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안 스킬갭(skill-gap)을 채워야 할 우리의 숙원
* 본 글은, 새로운 관점의 교육미디어 <Buzz Class>에 기고한 글은 옮긴 것입니다. 원 글은 http://www.buzzclass.kr/bbs/board.php?bo_table=annaedutech&wr_id=2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 필진들의 재미난 글도 많으니 자주 방문해 주세요
2011년 2월. 한 때는 부풀었던 가슴으로 올려다 봤던 대강당 앞에서 동기들과 학사모를 집어 던졌다. 없는 힘을 끌어모아 최대한 하늘 높이 던졌다. 날씨는 아직 겨울이었지만 햇살 만큼은 따뜻한 날이었다. 쩅한 하늘과 날카로운 정오의 해를 배경으로 모자가 빙그르르 몇 바퀴를 거칠게 돌았고, 우리의 모자는 저마다 툭툭툭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속이 후련했다. 이제 지겨운 밤샘 공부와 과제도 안녕. 세상아 내가 간다.
하지만 모자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아가야, 아직 안 끝났단다."
나는 모자를 다시 주워 먼지를 툭툭 털고 호호 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엔 대학과 커리어를 연결시킨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융합과 통섭의 사회라고 크게 힘주어 말하면서도 공손함에 대한 표식으로 '저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때로는 한 사람의 실력을 좀 더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한 칭찬 스킬로 'XX님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1) 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전공'으로 살려 직장생활을 유지한다 2)사람은 자기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을 가장 쉽게 잘 할 수 있다' 라는 가정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전공지식을 사골로 우려 먹을 수 있는 회사는 없다
'관심분야 - 전공 - 직무'의 삼각형을 모두 갖춘 취업을 성공한 취업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저 3분야의 삼각형에 맞춰 취업한 사람이었는데, 석사까지 진학했음에도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그닥 써먹지는 못했다. 대학 전공 교과목에서는 Instructional Designer(교수설계자)의 역량에 맞춘 교육을 받았지만, IT 기업에서 '교육'으로 '사회공헌'과 '혁신'을 만들어 나가라는 역할을 부여 받게 되자, 생명연장을 위해 수평적으로 기술을 늘려나가야만 했다. 학습 커뮤니티를 기획하거나 관리하는 Community Manager라는 역할이 큰 IT 기업에서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파트너들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Relationship management)와 위치 대처 능력이 오히려 사업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육'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안목은 매우 중요했는데, 훈련 받을때처럼 교육 컨설팅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과 툴을 기계적으로 다루면서 보고서를 쭉쭉 뽑아낼 일은 없었지만, 경험적으로 '이것이다, 아니다!' 정도를 빠르게 판단하는데에는 나의 지식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보유한 기술셋의 수평적 확장과 혁신적 변환이 우리의 일상이 된다
다시금 학사모를 던졌던 그 날의 기억을 복기해본다. 나는 저 모자를 던질 때, 석사 진학을 하리라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대학과 같은 공식 교육 기관이 아닌 곳에서 일상동안 다양한 배움을 해야 할 거라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 정의되지 않은 프로젝트와 직무를 계속 해 나가야 할 저주 받은 나의 운명을 미처 알지 못했으며, 잘 정의되지 않은 그 일들을 해내는 내 능력치를 또 다른 잘 정의되지 않은 직무를 갖기 위해 어떻게 증명해낼 수 있을지를 머리 싸매며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것은 정말로 몰랐다.
내 능력치를 확보하고, 그를 증명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었으며
복잡한 IT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쌓아갈 수 있게 장려하고, 그것을 잘 보여줄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나의 업이 되었다.
나의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그리고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의 이 당황스러움은, 대학의 공부와 커리어가 매칭되는 순간, 교육과 직업간의 연결고리가 잘 매듭지어졌다고 믿어온 우리 자신들의 묵은 '가정' 때문이었다.
학위로 연결고리를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학습과 커리어를 엮어나갈까?
위의 기사의 제목을 직역하자면 'Talent'가 곧 교육과 직업을 잇는다..정도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Talent는 한국말로 번역하면 '재능'이라는 의미인데, 이 맥락에서는 한국말로 단순히 '재능'이라고 번역하기엔 그 의미가 다 담기지도 않을 뿐더러 밍밍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최근에 인재를 찾으러 다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업 내에서 Talent Acqusition으로 부르고 있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잘 투입하는 것을 Talent Management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재능'과 '인재'의 그 어디쯤을 가르키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다만,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는 경영자가 고민해야 하고, 또 잘 확보해야 하는 것이 '한명의 사람'도 '하나의 역할'도 아닌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종합적인 '스킬셋'들로 바뀌고 있고, 그런 현상이 'Talent'라는 단어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다시 기사로 돌아와 그 안을 다시 살펴보면, 전통적인 college to career의 파이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과 소비하는 입장, 그리고 누군가의 능력을 인증하고 채용하는 등의 모든 것이 불분명해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는 대학이 교육을 제공하고, 학생은 그 교육을 구매하고, 기업이 능력을 평가한다는 고정된 역할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상에서는 예전처럼 그것이 뚜렷하진 않다. 이제는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learning path를 만들어 학습하고 기업을 설득하기도 하고, 기업이 대학보다 빨리 신기술을 전파하는 무료의 교육과정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배포해 버리기도 한다.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다 공개해버리는 MOOC 현상과 Udacity의 주력 프로그램인 나노디그리와 같은 것들, 구글이나 IBM에서 머신러닝이나 블록체인 강의를 무료로 제작하여 공개해버리는 것들은 앞에서 기술한 현상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것들이 경력 개발과 취업에 더 유용하다고 믿는 대학생들도 많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몇년 앞서 '단기간 압축적인 시간' 내에 채용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IT 분야에서는 '코딩부트캠프'라고 불리는 단기간 집중 교육 프로그램들이 4-5년부터 부쩍 늘었다. 구글에 'Coding bootcamp'라고 검색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설 교육기관, 스타트업들이 직무에 특화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심지어는 취업을 보장한다는 표현까지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압축적인 교육을 통해 이직이나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특정 직무를 타겟팅하여 그 직무에서 필요한 정수(epitome)를 체화하게끔 프로젝트중심의 수업을 진행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미국에서 이런 것들이 실제로 매우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끔찍히도 실용주의적인 그들의 특징도 있겠으나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IT 분야가 매우 호황이고, 굳이 IT도 한정하더라도 일자리가 풍부하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600만개의 일자리가 열려있고,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사상 최저치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많이 씁쓸하긴 했다)
아무튼! 실업률과 같은 경제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전반적인 산업 구조의 변화가 일자리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 set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도 몇 년의 시차가 지나면 그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난 미래학자는 아니다)
학위를 대체(또는 보완할) 또 다른 나의 증명 방식, 그리고 거대한 트렌드는 Mico-credential이라는 현상으로 세계적으로 불리고 있다.
Mico-credential(마이크로 크리덴셜)은, 학위보다는 더 지엽적인 분야의 지식/기술에 대한 실력을 검증해 주는 증빙을 의미들을 의미한다. 즉, 앞서 언급된 다양한 온라인 기반의 공개 강의, 부트캠프 등의 교육 결과들을 의미할 수 있다. 유다시티의 나노디그리나 코세라의 certification을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전공이 특정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작은 소소한 증빙이 필요하게 되었다. 가령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는 것이 내가 iOS 앱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에 코세라나 유다시티에서 iOS Developer 나노디그리나 certification을 따고 이로써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이미 직업 세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직군을 바꾸려고 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산업의 변화로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게 되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에도 유용하다. 미국의 경우, micro-credential 과 관련한 교육시장의 성장세가 매우 무서워, 대학 입시를 겨냥한 교육 시장보다도 이미 더 규모가 커진 상태라고 한다.
매듭을 지어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내상을 입힐 뿐. 장기적인 생존에 유리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 매듭고리를 지어버리는 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색색깔의 다채로운 교육과 micro-credential로 계속 커리어를 자기주도적으로 연장해 나가야 할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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