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함께한 17년, 두 시기로 나눈 나의 시간

『5살부터 PTSD,ADHD,조울증』2부 ADHD 편 2편

by 조영철

1부를 쓰며 나는 ‘마음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상처와 용서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모든 건 ‘인간이 어떻게 느끼고 말하는가’에 대한 공부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언젠가 몸의 신호와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그때부터 나의 병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언어가 끝나는 자리에서, 진단의 언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살, 트라우마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시절. 그때 겪은 사건은 제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PTSD 그리고 무엇보다 ADHD가 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버거웠던 건 ADHD였습니다. 그건 남들에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17년 동안 ADHD와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을요. 정신과에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유튜브에 검색하려다 까먹는 일, 반복되던 지각, 충동적인 행동들. 선생님은 자가진단지를 권했고,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ADHD 수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진단 이전, 방향이 있는 불안

어느 날, 진료실에서 저는 적어간 질문을 읽었습니다.

"죽는 장면이 자꾸 떠올라요. 전에는 불안하지 않았는데, 이젠 불안해요. 그 불안은 불판이나 끓는 냄비를 볼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해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이 들면, 불안은 방 안의 베란다로 쏠리고요. 불판이나 냄비를 보면, 만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와요. 방향이 있는 불안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놀란 듯했지만 침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강박적인 행동은 없고, 강박적 사고만 있어요. 전형적인 ADHD 증상입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어둠의 터널에도 결국 빛은 들어왔습니다.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긴 트라우마의 터널을 지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만 살아온 저는 그 빛이 반가우면서도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어둠은 제게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숨죽이는 법, 조심하는 법, 아무 말 없이 버티는 법을 저는 그 안에서 배웠습니다.


그런 제가 마주한 빛은 억울함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참고 눌러왔던 억울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제 처지에 대한 억울함, 터널에 강제로 들어가야 했던 억울함, 빠져나왔음에도 고통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 그 억울함은 곧 익숙함이 되었고, 저를 마비시키기보다 제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서 저는 마침내 더 근원적인 감정을 마주했습니다. 바로 불안감이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불안. 제 일상의 틈마다 파고들어 있었던 그 불안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열기구 위에 중심을 잃은 채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기에, 매 순간이 긴장 속의 연속이었고, 모든 시도가 조심스러웠습니다. 불안은 제 삶의 배경이 되었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후 뇌파 검사와 CAT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ADHD 환자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불안, ADHD 1기

'17년 산 ADHD'라는 말은 그렇게 제 머릿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섯 살 트라우마 이후, 여섯 살 무렵부터 강박적 사고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은 "귀신 들린 거 아니냐"라고 했고, 저는 그 말에 겁을 먹었습니다.

저는 제 긴 ADHD 경험을 두 시기로 나눕니다. 5살부터 17살까지는 ADHD 1기, 18살 이후는 ADHD 2기입니다.

1기 시절, 강박적 사고는 점차 줄었지만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초등 저학년 시절, 제 행동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수업 후 복도나 창가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윗옷을 걷고 배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으면 불안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이상하게 여겼고, 점점 멀어졌습니다.

불을 켜면 꺼야 했고, 껐으면 다시 켜야 했습니다. 끓는 냄비를 보면 만져야 했습니다. 참지 못하면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강박적 사고는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이었고, 통제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친구 관계도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5학년, 6학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생겼습니다.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왜 친구가 없냐"라고 물었고, 6학년 때는 "아직도 친구가 없구나. 노력하렴"이라 말했습니다. 그 복도, 층수, 표정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인식의 전환, ADHD 2기 시작

ADHD 2기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입니다. 증상은 다시 심해졌지만,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나는 잘못 태어난 아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건 병이고, 나을 수 있다"라고 믿습니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강박적 사고는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진 않습니다.




[작가의 메모 | 2025년 10월 수정 기록]

이 글은 당시 ADHD로 이해하고 있던 제 증상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후 조울증(Ⅱ형) 진단을 받으면서,

강박적 사고가 ADHD가 아닌 조울증의 일부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그때의 나’가 세상을 해석하던 방식으로 남겨둡니다.

제 진단과 이해가 변화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여정의 일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ADHD,조울증』 시리즈 <2부 ADHD 편>의 2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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