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 밖, 학생들의 이야기 선생님 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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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질문: 지금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선생님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결론: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입시를 넘어선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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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시작
도입: 지금의 학교, 과연 우리 삶의 중심일까?
나: 교탁 위에 “수능까지 D-300”이라는 문구가 빨간 글씨로 깜빡이고 있었어요. 순간 진심으로 느꼈죠. 아, 여긴 학교가 아니라 입시 학원이구나.
친구A: 진짜 공감돼요. 가끔은 학원이 더 ‘리얼’하다는 느낌도 들고… 우리 세대만의 허무일까요?
나: 그 질문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친구A: 보통 사람들은 공교육은 학교, 사교육은 학원 이렇게만 구분하잖아요?
나: 맞아요. 학원은 목표가 명확하죠. 점수, 성적 향상. 모든 자원이 그 한 줄기에 집중돼요.
친구A: 그럼 학교는 다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요.
나: 맞아요. 친구 민수가 “학교도 결국 점수 올리려고 다니는 거잖아”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교는 사실 점수 외의 것들을 다루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에요. 가치관, 실패를 견디는 힘, 사회성, 타인을 배려하는 감각…
친구A: 삶 전체를 다루는 공간인데, 우린 그걸 잊고 있었네요.
나: 이 변화의 첫 단추는 입시예요. ‘좋은 대학 = 성공’이라는 공식을 모두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죠.
친구A: 교장 선생님도 실적 보고받고, 교사도 진학률로 평가받고… 그러다 보니 교실도 점점 학원처럼 바뀌는 거죠.
나: 맞아요. 국어 시간엔 문학의 감정선보다 지문 스캔 속도가 중요하고, 윤리 시간엔 가치 갈등보다 암기 팁이 더 많이 오가요.
친구A: 그래서 애들이 “이럴 바엔 학원이나 가지”라고 말하는 거구나.
나: 공교육이 사교육을 베끼기 시작하면, 학생도 마음이 떠나는 건 당연하죠.
친구A: 그런데 이것도 있어요. 요즘엔 선생님들이 점점 말을 아끼는 것 같아요. 민원 때문일까요?
나: 어느 학교 이야기긴 하지만, 중학교에서 들은 얘기 중에 하나가 있어요. 선생님이 학생과 의견이 부딪힌 후로는 질문조차 하지 않게 되셨대요. 말 한마디가 민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요.
친구A: 교사가 침묵하니까 학생도 조용해지고… 무관심만 남게 되네요.
나: 맞아요. 존중이 사라진 자리엔 침묵이 남고, 그 침묵은 학교의 존재 이유를 흐리게 해요. 그런데 이건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예요. 사범대에서는 학생 중심 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가르치고, 교사 연수에서도 ‘학생의 삶과 성장을 위한 수업’을 강조하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다르죠. “왜 우리 애는 문제 안 풀고 발표만 하나요?”, “왜 수행평가만 하고 시험을 안 보나요?” 같은 민원이 반복되면, 교사도 자기 철학을 포기하게 돼요.
친구A: 결국 선생님도 살아남으려다 보니 말수를 줄이고, 행동 반경도 줄이게 되는 거네요.
나: 맞아요. 오히려 사명감을 유지하려면 더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죠. 어떤 교사는 “그렇게까지 싸우고 싶지 않으면 빨리 그만두는 게 맞다”는 말까지 했대요. 이건 옳고 그름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교실이 얼마나 버티기 어려운 구조인지 보여주는 현실이에요.
나: 누군가는 말해요. “학교는 효율 떨어지는 학원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입시가 끝나고 남는 건 점수표가 아니라, 관계, 가치, 나 자신을 믿는 힘이에요.
친구A: 문제집으론 절대 생기지 않는 것들이죠. 수행평가, 전시회, 동아리 활동 같은 데서 생기는 것들.
나: 맞아요. 공교육이 사라지면 이런 층위의 경험도 함께 사라져요. 시험에 안 나오니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일부를 놓치게 되는 거예요.
나: 결국 공교육을 살릴 열쇠는 선생님에게 있어요. 단순히 점수가 아니라, 학생의 삶 전체를 디자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죠.
친구A: 예를 들면 어떤 역할일까요?
나: 예를 들어 이런 역할들요.
강점 탐색자 – 학생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함께 발견해주는 사람.
실패 코치 – 시험에서의 실패를 성장의 재료로 바꿔주는 사람.
가치관 중재자 –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를 함께 묻고 고민해주는 사람.
친구A: 확실히 그런 건 학원에선 해주기 어려워요.
나: 맞아요. “넌 왜 배우니?”라는 질문은 교실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친구A: 하지만 학생도 바뀌어야죠. 책임을 교사에게만 돌릴 수는 없잖아요.
나: 동의해요. 우리도 학교를 단순한 서비스 기관처럼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해요. 질문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수업을 완성하는 힘이고, 비판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재료죠.
친구A: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공동 작품이군요.
나: 맞아요. 관객석에서 야유만 보내서는 좋은 공연은 절대 나오지 않아요.
나: 저는 공교육과 사교육이 각각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비유하고 싶어요.
사교육은 점수를 빠르게 올려주는 엘리베이터,
공교육은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친구A: 엘리베이터는 빠르지만 좁고, 전망대는 느리지만 넓다… 진짜 멋진 비유네요.
나: 이 두 역할이 섞이면 학교는 애매한 학원이 되고, 학원은 학교처럼 무거워지죠. 결국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기 어려워져요.
친구A: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실제로 변화가 시작된 사례도 있어요?
나: 있어요. 예전에 동아리 활동 중에 ‘말하지 못한 말을 붙이는 나무’를 만든 적이 있었거든요. 친구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포스트잇에 적어 나무에 붙이는 활동이었어요.
친구A: 그냥 낙서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들이었겠네요.
나: 맞아요. 싸웠거나, 어색해졌거나, 멀어진 친구에게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죠. 2층 구석에 있던 그 나무에 학생들이 굳이 찾아와서 조용히 글을 붙이고 가고, 그걸 보며 서로 말을 잇는 장면도 있었어요.
친구A: 뭉클하다… 감정의 통로가 열린 느낌이네요.
나: 맞아요. 코로나로 멀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도 했고, 학업과는 무관해도 학생들의 마음에 잔잔한 영향을 준 활동이었어요.
나: 고3 때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학교에선 복도마다 모의고사 등수표, 벽에는 의대 합격자 수, 교탁 위엔 대학 이름들이 적혀 있죠. 그런데 들은 이야기인데, 혁신학교 중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는 곳도 있더라고요.
친구A: 오, 분위기가 꽤 달랐겠어요?
나: 맞아요. 그런 학교에선 의대 간 친구가 없기도 하고, 그 대신 창업 교육이나 바리스타 수업 같은 실용 교육이 많다고 해요. 입시 중심 분위기와는 결이 달라요.
친구A: 그래서 ‘입시 이후’의 삶도 자연스럽게 상상해볼 수 있었겠네요.
나: 네. 그런 프로그램 덕분에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죠.
친구A: 인문학 서클, 창업 동아리, 정신건강 주간 같은 게 운영되는 학교. 그게 진짜 공교육의 색이겠네요.
나: 그런 경험은 학원에선 절대 얻을 수 없죠.
나: 결국 공교육은 ‘삶’이라는 거대한 과목을 담당해야 해요. 사교육은 ‘점수’라는 도구를 다루고요. 둘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할 때, 학생은 두 세계를 균형 있게 활용할 수 있어요.
친구A: 교사는 삶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학생은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겠네요.
나: 대단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몇몇 교실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어요. 다음 5부에서는 그 변화가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학교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 “학교라서 배울 수 있었다”는 말로 바뀌는 날을 상상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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