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서 마주한 조울증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3부 조울증 편 1편

by 조영철

안녕하세요! 저번 글까지 제가 앓고 있는 ADHD와 PTSD를 다뤘습니다. 이번 글부터는 마지막으로 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울증은 5살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습니다. 고3 무렵부터 시작되었고 진단은 22살에 받았죠.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뿌리는 오래전부터, 5살 무렵부터 자라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의 고통과 무방비한 감정들이, 오랜 시간 속에서 응축되었다가, 결국 그 시기에 터져 나온 것 같아요.


자아비동조적 강박적 사고, 그리고 불안의 순간들

저의 병들은 경계를 넘나듭니다. 이 증상은 ADHD의 증상이다, 조울증의 증상이다 딱 단정 지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가능성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가 하는 말을 듣고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죠. 강박적 사고도 그 중하나입니다.

강박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자아비동조적 강박과 자아동조적 강박입니다. 자아동조적 강박은 예를 들어, 정리 정돈이 완벽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은 자아동조적 강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자아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강박이 일어날때 자아비동조적 강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반면, ‘만지면 안 되는데 손이 갈까 봐 무섭다’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생각이 침입할 때는 자아비동조적 강박이라고 부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증상이 강박장애(OCD)는 아니지만, 조울증의 불안 혼재기에서 나타나는 자아비동조적 강박사고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이 증상을 ADHD의 일부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조울증의 흐름 속에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 병은 회색지대, 내 모습은 회색인간

조울증 증상에 더 가깝다는 표현을 의사 선생님께서 하셨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병은 회색지대인 거 같다” 딱 잘라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와 동시에 저는 회색인간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증상은 어떤 병에 소속되는지 애매한 방랑자 같은 느낌인데 나도 마찬가지구나 생각했습니다.


자아비동조적 강박 사고의 트리거들

베란다

불, 불판

끓는 냄비

이것들을 보면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올라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극도의 불안감이 올라옵니다. 불판이나 끊는 냄비를 만지게 됐을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매우 위험하죠.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를 자아비동조적 강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어떤 생각이 원치 않게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 생각이 ‘내가 한 생각 같지 않은’ 느낌인 것이죠. 자아비동조적 강박 사고때문에 생기는 힘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고깃집에서 마주한 좌절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고깃집에 갔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불안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기불판이 제 눈앞에 놓이는 순간, 몸 전체가 경직되었고 숨이 막혔습니다. 한순간에 올라오는 불안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밖으로 뛰쳐나왔고, 가족들은 걱정하며 전화를 걸어왔지만, 저는 '속이 안 좋다'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리고 그날, 가족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두 시간 넘게 혼자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그 두 시간은 저에게 혼란, 외로움, 자괴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무엇보다 8개월 동안 병원에 다녔음에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제게 깊은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치료받은 걸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고깃집에 가지 않습니다. 특히 ‘불’은 가장 강력한 불안 유발 요소였습니다. 라이터불, 고기 불판, 끓는 냄비, 데워진 숯불 같은 일상적인 장면에서조차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졌습니다.

이 불안은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도 있었고, 중학생 때는 조금 나아졌다가, 고3 무렵 다시 심해졌습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뒤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베란다 봉쇄

심지어 제 방에는 베란다가 있어, 그곳이 불안 유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란다를 봉쇄했습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방이 되었고, 조울증 치료에는 햇빛이 필요하지만, 불안 때문에 햇빛조차 포기해야 했습니다. 방은 마치 가장 싼 고시원의 방처럼 어두웠고, 그래서 저는 밖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햇빛을 보고,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저에게 남은 치료 수단이었습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3부 조울증 편>의 1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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