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의 미학은 우아한 기품에 있다. 귀족들의 취향을 반영한 디자인은 있어도 바로크적인 과장함은 잘 없다. 그러나 국보 116호에 해당하는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고혹적이다 못해 관능적이다. 순청자가 아닌 상감청자의 경우 형태미보다 장식미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국보 116호 청자주전자만큼은 형태미에 시선을 뺏기게 된다.
주전자의 배와 가슴은 볼륨감 있게 처리되어 있으면서 목은 아주 얇게 주조되어 훨씬 더 형태의 대비가 뚜렷하다. 볼륨의 대비로 전체적인 자태가 극적이다. 어디서부터 감상을 시작해야할지 눈을 어지럽게 굴리고 있을 때 이미 내 눈은 어디서부터든 이 몸매의 라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뚜껑 또한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가슴 부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이렇듯 고혹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주구와 손잡이의 유려한 곡선은 자칫 글래머러스한 매력에만 함몰될 수 있는 치장에 적절하게 긴장을 주도하면서 주전자의 우아함을 살려주고 있다.
배 부분에는 국보의 명칭대로 모란꽃무늬가 상감되어 있다. 가슴 부분에는 하얀 학과 스멀거리는 구름들이 백토로 상감된 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감처리된 그림들은 음각으로 그려져있다. 청자 자체의 색감은 다른 청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백색을 절제시키고 음각을 통해 배경색을 극대화하여 전체적으로 탄력적인 색깔로 비춰지는 이유는 이래서이다. 현재 국보 116호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국보 1호부터 국보 116호까지 국보등재일이 동일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962년 12월 20일이다. 이는 1962년 한국 최초로 '문화재보호법'이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의 5.16쿠데타 이후 공식적인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 군정시기였는데, 원래 문화재에 관심이 많던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문화재관리에 나섰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국보'제도가 1962년 처음 만들어졌고 국보 116점을 선정했다. 단 1년만에 어떻게 116개를 뽑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지만 116개 선정은 사실 한국 정부의 몫이 아니였다.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 주관으로 한반도의 문화재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116호까지 넘버링이 되어있었다. 1962년 시행된 첫 국보 지정 116점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넘버링을 그대로 가져와 '보물' 대신 '국보' 로 명칭을 바꾸었을 뿐이다. 이듬해인 1963년부터 대한민국 문화재 분류방식도 '국보'와 '보물'로 나누어 넘버링되었고 국보지정일이 63년 이후인 문화재들, 즉 117호부터가 한국 문화재관리당국에 의한 지정이었다. 국보 1호부터 116호까지는 국보 시즌1이라고나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