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안녕하세요, 멤버 여러분. 지난 6장과 7장을 통해 가정이라는 '작은 성역' 안에서 아이의 성장을 돕는 구체적인 대화법과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일상의 루틴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아이의 자율성과 유능감을 지지하는 성장의 언어를 연습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안전 기지를 설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 앞에 놓인 거대한 현실이 있습니다. 바로 사교육입니다.
밤 10시,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지친 표정과 그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선 차량 행렬은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5장에서 우리는 "남들 다 가는 학원, 우리 아이만 안 보내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이 질문의 뿌리에는 뒤처짐에 대한 공포와 비교에서 오는 극심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직 강사로서 저는 그 불안감의 실체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합니다. 그 불안은 너무나 강력해서, 때로는 우리가 1장에서 애써 찾아낸 '가짜 성공 방정식'을 다시금 맹신하게 만듭니다. "좋은 학원 = 좋은 성적 = 좋은 대학"이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공식 앞에서, 우리가 다짐했던 성장 중심 교육은 쉽게 흔들립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제는 사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사교육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입니다.
불안이 운전대를 잡은 사교육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 모두를 지치게 하는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이번 장에서는 현직 강사의 관점에서, 이 거대하고 복잡한 사교육을 어떻게 하면 불안감 해소를 위한 방패가 아닌, 아이의 진정한 성장을 돕는 도구로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것일까요? 5장에서 다룬 불안의 정체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1) 끝없는 '상향 비교'의 함정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의견을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문제는 비교의 방향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를 할 때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열등감과 불안을 경험합니다. 특히 비교 대상이 '옆집 아이', 'SNS 속 영재'가 되는 순간,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저 아이는 저런 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아이는..."
이런 비교는 아이가 실제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어디쯤 위치하는지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아이의 필요와 상관없이 '남들이 하는' 사교육을 선택하게 됩니다.
(2) '통제된 동기'가 '내재적 동기'를 파괴하는 메커니즘
2장에서 우리는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필수적이라고 배웠습니다(자기결정성 이론). 하지만 부모의 불안에 의해 '강제로' 시작된 사교육은 아이의 자율성을 정면으로 침해합니다.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말하는 동기의 연속체를 살펴보면:
내재적 동기: "수학이 재밌어서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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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된 조절: "수학을 잘하는 게 내 꿈과 연결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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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 조절: "수학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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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된 조절: "수학 못하면 창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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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조절: "엄마가 학원 보내서 어쩔 수 없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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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불안에서 출발한 사교육은 대부분 '외적 조절' 또는 '내사된 조절' 단계에 머물며, 이는 "내가 선택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엄마(혹은 불안감) 때문에 해야 하는 공부"가 됩니다.
이러한 통제된 동기는 단기적으로는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학습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라는 내재적 동기를 완전히 고갈시킵니다. 5장에서 언급된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아이'는 어쩌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이렇듯 오랜 시간 자율성이 억압된 환경의 구조적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불안에 쫓겨 사교육에만 의존할 때, 우리는 눈앞의 성적표는 얻을지 몰라도 아이의 장기적인 성장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자산을 잃게 됩니다.
Cost 1: '안전 기지'의 상실
3장에서 우리는 아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튼튼한 심리적 안전 기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면, 가정은 안전 기지가 아닌 '학원 숙제 관리소' 혹은 '성적 모니터링 센터'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부모의 대화는 6장에서 연습한 과정 칭찬이 아닌, "숙제 다 했니?", "오늘 학원 테스트 결과는 어때?"라는 결과 확인으로 채워집니다.
한 중학생은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 가면 엄마가 첫 마디로 '오늘 학원에서 뭐 배웠어?'라고 물어요. 저는 학교에서도 공부하고 학원에서도 공부하는데, 집에서까지 공부 얘기만 하면 어디서 쉬어야 하나요?"
아이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집에서조차 쉴 수 없다고 느끼며, 이는 2장에서 다룬 관계성과 조건부 인정의 문제로 이어져 아이의 정서적 토대를 무너뜨립니다.
Cost 2: '귀인 방식'의 왜곡과 자기효능감 훼손
이는 현직 강사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주창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내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기효능감은 다음 네 가지 요소로 형성됩니다:
성취 경험(mastery experience): 직접 성공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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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경험(vicarious experience): 타인의 성공을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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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설득(verbal persuasion): 격려와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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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생리적 상태: 과제 수행 시의 감정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 경험'인데, 문제는 그 성공을 어디에 귀인(歸因)하느냐입니다.
심리학자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의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 건강한 귀인 패턴: "내 노력 덕분에 성공했어" (내적-불안정적)
→ 자기효능감 ↑, 성장 마인드셋 강화
* 위험한 귀인 패턴: "학원(강사) 덕분에 성공했어" (외적-안정적)
→ 자기효능감 ↓, 학습된 무기력
모든 학습을 사교육에 의존하면, 아이는 성공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이 아닌 외부로 돌리게 됩니다. "내가 노력해서 해냈다"가 아니라, "족집게 강사 덕분에", "유명한 학원 시스템 덕분에" 점수가 나왔다고 믿게 됩니다.
이는 6장에서 그토록 피하려 했던 "넌 머리가 좋아!"라는 칭찬보다 더 위험합니다. 아이는 학원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게 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을 포기하게 됩니다.
현장에서 본 사례: 수학 성적이 우수한 한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바뀌자 급격히 불안해하며 "선생님이 안 계시면 저 혼자는 못해요"라고 했습니다. 학원에 3년간 다니면서 성적은 올랐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키우지 못한 것입니다.
Cost 3: '자기주도성'의 고갈
궁극적으로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5장에서 언급했듯,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집중하며, 모르는 것을 찾아보는 자기주도학습 습관이야말로 10개의 학원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원이 정해준 스케줄, 학원이 떠먹여 주는 요약 정리, 학원이 만들어준 오답노트에 길들여진 아이는 '학습 근육'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2장에서 말한 비고츠키의 스캐폴딩(Scaffolding)은 아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도움을 받아 해내고, 점차 도움을 줄여가며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 좋은 스캐폴딩: "처음엔 함께 → 점차 혼자서 → 완전한 독립"
* 나쁜 의존: "계속 학원이 해줌 → 학원 없이는 못함 → 영구적 의존"
이는 스캐폴딩이 아이의 성장을 돕는 발판이 아니라, 아이가 걷지 못하게 하는 휠체어가 되어버리는 격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교육이 나쁜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사교육은 분명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단, 몇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될 때입니다. 이는 학원을 '불안해서 보내는(sending)'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활용하는(using)' 것의 차이입니다.
사교육의 시작은 사회적 비교가 아닌 아이의 실제 필요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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