는 2015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듀테인먼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Entertainment values have come to dominate many aspects of life, but another trend has been playing out, too. Call it the academization of leisure."
"엔터테인먼트가 삶의 많은 영역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트렌드가 펼쳐져 있죠. 여가를 지적/학술적으로 즐기는 것(Academization of leisure)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한글 번역이 저 현상을 표현하기엔 다소 미흡한 정도입니다. Academization of leisure라는 영어 표현이 가장 정확한 표현으로, 사람들이 여가를 보낼 때도 아카데믹한 활동을 점점 더 추구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인데요. 가령, 북클럽에 참여하거나, 직업적인 주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어 가는 현상을 저도 체감을 하고 있어요. 그냥 가까이에 산다고, 또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창이라서 모여서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하는 것보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모임을 통해 여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시 두 가지의 경향성으로 주제를 옮기어, 각각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경향성 1. 지루한 것을 재미있게
따분한 것을 못 견디는 경향이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각종 예능에서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는 속도, 화면이 전환되는 속도를 보면 정말 가끔은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그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따분한 것을 못 견뎌하고 있습니다. 관습적으로 진지한 것,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기만 한 설명을 들으면 '아, 내가 못 알아듣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야?'라며 즉각적으로 외면해 버립니다.
지루한 것을 외면하고 모든 장면에서 재미를 찾는 현상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사, 이슈와 관련한 보도도 자막, 음향, 전개 면에서 예능쇼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 훨씬 인기가 좋습니다.
- 선거 개표 방송에도 다양한 재미요소를 도입하는 측면에서 3사가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 종편에서 진행하는 뉴스들의 경우도, night show를 진행하듯이 사회자가 본인의 색깔을 가지고 하나의 show를 하듯이 진행합니다.
인포테인먼트와 나란한 현상이죠.
이처럼 지루하고 따분한 것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향성 2. 여가를 지적으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가를 지적으로 보내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여가와 학습, 배움과 쉼 간의 경계가 점점 불투명해는 것인데요. 지금 현재 직장, 문화를 주도하는 밀레니얼 세대(19-35세)의 여러 가지 특징 등이 반영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밀레니얼 세대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으로 '학습'이나 '학습 커뮤니티'를 활용하고자 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고, 상대방과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거운 여가 활동으로 간주합니다.
*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적 특징
1) 조직의 가치보다 나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
2) 코드형 인간관계를 선호: 옆에 있다고 친한 게 아니라 나와 취향, 관심사 등이 비슷해야 친구 관계로 발전
3)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높은 교육 수준
4) 직업을 고를 때는 장기 근무 가능성보다 내가 발전할 수 있는지를 우선으로 고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독서 토론 모임에 20-30만원을 지출하는 세대가 바로 이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서로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이라 확신하는 세대인 것이죠.
이제, 한 두개의 프로그램 약간의 복합 문화 상품(ex. 독서토론모임) 등으로 배움과 즐거움, 네트워킹을 합치려는 시도들이 자주 보입니다. 아직, 전성기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식 콘텐츠의 유래 없었던 전성기가 조만간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어요. TV Show, 동영상 콘텐츠 등의 콘텐츠 포맷에서 나아가 다양한 문화적 장면에서 에듀테인먼트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에 갭이어 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끔 만든 교육/교훈적 프로그램과 여행 상품을 결합함으로써 유럽 여행 시장의 1/3을 차지하는 큰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던 것 같아요. 학습과 배움을 노골적으로는 부르짖는 현상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계속 배워야 한다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경험의 질'을 판단하여 소비를 결정하기 때문에 지적인 만족감과 의미를 줄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가 모든 문화적 영역으로 은은하게 스며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배움과 학습이 복합 문화 상품의 기저(basis)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적인 즐거움', '지적인 커뮤니티', '빠른 기술 습득과 주변의 피드백', '함께 배우는 즐거움' 등을 코어 경험으로 제시하면서 학습, 여행, 탐험, 휴식, 자기 발전, 네트워킹의 기회 등을 잘 버물린 형태의 학습 조직(learning community) 그 자체가 매력적인 문화 상품이 될 것 같네요.
[참고]
위키피디아: 인포테인먼트 https://en.wikipedia.org/wiki/Infotainment
위키피디아: 에듀테인먼트 https://en.wikipedia.org/wiki/Educational_entertainment
https://www.nytimes.com/2015/03/20/education/turning-to-education-for-fun.html
e-mail: annalee102@gmail.com
facebook: https://www.facebook.com/annah.lee1
Linkedin: www.linkedin.com/in/hyoeun-lee-edu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