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든 분청사기든 백자든 우리나라 도자의 '그릇'은 형태적으로 평범하되 단아하고 소박하되 무구한 멋이 있다. 펑퍼짐하게 주둥이를 벌리고 여리여리한 자태를 뽐내는 그릇들 안에 무엇이 담겨졌을까? 밥보다는 찬이 들어갔을 법하다. 갈색 고사리, 녹색 시금치, 절인 마늘, 매끈한 콩나물 등 다 같이 배열되어 있을 때 지극히 한국적인 인상을 풍기는 찬들이 이 한국적인 그릇 안에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릇을 직접 사용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은 그릇의 미적 가치엔 별다른 감흥 없이 그릇 안에 담긴 찬들을 기쁘게 혹은 서럽게 먹었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 그릇 속의 찬과 그릇을 이용해 밥을 먹는 조상들을 상상하며 미적 가치는 물론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정신적 오락까지 해볼 수 있다.
국보 115호의 그릇은 상감기법으로 여러 덩굴뿌리(당초)의 무늬를 새긴 청자다. 형태는 서민적이지만 장식은 귀족적이다. 그릇 내부는 음각으로 화려한 그림들로 가득차 있고, 외부는 양각으로 띄를 두른 후 국화꽃 몇 송이만을 새겨두었다. 내부외 외부의 대조와 조화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다.
가장 인상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지만 유독 그릇 내부 바닥의 꽃잎들이 시선을 끈다. 꽃잎들 가운데에 꽃봉우리가 있다. 일종의 소실점이니 관람자의 시선까지 모이게 될 수밖에 없으나 달리 말하자면 이 그릇을 사용했던 사용자들도 안에 담긴 찬을 비우면 이 바닥의 소실점으로 시선이 모였을 것이다. 찬을 다 먹은 이들은 빈그릇의 소실점을 보며 무슨 평범한 생각을 했을까? 조상들의 평범한 일상을 궁금하게 만드는 주술이 걸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