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유튜브 알고리즘

『5살부터 PTSD,ADHD,조울증』1부 트라우마 PTSD 편 8편

by 조영철

제가 10년 만에 병이 있음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튜브는 저에게 신기한 추천 영상 하나를 띄워주었습니다. 대체 왜 나에게 이걸 보여주는 걸까 싶은 영상이었죠. 썸네일에는 정신과 의사의 얼굴과 함께 자극적인 문구가 쓰여 있었고, 저는 어그로에 끌리듯 무심코 클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PTSD, 우울증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마치 제가 겪어온 이야기 같았습니다. 제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영상 속 의사는 저의 상태를 낱낱이 읊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르고 살아왔다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죠.


5월 1일, 그날 머릿속에선 자꾸만 그 영상의 내용이 맴돌았습니다. 우연일까요? 제 생일은 5월 2일이었습니다. 유튜브는 저에게 뜻밖의 생일 선물을 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 3일, 저는 집 근처 정신과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처음 가는 정신과였습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정신과에 가는 일도 그냥 하나의 일상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힘든 건,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남들에게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내게는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주저하다가, 결국 이야기하게 됩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 제가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저의 치료 동기였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저에게 말해준 겁니다.


“이제 그만 아파도 돼.”


10년 동안 저는 트라우마가 그냥 내 삶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이 말해줬습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내 삶은 원래 이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그 영상은 나에게 병명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삶을 새로 고를 기회를 건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제가 ADHD조차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까지는 제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그저 ‘이상한 습관’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ADHD에 대한 다른 영상들이 추천되기 시작하면서, 제 안에 있던 또 다른 병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유튜브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제 병의 존재를 모른 채 스스로를 비난하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학대당한 기억은 숨겼고, 주의력 문제는 게으름이라 생각했고, 조울증의 기복은 단지 제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보는, 때때로 운명처럼 찾아오기도 합니다.


처음 병원을 찾는 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말하게 되었고,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제 그만 아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또 다른 누군가의 알고리즘이 되길 바랍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단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정확히 알려주는 누군가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ADHD,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PTSD 편>의 8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트라우마 PTSD ->2부 ADHD ->3부 조울증->4부 정신과 이야기->5부 앞으로의 이야기 이렇게 짜여있습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