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용서법 이후 - 나는 부모의 언어를 상속받았다

1부 PTSD 트라우마 12편 "언어상속"에 대해서

by 조영철


넌 하루의 리듬이 없잖아

아빠(계부)는 항상 술을 마시고 저에게 대화를 할 때마다 상처가 되는 말을 종종 하셨습니다. 최근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리듬이 왔다 갔다 합니다. ADHD 때문인 것 같아요”

“너는 하루의 리듬이 없잖아. 아침에서 오후까지 이어지는…..”


저는 이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스쳤습니다. 사실상 뒷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한마디는 마치 “너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해,” “너는 흐름이 엉망이야”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조울증과 ADHD로 인해 하루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압니다. 그래서 그 말은 제 노력을 한순간에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마 아빠는 ‘관찰’하듯 말한 것이겠죠. “네가 자주 밤낮이 바뀌잖아” 정도로 말이죠. 하지 문제는 그 말의 뉘앙스입니다. 관찰처럼 들리지 않고 판단과 비교의 톤으로 말했어요.

“넌 없잖아, 나는 있잖아.”

그 구조는 누가 들어도 우월함이 섞인 말이었습니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평가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리듬”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저 리듬의 기준이 달랐던 것입니다. 조울증이나 ADHD가 있는 사람에게 하루의 리듬은 외부 시계(낮과 밤)가 아니라 내부 에너지의 흐름(집중, 피로, 정서 파동)으로 움직입니다.


그건 ‘없다’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입니다. 저는 리듬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리듬의 단위가 남들과 다를 뿐입니다. 만약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빠, 나는 리듬이 없는 게 아니라, 내 몸의 리듬이 좀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이야. 그래서 그걸 조율하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어.”




이렇게 아빠는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상처의 대부분은 ‘의도’가 아니라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라, 그의 언어가 나에게는 아픔으로 닿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언어를 상속받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디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강연이었는지도, 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의미를 내 삶 속에서 다시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부모의 언어를 상속받는다

사람은 부모의 언어를 상속받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화를 내는 방법도, 그들이 배운 감정의 문법 안에서 물려받아요. 아빠는 할아버지에게서 부자(父子) 관계의 언어를 상속받았습니다.

그 언어는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감정보다 훈계가 먼저였고,
공감보다 방향이 먼저였습니다.

그 언어는 아빠에게도 상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 언어를 물려주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말을 아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계속 필터링하십니다. 왜냐하면 말이 상처가 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계속해서 상속되어 내려오던 그 언어를 자른 최초의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술을 마신 날이면 가끔 그 언어의 잔재가 무의식처럼 튀어나왔습니다. 그건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상속의 그림자였습니다.


아빠의 할아버지로부터의 언어 상속은 식탁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아빠의 국이 좀 짠데,, 반찬이 좀 짠데,,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은데.. 등등 불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엄마는 항상 기분이 안 좋아지셨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하셨는데 맛있다고 해주시지.... 난 맛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다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된 언어였습니다. 일시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식탁에서 만날 때마다(주말부부이기 때문에) 그러시다는 것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했던 언어를 그대로 상속받으셨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맥락으로 받아들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연민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아빠는 상속받은 언어를 끊으려 애쓴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방향이 달랐습니다. 그 방향이 바로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필터링하며 저와 형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그걸 늦게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생각에 아빠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입니다. ‘아버지의 언어’를 새로 익히는 중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그를 미워하기보다, 그의 배움의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불쌍해서 느끼는 연민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에서 비롯된 여유였습니다.


이제 저는 생각합니다. 그가 언어의 상속을 끊으려 애쓴 것처럼, 나 역시 내 세대에서 그 언어를 새로 써야 한다고. 말투와 시선, 침묵의 길이까지도 누군가에게 상속될 수 있다면 그건 더 다정한 문법이길 바랍니다.




작가의 메모 | 2025년 10월

이 글은 ‘부모용서법’ 이후,
용서를 넘어 ‘언어의 세대적 상속’을 이해하게 된 과정의 기록입니다.
아빠를 이해한다는 건, 그가 물려받은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 언어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언어로 다음 세대를 잇고자 합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1부 PTSD트라우마 편>의 마지막 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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