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초반부에 주인공인 조엘은 출근길에 나섰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기차를 타고 Montauk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겨울의 해변에서 왠 낯선 여자가 자꾸 주변을 서성이는 것만 같다. 뭔가 수상한 그 여자(케이트윈슬렛역, 여자주인공)는 Montauk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남자 주인공 조엘에게 쪼르르 다가가 아무말을 쏟아낸다. 영화 스토리상, 사실은 서로 사랑했던 관계이지만 서로 기억을 잃은 상태다. 누가 봐도 말을 걸기 위해 만들어내는 대화. 어색한 대화임에도 일방적인 노력으로 대화는 끊기지 않고 몇 번을 주고 받는다. 기차는 스치는 타인들이 모여 잠시 함께 흐를 공간일 뿐인데, 아무말이나 던지는 이 여자는 타인에게 그어 놓을법한 선을 이상하게 무시해버린 거다. 여자주인공은 그냥 이유없이 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 거다. 그런게 사랑이니까? 그리고 그 아무말 대잔치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마 머리색깔 때문에 저를 못알아봤을 거에요. 블루 루인 이에요. 이름 죽이죠? 그 회사에서 여러가지 컬러를 내는데, 이름이 다 끝내줘요.... 그런 이름 만드는 것도 직업일거야."
"그게 직업이 될 것 같아요? 헤어 컬러가 몇 개나 된다고. 끽해야 50개?"
"누군가는 그 일을 하겠죠. 에이전트 오렌지! 방금 하나 지어냈어요!"
이 장면은 둘의 다른 성격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 같다. 뭔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이 만남과 대화는 나중에 이 둘이 이럴만도 한 사이라는 걸 알고 나면 소름돋게 잘 이해가 되지만, 사랑의 여러 면이 그러하듯, 이 장면만으로는 둘 사이에 피어나는 게 무엇인지 도대체가 알아차리기 힘들다.
나는 영화 비평에 재주가 있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여자주인공의 머리색깔은 스토리 전개상의 여자주인공의 감정선 및 여러가지를 시사한다고 한다. 아주 쨍하고 선명하지만 또 그것들은 빨강, 노랑, 파랑처럼 분명하고 단순한 이름으로 표현되기에는 아까운 색감들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성격의 그녀의 마음이란, 밖으로 그렇게 쨍한 빛을 뿜어 내면서도 남들이 뭐라 이름 부르고 알아차려주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고 보다듬어 주고 싶은 사람과 그런 것은 다 똑같아보이는 두 사람이 만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럼에도 이어 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걸까?
넓은 컬러 스펙트럼 위의 한 점. 뭐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사실 무엇이라도 좋을 거다. 문화권에 따라 색깔을 부르는 이름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또 한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하얀 설원에서 나고 자란 이누이트 어린이는 천 가지의 하얀색을 인식한다는 말도 있다. '하늘 아래 똑같은 색조 없다'는 말처럼, 글로벌 뷰티를 이끌어나가는 K-뷰티의 화장품 작명 센스(ex. '목요일엔 소개팅 오렌지' '지각 5분전 핑크' '설레이고 쉬폰 핑크' 등등...)를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벽돌빛 립스틱'이라던가 'MLBB 컬러' '음영 컬러' 같은 색깔 이름이 상식적으로 통한다. (이 글을 읽을 남자분들에게는 못 알아 들을 말을 해서 죄송하다.)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댜 보면, 바로 옆의 비슷한 무언가와는 다른 '그것만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것을 발견하면 그것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이쯤 되면, 영화 속 클레멘타인의 말처럼 누군가는 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꽤나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수 많은 색의 이름을 늘 찾아 헤매고 또 특징을 찾아서 그렇게 불러주겠지.
뭐라고 불러주기 애매한 게 색깔 뿐일까?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떨까? 비록 지금은 비행기를 못 타고 다니는 신세이지만, 다른 나라에 입국 심사를 하면 직업란에 나는 그냥 Office worker라고 적어서 제출하곤 했다. 내 거북목과 구부정한 자세가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나는 늘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다른 나라로 입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칸에 내 일을 적어서 제출할 때 나는 '아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어야 돼.' 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냥 Office Worker라고 적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형식상의 한 절차일 뿐 모르겠지만, 나처럼 자신의 일을 아이덴티티의 상당 부분으로 고려하는 사람들 중엔, 나 처럼 멈칫하는 사람들이 또 있지 않았을까?
공무원, 회사원, 경찰관... 어린 시절에 책에서 배운 직업들은 단순 명료하게 분류된 것이었고, 작은 지역 사회에 나고 자라서 그런지 비교적 나의 부모님과 친구 부모님들의 직업도 그렇게 단순하게 분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일을 시작한 후에 내가 직접 개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들은 뭔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제 나이가 되어서 다행히도 독립을 했고, 큰 회사에 다니다가 최근에는 좀 더 작지만 똘똘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멋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다.
'에듀테크 읽어주는 여자'라는 필명으로 강의도 하고 기고도 많이 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필명을 바꿨다. 그렇다고 내가 에듀테크 분야에서 겪었던 일들이 휘발해서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간의 행적이 모두 의미가 없어진 것도 아니지만, 그냥 나는 지금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불리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 필명도, 내가 쓰던 글들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커버업 하는 것들은 아니었는데도, 뭔가 직업적으로 피봇(pivot)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에전처럼은 깊게 고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저 필명을 당장 쓰기에는 어려웠다. 그리고 나서 꽤 오랫동안 글을 쉬었다. 특히나 신변 잡기 적인 글이 아닌, 장점으로 키웠던 분석적인 글을 쓰는 것을 정말 뚝! 하고 멈추어 버렸는데, 무언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분석하고 이야기 한다는 것에는 사실 굉장한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에듀테크 읽어주는 여자' 시절의 나는 플랫폼 대기업에서 Tech 보급과 관련한 여러 층위의 교육 사업들을 만들었다. 온라인도 기반도 있었고, 오프라인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학습 공동체' 개념에 집중했다.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공부를 많이 했고, 공부한 것 중 90%는 공부로 그쳤는데, 그런 배움과 생각들이 나는 너무 아까워서 메모장에 노트를 남기기 시작하다가, 그 노트가 100장이 넘어간 시점에서 블로그 글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 때도, 내가 하는 일은 너무 설명하기가 어려웠고, 내가 쓰는 글이 그 일을 온전히 반영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반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시점에 나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세일즈와 마케팅 그 어디쯤으로 이야기 해 두고, 나도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해보자 싶은 자리였는데.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다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PR 일도 해 보게 되고, 콘텐츠 마케팅도 해 보게 되고, 지금은 인바운드 마케팅이나 마케팅 자동화 같은 (내 생각엔) 더 고도화된 마케터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해야 하고, 하루의 일감도 눈감고 떴다 하면 쌓이는 곳이라, 미처 생각을 정리해서 공표하고 그러진 못했는데, 이전의 커리어에서 워낙 정점에서 전혀 다른 분야로 이동했던 터라, 사람들이 나의 결정에 대해서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걸 작년 말쯤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이 일을 했다가 저 일을 한다는 거 자체를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나에게 일어난 큰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많이 다물었나 보다.
사업 기획을 오랫동안 했던 나는 지금은 콘텐츠 마케팅과 인바운드 마케팅을 디렉팅한다. 돌이켜 보면, 예전 직장이 플랫폼 사업자 였고, 사실상 검색 엔진을 가장한 콘텐츠 기업이었으니까. 콘텐츠가 낯선 일도 아니다. 오히려 하던 일의 일 부분은 제휴나 직접 콘텐츠를 제작,제공하느 것도 포함되어 있었고, 잠시라도 잘못된 말이 올라가면 그야 말로 박살이 나는, 극도로 주목성이 높은 콘텐츠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집행하는 일을 꾸준히 했으니, 알고보면 이것도 경험이 없진 않은 거다.
취미로 하던 글쓰기가 직업의 일부가 된 부분도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아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는 글을 통해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사실 운이 좋아서, 내가 세웠던 목표는 3개월 안 되어서 어찌저찌 달성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용돈으로나 할만한 작은 벌이였고, 내가 쓰는 글로 어느 정도 생계를 책임질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스쳐지나가듯 했는데, 이 곳에서 콘텐츠팀을 총괄하면서 다양하게 작성하는 기술 블로그 편집물 같은 것들이 나의 bread & butter가 되어 주었다.
지표 관리도 팀 리드를 한 이후로는 꾸준히 해 왔던 일이니까, 마케팅/세일즈 지표 관리도 어떻게 저떻게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막연하게 동경해왔던 하드코어 기술 분야에서 결국 일하게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인데, 기술의 주변부로써, 기술을 잘 전달하거나 사람들이 기술을 서로 가르치고 서로를 독려할 수 있도록 지지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술을 가진 사람과 집단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나는 저런 기술 중심 조직에서는 아직 일해본 적이 없다는 묘한 열등감도 있었는데, 사실 이직을 결정할 땐 이 모든 요소가 정확히는 안 맞는데 오묘하게 맞는 느낌으로 들어맞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빈틈없이 들어 맞는 건 아니다.
사업 기획을 하는 것도, 매번 다른 사업을 기획해야 하다보니, 솔솔찮게 6개월 마다 이직하는 기분이었는데, 그 때 다양하게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은 정말 좋은 양분이 되어 주고 있다.
항상 나는 내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내가 서 있던 곳에서 보이는 옆의 색을 동경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만의 컬러차트를 만들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묘하게 맞은 느낌 사이로, 오묘하게 비어져 있는 그 공간들을 치열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지난 2년 동안의 숙제였고, 지금도 그 숙제는 다 해결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의 Talent Package는 빨강과 노랑과 파랑과 초록이 적당히 아름답게 섞인 어떤 '느낌' 있는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운 직업의 세계와 같이 그 이름이 명료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거다. 자꾸 알고 있는 이름으로 내 일을 정의 하려고 하면, 상황이 거기에 예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케터인가? 마케터라면 무슨 마케터인가? 그냥 관리자인가? 이게 나의 그간의 커리어의 정체성을 모두 대변해주는건가?
밖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이제 마케팅 관련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2년이나 이 일을 하는데도 이 말은 아직도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예전 직장 다닐때 자기 소개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무슨 일을 하든, 내 일을 소개 하는게 어색해! 나는 원래 그런가봐!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오늘의 나는 어제 내가 했던 일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뭐라도 불리든 간에 세상에 단절되는 일은 없다는 거고, 내 자리에서 할만한 일과, 그 일을 통해 얻은 꺠달음에 대해 할 말은 항상 있다는 거다.
문화마다 색을 불러주는 이름이 다양하듯, 일의 문화에서 일의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은 다양할 거다. 새로운 기술로 아애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될 때, 협업 도구가 발달하고 협업 문화가 바뀌어서, 몇 가지 일들은 단순화될 때, 극단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을 더 많이 대신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일을 새롭게 부르거나 뭐라고 불러야 할 지 길을 잃을 수 있다. 이 때의 나는 '이효은, 마케터로써 20년을 일하다'라는 묘비명 따위는 절대로 쓸 수 없을 거다.
자주 인용하는 한 구절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앞길은 왜 두려운가, 길이 없으면 광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