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2부 ADHD 편 3편
저는 adhd임을 판명받기 위해 뇌파 검사와 CAT 검사를 받았습니다. 뇌파 검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서 저렴했지만, CAT 검사는 15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ADHD를 겪고 있었지만 이게 병이라고 인식한 것은 올해 들어서였습니다. 거의 4년 다 되어 가는 조울증도 작년 말에서야 판정받았죠.
뇌파검사를 할 때 이상한 망 같은 걸 씁니다. 그리 이상한 전해질이 들어간 액체를 머리에 흐르게 합니다. 뇌파를 잘 분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호사분이 설명하셨죠. 느낌이 시원한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죠.. 찝찝하고 시원한 느낌이 머리에서 들었습니다. 근데 그 상태로 20분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야 잘 된다고 해서 강각적으로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뜩이나 ADHD가 있었기 때문에 그 20분은 무슨 5시간같이 길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위의 사진을 보시더니 전형적인 adhd환자의 뇌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인지능력지수가 10% 미만이기 때문에 환자분은 깨어있어도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상태라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뇌가 잠에 담가져 있는 건가요?라고 장난 삼아 여쭤보니까 그게 정확히 맞다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저의 뇌가 잠에 절여져 있다는 것을 듣고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이렇게 멀쩡히 깬 상태로 adhd임에도 시간을 체크해 가면서 병원에 일찍 가는 제 모든 과정이 부정당한 느낌이었죠.
의사 선생님께서는 보고서를 계속해서 그냥 넘기셨습니다. 중간중간 그래프가 나오고, 표가 나오는데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계속해서 넘어가시다가 익숙한 알파파 감마파 내용이 나왔습니다. 근데 이 부분에서 잠에 절여져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죠.
붉은색일수록 수치가 높은데 잠을 잘 때 나오는 뇌파인 델타파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검사는 총 7가지 검사였습니다.
단순선택주의력검사(시각)-단축형
단순 선택주의력 검사(청각)-단축형
억제지속 주의력 검사
간섭선택주의력검사
분할주의력검사
작업기억력검사(정방향)
작업기억력검사(역방향)
이렇게 순서대로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름만으로는 뭔지 모르시겠죠?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ㅎ 기억이 난다 해도 알려드릴 수 없어요. 저작권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죠!
검사 시작 전, 화면에 이런 검사들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시작 버튼 누르기 전'이라 잠깐 찍을 수 있었고, 이후엔 당연히 핸드폰 내려놓고 반납했습니다. (검사 중엔 찍는다든가 그런 여유가 1도 없었습니다…! 찍으면 안 됩니다!)
결론
이 문구는 요약 보고서에 들어있는 문구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날 저에게 최종적으로 ADHD약을 지어주셨습니다. 검사 결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약을 처방받는 순간, 저는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ADHD는 저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알 수 없던 혼란과 좌절에 이름이 붙었을 뿐입니다. 진단 이후에도 여전히 힘든 날은 많았지만, 최소한 이제는 제 삶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2부에서는 그 짧은 단면만 담았지만, ADHD는 제 일상의 수많은 풍경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불안한 저녁 식탁, 빗나간 시간 감각, 그리고 반복된 검사들 속에서 저는 조금씩 저를 이해해 나갔습니다.
진단 이후,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ADHD 진단을 받은 후, 제게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은 ‘허탈함’이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안도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설명해 줄 단어가 생겼다는 사실에. 하지만 동시에, 이제부터는 살아가기 위한 전략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습니다.
가장 시급했던 건 ‘지각’ 문제였습니다.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시간 감각이 흐릿했습니다. 머릿속에선 “10분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20분 넘게 걸리기 일쑤였습니다. 교통, 준비,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모두 무시된 채, 저는 늘 시간과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때부터 항상 "손이 많이 가는 애"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애는 저에게 대놓고 "너는 너무 손이 많이 가"라고 말해서 벙쪘던 경우도 있었죠. 그때는 그게 심한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인이 다 되고 나서 병원에 가서 진단으로써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검사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ADHD 환자들은 ‘시간 추정(Time Estimation)’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전두엽, 특히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라는 부위가 시간 계획과 예측을 담당하는데, 이 영역의 기능 저하가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수치’와 ‘도구’를 믿기로 했습니다. 저는 ‘외적 시간화(Externalizing Time)’ 전략을 쓰기로 했습니다. 머릿속 시간 대신, 눈에 보이는 시간을 믿기로 한 것입니다.
이 전략을 바로 찾아보고 쓰는 이유는 지금 당장 안쓰면 병원에서 치료를 못 받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adhd가 있으면 지각을 자주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는 10분 가까이 지각해서 그날의 정신과 예약이 취소될 수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2024년 5월 최초로 병원을 간 이래에 2025년 중반까지의 1년 동안 지각을 정말 자주했습니다. 저의 천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ADHD라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에 ADHD라는게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더 확실하고도 즉각적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병원 예약이 있는 날.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갤럭시 워치의 GPS기능을 켜서 이동거리와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처음엔 “5분이면 가겠지” 싶었지만, 실제로는 8분 50초~9분 20초가 걸렸습니다. 저의 감을 믿고 다녔으면 항상 5분정도 지각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 실측을 몇 차례 반복해 평균값을 냈고, 그다음부터는 엘리베이터 시간까지 포함해 병원 예약 15분 전에는 집을 나서도록 ‘나가기 알람’을 설정했습니다. ‘준비 시작 알람’도 따로 맞췄습니다.
그 결과, 저만의 시간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각적 타이머: 남은 시간을 눈으로 보며 시간 흐름 인식
루틴 훈련: 반복되는 일과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습관화
알람·리마인더 활용: 행동 전환 시점을 외부에서 알려줌
일정표 작성: 하루 일정을 시각화해 전체를 조망함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내 직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와의 약속이 있을 땐 반드시 지도 앱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기본적으로 30분 일찍 출발하는 습관을 유지합니다.
처음엔 너무 빡빡하고 피곤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과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행동합니다. 이 전략은 저를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저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습니다. 지금도 시간은 종종 제 손을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자신을 조율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저는 이제 그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ADHD는 삶을 망가뜨리는 병이 아닙니다. 단지, 그 삶을 조율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adhd편의 마지막 편입니다. 저는 ADHD라는 병에 대해서 앞서 이야기한 ptsd나 앞으로 이야기할 조울증이라는 병보다 심하게 겪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PTSD와 ADHD와 조울증 모두가 저를 똑같은 비율로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통이 3배로 오는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막상 ADHD에 대한 이야기가 적게 나왔습니다. 이는 객관적으로 그 외의 두 병보다 저를 덜 괴롭혔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병들은 제가 처치해야 하는 괴물들이고 저는 이 괴물의 정체들을 이 브런치북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써내려가면서 또 다른 치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2부 ADHD 편>의 3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