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PTSD 트라우마편 10편 <부모 용서법 1편>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실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숨이 마지막 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숨이 아니라 날숨과 함께 삶을 마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호흡 하나하나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간다면,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바로 이 감각이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저는 이 메멘토 모리의 감각으로부터 부모 용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100% 죽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역시 100%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20살까지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전체의 90%라고 말합니다. 성인이 된 후 우리는 바쁘고, 서로 멀어지게 됩니다.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보는 관계가 되어갑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나 짧고, 갑작스레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한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맞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제가 낳아달라고 했나요. 왜 저에게 그런 짓을 하셨나요.” 당연히 그 말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미움 속에 계속 살아간다면, 그것은 부모님만큼이나 저 자신도 괴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물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그분들을 계속 미워할 건가?’ 미워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미움이 저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우선순위가 정리됩니다. 한 번이라도 웃어드릴 수 있고, 한 번이라도 손을 잡아드릴 수 있고, 한 번이라도 ‘사랑합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제 삶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용서를 시작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저를 위해 분노의 회로를 꺼야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살아남는 방법이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는 말합니다. ‘죽고 싶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야.’ 맞는 말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에 더 가까워집니다.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알게 됩니다. 죽음을 자각한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시간조차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 당시,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으로 전송된 문자 메시지들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모두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은 단 하나였습니다. ‘사랑해요.’ 그 순간, 증오와 분노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랑, 미안함,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떨어지는 비행기의 속도를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저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이 메멘토 모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분들이 떠나기 전에, 저 역시 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완벽한 용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더 이상 그 미움에 제 자신을 소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결심이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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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살부터 PTSD,ADHD,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편>의 10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연민적 이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제가 부모님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는지를 다룹니다. 2편은 12시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