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다닌다고 말한 날, 나는 가족을 잃었다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1부 PTSD, 트라우마 편 9편

by 조영철


정신과적인 병을 앓게 되면 단순히 외로움을 느끼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고독입니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깊은 단절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홀로 남겨질 것 같은 감정으로 이어지죠.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에게 털어놓고 싶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 특히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가족에게조차도 공감과 위로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가족이나 친구는 걱정하며 병원에 가보라고 말해줍니다.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다정한 손길로 이마를 짚고 약을 챙겨주기도 하죠.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때,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 때는 어떨까요? 많은 경우 그 고통은 “마음먹기 나름이지”, “다 그런 거야”라는 말로 치부됩니다. 정신질환은 아직까지도 어색하고, 무지하며, 때로는 두려운 이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를 더 고립되게 만듭니다.


물론 가족이 일부러 무심하거나 차가운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 나름의 언어로 표현하려 하지만, 결국 닿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공백이 주는 고독감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아, 정말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네’라는 깨달음은 단순한 허무함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외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깊은 바다 아래, 빛 한 줄기 없는 외딴섬에 홀로 버려진 듯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누군가의 무지한 편견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2024년 5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다

정신과 병원을 처음 방문하고 2주가 지나던 시점, 저는 가족에게 제 상태를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트라우마, 우울장애, 기분장애—이 세 가지 단어는 제게 매우 무거웠지만, 동시에 말하지 않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엄마보다 형과 계부에게 먼저 말했습니다. 마음 한편에 ‘이 사람들이라면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위로나 걱정보다는, “다들 그런 거 아니야?” “이 정도로 병원까지…?” 같은 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고백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고, 동시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했을 뿐인데, 그 말조차 받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던 그 공간에서, 고백의 기억과 함께 저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 이해해 줄 거라고 왜 믿었지?’라는 자책과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사이에서, 저는 더 깊은 고독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혹시 가족에게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지 못해도,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그 기대가 부서질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면, 상처를 조금은 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서러움

병이 있다는 걸 말하지 못하는 상황은 많이 괴로워요. 마음속에 거대한 돌덩이를 안고 있는 듯한 답답함.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준 ‘가족이었던’ 사람에게 받은 고통을, 현재 ‘가족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 그 과정입니다. 이중의 감정, 이중의 고통이 밀려옵니다.


중학생 시절, 저는 청소년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그때는 그냥 견디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가족에게 고백했던 날, 저는 정말 오랜만에 많이 울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억울함과 분노와 외로움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가족은 구원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그날의 가족은 제게 지옥이었습니다. 따뜻한 말 하나로 구조될 수 있었던 마음은, 차가운 한마디로 무너졌습니다.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것보다,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내가 더 괴로웠습니다.



남들은 아홉수일 때

나는 다섯 수...

문득 5살 때 트라우마가 생겼고 15살쯤에 트라우마가 생겼으니 25살에 트라우마가 또 생기려나? 그럼 35살 때는?이라는 두려움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22살인데 앞으로의 미래에도 이런 트라우마의 반복이라면 너무 살기 싫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런 생각에는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저 생각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인 "무간도"를 떠올리게 하는 생각입니다. 끝없는 고통과 굴레에 빠지는 지옥이 무간도입니다. 제가 했던 생각과 유사하죠.



나처럼 느끼는 당신에게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면,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고통은 언제나 우리를 ‘나만 그런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또 다른 당신이 있습니다.


고통은 나누어진다고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 무게는 나눌 수 있습니다. 공감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당신의 고통이 비정상이 아니며, 당신이 겪고 있는 시간이 결코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 글이, 당신과 나 사이의 작고 조용한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선

가족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합니다. 그 선은 병의 유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병에 대한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은 나를 사랑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언제나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삶의 맥락이 다르면, 같은 단어를 말해도 뜻이 달라지고, 결국 마음은 어긋나게 마련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설명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설명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벽은 높아졌습니다. 그들은 제 말을 듣고 있었지만,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SNS 속 친구들의 평범한 일상이 저를 더 고립시켰습니다. 누구는 여행을 가고, 누구는 취업을 하고, 누구는 웃고 있는 사진을 올립니다. 그런데 나는, 멈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나를 보며,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 사는 걸까, 자책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가족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결국 또 하나의 무너짐으로 돌아왔습니다.



받아들임이라는 회복의 시작

결국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신질환이라는 예민한 주제에서는, 이해의 가능성이 더더욱 좁아집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 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차가워 보이지만, 제게는 오히려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혼자라는 것을 인정했을 때, 저는 처음으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혼자인 건 당신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무게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겪은 일은 충분히 아프고, 그 아픔은 당신만의 것이기에 소중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편>의 9편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1부 트라우마 편도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겪었던 제가 어떻게 ‘용서’라는 감정에 다가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