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제가 국가교육위원회에 회의적으로 활동했던 이유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저의 브런치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강박적 사고 있죠? 불판, 불을 보면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오는 등등. 그것들을 이때까지 ADHD현상의 일종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바뀌어서 조울증의 증상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병들은 경계를 넘나듭니다. 이 증상은 ADHD의 증상이다, 조울증의 증상이다 딱 단정 지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가능성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가 하는 말을 듣고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죠. 강박적 사고도 그 중하나입니다.
강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아비동조적 강박과 자아동조적 강박입니다. 자아동조적 강박은 예를 들어, 정리 정돈이 완벽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은 자아동조적 강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자아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강박이 일어날 때 자아비동조적 강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반면, ‘만지면 안 되는데 손이 갈까 봐 무섭다’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생각이 침입할 때는 자아비동조적 강박이라고 부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증상이 강박장애(OCD)는 아니지만, 조울증의 불안 혼재기에서 나타나는 자아비동조적 강박사고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이 증상을 ADHD의 일부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조울증의 흐름 속에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병이 약간 라인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있어요.
ADHD인 줄 알았는데 조울증의 증상이라니? 마치 장난 삼아 생각해 본 것이 있습니다. 유재석 라인이 있고 강호동라인이 있죠? 조세호 님이 유재석 라인이고 이수근 님이 강호동 라인이라고 알고 있어요. 근데 강호동 라인인 이수근 님이 유재석 라인으로 갈아타서 유퀴즈를 유재석, 조세호, 이수근 셋이서 MC 하는 걸 보는 느낌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죠.
저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제4기 국가교육위원회 청년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청년특별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간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관심사. 10대의 청소년 자살률. 10대 청소년의 자살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36%였던 비율은 이제 20대와 같은 수준인 50%에 이르렀습니다. 일 년에 100명의 청소년이 죽으면 그중 50%는 자살로 사망한다고 통계청은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아직 세상을 배워가는 나이에, 같은 또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어요.
그 시절 저는 10대였다. 내 또래가 죽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삶을 포기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답을 단순하게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10대들은 정형화된 구조 속에서 산다. 학교, 학원, 집 — 이 세 곳이 전부다."
이 단조로운 구조 속에서 10대의 자살 원인은 결국 두 갈래로 수렴된다고 느꼈습니다.
입시, 그리고 인간관계.
입시는 제도의 문제이고, 인간관계는 감정과 대화의 문제다. 입시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지만, 인간관계는 이해로 바꿀 수 있다. 저는 인간관계와 입시 중에 입시를 잡기 위해서 국가교육위원회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정책의 현장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회의실 안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거창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죠.
“이 논의는, 정말 학생들이 원하는 걸까?”
똑똑한 어른들이 모여 앉아, 수요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이걸 원할 거야’라는 가정이 너무 쉽게 오갔죠.
고교학점제 제도는 그럴듯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책은 현실을 바꾸지 못했고,
결국 현장을 잃은 행정은 ‘속 빈 강정’이 되어버렸습니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된 뒤 자퇴하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보며 그때의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정책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죠.
마치 우주에서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하느라 막대한 돈을 쏟은 미국이, 옆에서 연필 하나로 문제를 해결한 소련을 본 이야기처럼. 우리는 ‘정책’이라는 펜을 만들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연필’로 자신들의 답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의실을 떠났습니다. 회의감을 느끼고 위원회 기간 후반쯤에 불참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불참하지 말고 발언을 했어야 했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서 뒤에 있었죠... 저는 그 당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와 조울증,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과 겹치면서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그곳에는 많은 어른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저는 방관했습니다. 반성합니다..
저는 제도를 바꾸는 대신, 마음을 이해하는 일을 그 당시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10대의 스트레스 절반이 입시라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인간관계’를 바꾸는 일. 그 일과 관련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거나 통제하는 법이 아니라, 아이의 정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법을 안내합니다.
기존에 제가 올렸던 브런치북 2개인 <교육현장르포>와 <교육고백록>은 그것의 일환으로 브런치북에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투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투고를 할지 아니면 그냥 브런치북에 올릴지가 고민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3년 만에 발견된 국가교육회의 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