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3부 조울증 편 2편
저번 글에서 저의 조울증 증상인 자아비동조적 강박적 사고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번 글부터 더 본격적으로 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조울증은 단지 기분이 들쭉날쭉한 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마비시키고, 시간을 불규칙하게 휘갈기는 고통의 이름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의 나를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오늘은 괜찮은 날일까, 아니면 다시 무너지는 날일까.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과적 질환입니다. 그래서 '양극성 장애'라는 이름이 붙었죠. 한없이 들뜨거나,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의 폭은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들뜸의 끝에는 탈진이 있고, 가라앉음의 끝에는 고립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울증 환자의 수가 우울증 환자에 비해 적게 보고됩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인 수의 차이가 아니라, 증상의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착시입니다. 사회적으로 조울증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단순한 기분 기복이나 예민함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병'이 아닙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어렵습니다. 조증과 우울증이 계절처럼 주기적으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의 파도는 불시에 덮쳐오며, 어떤 경고도 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평범한 일상조차 어렵고, 사회적 활동이나 대인 관계는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주는 상태가 좋으니까 약속을 잡자.
이런 계획은 조울증에겐 사치입니다. 갑작스럽게 무기력해질 수도 있고, 예기치 않게 들뜬 감정이 튀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약속은 자꾸 취소되고, 관계는 멀어지며, 결국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게 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거의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낮밤이 바뀌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냈습니다. 사람들과의 연결은 느슨해졌고, 방 안은 점점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시에는 제 병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조울증이든 PTSD든,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그저 몸이 무겁고, 머리가 먹먹하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는 감당이 되지 않았고, 약속은 거짓말로 피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에게는 ‘재수 중’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유튜브를 보며 허무하게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방의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뉴스에서 본 은둔형 외톨이의 방처럼 쓰레기가 산더미는 아니었지만, 정돈되지 않은 옷가지와 먼지 쌓인 바닥은 나름의 고요한 절망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저는 아마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궜을 겁니다.
그 시기는 저에게 있어 정체성의 혼란기였습니다. 매일같이 트라우마가 불쑥불쑥 떠올랐고, 무기력함은 땅 밑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지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제 안에 조용한 목소리가 생겼습니다. 이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것. 이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병 때문이라는 것. 아주 작고 희미한 인식이었지만, 그것이 저를 조금씩 견디게 해 줬습니다.
"이 상태가 병 때문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 질문조차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물음 속에는, 여전히 살아보려는 의지가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고, 나는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네가 잘못된 게 아니었어. 단지, 네가 너무 오래 아팠을 뿐이야."
그리고 이 말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느린 걸음도, 불규칙한 숨결도, 다 이유 있는 회복의 과정입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3부 조울증 편>의 2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