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다
한국이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라지만 국내여행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이색적인 자연지형이 산발적으로 분포해있단 사실에 놀란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 지역의 그 자연지형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삶의 흔적들이 있어왔다. 세심한 관심이 없었을 뿐. 그 중 하나가 석회암 지대인 카르스트 지형이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영화 <아바타>의 공간모티프였던 중국의 장가계 등 신선들이 살 것만 같은 오리엔탈적인 카르스트 지형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물론 하롱베이나 장가계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한국의 풍토에 맞는 석회암지대가 충북지역의 지형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말이지 충북지역은 지리나 지질 혹은 지형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한 번은 들러야 하는 곳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관광객들에게 독특한 경관을 선사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 중 한 곳인 충북 단양으로 떠나본다.
지질학에서는 지질의 시대구분을 시원생대(선캄브리아대)-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나눈다. 공룡이 살았던 시대가 중생대이고, 인류가 등장하는 시대는 신생대이다. 지금의 지구는 4개의 시대에 걸쳐 각각 형성된 지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시대는 고생대다. 고생대 때 만들어진 지형을 지향사라고 한다. 고생대는 다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지향사도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첫 번째, 고생대 전기에 형성된 지향사는 바다에서 형성된 지형이 융기된 경우로 막대한 양의 탄산칼슘을 포함하고 있는 석회암이 땅의 주요 구성요소이다. 두 번째 고생대 후기에 형성된 지향사는 전기 지향사에 육지의 요소가 잔뜩 가미되어 석탄으로 구성된 지형을 말한다. 이때 충북 단양은 고생대 전기에 형성된 지향사로, 여태까지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충북 단양은 고생대 전기에 형성된 석회암 지대'라는 거다. 충북 단양 외에도 충북 제천, 강원도 영월, 강원도 태백, 경북 영주 등이 같은 지형권이다. 남한의 경우에는 지향사가 옥천 지향사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 강원도 남부, 경북 북부, 충북 동북부가 전기 지향사인 것이다.
오늘날에 석회암, 혹은 석회석은 시멘트의 주요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충북 단양은 대한민국에서 시멘트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시멘트 회사 중 가장 큰 곳의 공장지대들은 대부분 충북 단양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고속도로를 타고 단양으로 들어오시다보면 굉장히 많은 시멘트 차들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단양으로 진입하면 누가봐도 석회석 채석장으로 보이는 산들이 즐비해있으며, 도로변에 시멘트 회사의 공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석회석 채석장은 지구의 살갗을 보는 느낌이다.
단양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도담삼봉이다. 석회암 지대인 단양에는 유려하고 독특한 절경 덕에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유랑하며 소위 말하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스팟 탑 8'이 만들어졌다. 이를 단양 8경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각종 지자체에서 쓰는 'XX N경'의 시작이 관동 8경과 단양 8경에서 유래했다. 단양 8경은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보태다가 조선 중기 당시 단양군수로 재임 중이던 퇴계 이황에 의해 최종 확립되었다. 8경 중에서도 가장 멋지다고 평가받으며, 오랫동안 단양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상징이었고, 8곳 중 리더격에 해당하는 곳은 '도담삼봉'이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어릴 적 단양에 살면서 도담삼봉의 경치에 반해 본인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으며, 조선 후기 명성있는 화가라면 누구나 도담삼봉을 찾아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중 압권은 김홍도의 <도담삼봉>이다. 구한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도담삼봉을 보고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에서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낮게 깔린 강변과 우뚝 솟은 석회 절벽, 그 사이의 푸른 언덕배기에 서 있는 처마가 낮고 지붕이 갈색인 집들이 그림처럼 도열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라고 표현했다.
자연지형은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에 특정 자연지형은 특정 국가나 특정 장소를 연상하게 한다. 예컨대 '사막'하면 사하라 사막이 먼저 떠오르고, '초원'하면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이 떠오르고, '카르스트'하면 하롱베이나 장가계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막이나 초원이나 카르스트나 빙하나 화산지형이나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의 풍토와 맞게 새로운 모습과 표정을 취하고 있다. 석회암 카르스트하면 무협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도교풍의 신비스러운 곳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은 중국 남부 내지 동남아시아의 카르스트 지형이고, 지구상의 다른 카르스트 지형들은 또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은 어떤 모습일까 했을 때 '도담삼봉'의 존재가 당당하게 입증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도담삼봉은 굳세면서도 우아하며, 강인하면서 연연하고, 투박하면서 경쾌하다. 도담삼봉이 병풍으로 두르고 있는 배경의 한국산들과 강 건너 아담한 마을들은 지극히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한국의 몸 자체다. 도담삼봉은 봄-여름-가을-겨울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지면서도 특유의 개성적인 멋짐을 사시사철 뽐낸다. 아래 한시는 아마 단풍철 노을 질 시간에 퇴계 이황이 도담삼봉에 취한 붓으로 그 감흥을 풀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
-퇴계 이황
도담삼봉 옆에는 단양 8경의 또다른 멤버인 석문이 있다. 말 그대로 돌로 만든 문이다. 말이 옆이긴 하지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석문을 통해서 남한강과 강 건너 작은 마을이 보이는데, 마치 액자 화면 속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동굴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용암이 녹여 만든 용암동굴, 파도가 절벽을 깎아 파고 만든 해식동굴, 그리고 석회석이 빗물에 녹아서 만들어진 석회동굴이 그것이다. 석회암 지대인 단양에는 여러 석회동굴이 분포해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석회동굴은 고수동굴이다.
석회석이 빗물에 녹는 현상을 '용식'이라고 한다. 동굴 속의 석회암이 용식되어 종유석, 석순, 석주를 비롯해 기이한 석회석 지형들이 형성된다. 종유석은 천장에서 밑으로 내려온 고드름 형태의 석회 지형물이며, 석순은 동굴바닥에서 위로 솟은 지형물이고, 석주는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형성된 기둥이다.
동굴들이 다 그러지만 유독 석회동굴은 마치 지구의 뼈와 내장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단테의 <신곡>이나 그리스로마신화의 '오르페우스 신화' 등 각종 문학과 신화에서 동굴은 명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표현된다. 실제 고대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왔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석회동굴에선 고대시대의 부장품들과 유골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모두 동굴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자연의 무작위적 공예예술은 미학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지론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아름답다고 말해야할지 기이하다고 해야할지 미학과 비평에서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뜻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지만 그 어떤 용어로도 설명되지 않은 초월적인 아름다움이다. '아름답다'는 감상 역시 인간중심적인 사고관이고 자연은 그저 물리적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될 뿐'인데 말이다. 이토록 신비스러운 자연 앞에, 그리고 이 동굴이 품고 있을 영겁의 세월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무력함. 사람은 참 특이한 게 위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이 무력함을 좋아한다. 역시 동굴 여행은 실패가 없다.
고수동굴을 전부 둘러보는데 소요시간은 약 40~50분 정도 걸리며 입장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성인 기준 1인당 11000원인데 결코 아깝지 않은 입장료다. 단양에는 고수동굴 외에도 천동동굴, 온달동굴 같은 다른 석회동굴들도 많이 분포해 있다.
남한에서 가장 큰 구석기시대 유적지로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이고, 두 번째로 큰 구석기 시대 유적지는 단양의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다. '여행 가서 구석기 시대 유적지까지 봐야 하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지를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단양의 수양개는 나름 유명한 구석기 시대 발굴지이고, 선사시대 전체를 아우르지 않고 특정 시대만 다루고 있어 오히려 효율적인 전시관이다.
1980년 충주댐 수몰 지역을 조사하던 충북대학교 박물관 팀이 최초로 수양개에 대규모 구석기 시대 유물을 발견하고 현재까지 약 12차례의 걸친 발굴조사가 이어졌다. 발굴 중 출토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곳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집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없어서 그저 쉬고 잘 수 있는 공간을 막 지은 '막집'이나 동굴 속에서 거주했다. 단양에는 지형상 동굴들이 많다보니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살았으리란 건 당연한 현상이다.
구석기 시대는 4개의 선사시대(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중 첫 시대로, 인류가 발생한 최초의 시점이자 빙하기가 채 끝나지 않은 시대였다. 따라서 당시 구석기 시대에는 지금에선 볼 수 없는 맘모스 등의 빙하기 동물들이 살았다. 역시 수양개 지구에서 맘모스 뼈가 발견되었고, 해당 뼈들을 완성해 만든 맘모스 골체가 전시관 입구에 위엄있게 서 있다.
하지만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기후는 따뜻해지고 동물들의 크기가 작아진다. 사냥을 해야 하는 인류는 동물의 크기에 맞춰 사냥도구의 크기를 정교하고 작게 만들었다. 다소 뾰족한 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가 '후기 구석기 시대'이며, 수양개 지구에서는 주로 '후기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줄 몰랐고 사냥과 채집, 어로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만큼 동물 사냥을 위한 도구가 대단히 중요했다. 사냥도구는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고, 돌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주로 돌과 돌을 부딪히고 부수어 날카롭게 만드는, 이른바 타제석기(혹은 뗀석기)를 사용했다. '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뗀석기인 주먹도끼와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뗀석기인 슴베찌르개를 비교해 본다면 구석기 시대의 전후기 풍토상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사인암도 단양 8경 중 하나다. 사인암은 깎아내린 절벽으로 준걸한 외모와 위엄있는 풍채를 뽐내는 또 다른 자연의 걸작이다. 조선 시대에 이미 수많은 문인들과 화인들이 사인암을 찾았다. 사인암을 유심히 살피다보면 이황, 이인상 등 유명한 문장가들이 사인암을 보고 느낀 감정을 시로 표현해 절벽에 새겨놓은 흔적들이 있다. 이인상, 김종수, 이윤영 세 사람은 같이 사인암 유랑을 떠났다가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한시의 한 구절을 지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놀이를 했다고도 한다. 예술가들끼리 주고받는 프리스타일인 셈이다.
문인들은 물론 화인들 역시 사인암을 보고 작품을 남겼다. 그림들을 보면 주변경관은 조금 바뀌었을지 몰라도 사인암 자체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인암을 그린 그림들 중엔 (긴장감은 없지만) 가장 걸작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김홍도의 <사인암도>이다. 예쁜 꽃 주변엔 벌들이 모인다고, 이토록 절경이 있으면 늘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자연의 위엄과 인간의 감성이 만나 만들어진 조합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이지 않을까.
단양 8경에는 앞서 소개한 도담삼봉, 석문, 사인암 외에도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이 더 있다. 안타깝게도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은 가는 길이 쉽지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고 있어서 '단양 8경'이란 말에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간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세 곳은 딱히 추천하진 않지만 굳이 8 군데를 꼭 다 찾아가 8경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미련한 바보들은 늘 있다. 그중 하나가 나지만..
새한서점은 단양 여행지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며, 이미 SNS에선 핫한 곳이다. 최근 들어 독립출판사와 독립출판물이 각광을 받으면서 출판업계에 새로운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독립서점들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형서점과는 다른 조악하고 거친 분위기가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갬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양에도 20년 째 고서적들을 판매하고 계시는 사장님이 계신다. 영화 <내부자들>의 촬영지기이도 한 새한서점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성공으로 이곳이 유명해져 찾는 발걸음이 많아졌는데, 그만큼 애로사항도 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서점 입구에는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서점이니,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긴장하게 한다. 이 서점이 다른 서점들에 비해 갖는 개성은 '고서적'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사장님께서 평생을 서점을 운영하시다가 모은 책들로 20년 전에 단양에서 새한서점을 여셨다고 한다. 서고에 가면 정말이지 책에 압도될 정도의 양이 놓여 있다. 비단 책 이외에도 여러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발행되는 독립출판물들도 눈에 띈다. 서점을 보면 사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사장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하는데 빨리 쾌차하셔서 오래오래 이 서점을 운영해주셨으면 하기를 바래본다.
다음날 아침공기가 맑아 숙소 근처의 소금정공원을 걸어본다. 가벼운 걸음 겸 남한강 구경을 할 참인데 여러 시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내 시선을 사로잡는 <단양행> 이라는 시 하나.
단양에 와서야 비로소 바람이 꽃잎이 되는 줄을 알았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해주는 몽글몽글한 시 구절 덕에 오늘 하루 바람이 꽃잎이 되도록 놀아볼 수 있겠다.
단양 8경 여덟 군데는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제각각 떨어져 있어서 8곳을 한 번에 보기는 힘들다. 도담삼봉과 석문이 같이 있고, 사인암과 하/중/상선암이 인근에 있고, 나머지 2곳인 구담봉과 옥순봉이 같이 있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감상하려면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 한다. 단양여행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기대하고 있던 관광지다. 충주호는 단양, 제천, 충주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충주 사람들은 충주호라고, 제천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단양사람들은 단양호라고 부른단다. 공식행정명칭은 '충주호'가 맞다. 충주호를 유람할 수 있는 선착장은 충주, 제천, 단양에 각각 있다. 단양에서는 장회나루 선착장의 유람선을 타고 제천을 거쳐 충주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차를 타고 장회나루 선착장까지 가는 길부터가 월악산의 준걸한 외모가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유람선 관광은 남한강을 따라 충주호를 경유하는 코스로 편도는10000원, 왕복은 15000원이다. 돌아와서 다시 단양 여행을 재개해야하니 왕복을 끊는다. 고기를 잡다가 무릉도원으로 빠진 어부가 되어 유람선을 타고 신선들이 사는 도원경으로 향한다. 월악산 국립공원과 남한강, 충주호가 같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을 보면 분명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장회나루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구담봉과 옥순봉 중 구담봉을 먼저 보게 된다. 구담봉은 기암괴석이 마치 장벽으로 이루는 바위능선으로 남한강에 비친 바위능선의 모습이 거북무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구담봉'이란 이름이 붙혀졌다. 거북이 같으면서도 바위가 된 용이 누워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구담봉에서 배를 타고 조금 더 나아가면 마지막 단양 8경 옥순봉을 볼 수 있다. 옥순봉의 공식행정구역은 제천이지만, 옥순봉을 보려면 단양이나 충주에서 유람선을 타야만 한다. 구담봉이 수평이미지의 비경이라면 옥순봉은 위로 치솟아 있는 수직적인 이미지다. 4~5개의 봉우리가 옹기종기 모여 굳세면서 호젓한 멋짐을 뽐낸다. 단양군수 시절 퇴계 이황은 남한강을 타고 옥순봉을 지나치다 마치 죽순처럼 생겼다고 해서 '옥순봉'이란 이름을 명명했다. 이황은 이곳 옥순봉에 '단구동문' 이른바 '단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란 글을 바위에 남겼다고 한다.
단양을 이야기하자면 계속 퇴계 이황이 거론된다. 퇴계 이황에게 단양은 남다른 곳이었다. 퇴계 이황이 직접 단양 8경을 정립했고, 단양의 명승지를 노니며 단양군수로서도 마을의 행정과 세도를 잘 다스려 훌륭한 목민의 표본이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퇴계 이황의 절절한 사랑이 배인 곳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은 단양군수로 있으면서 단양의 기생이었던 '두향'과 애틋한 관계를 맺었다. 유학자로서 미학과 철학에 통달했던 이황, 그리고 뛰어난 시서화 능력과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두향은 서로에게 서로의 뮤즈가 되어주었다. 둘은 자주 만나 시를 짓기도 하고 난초를 함께 키우는 등 조선시대 기준으로 대단히 낭만적인 감정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이황의 친형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친형제가 같은 지역을 관리하게 되면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퇴계 이황은 근무지 변동을 조정에 요청해 경상도의 풍기군수로 임명된다. 풍기로 떠나며 이황은 두향과 이별하게 되는데, 이별 직전 두향은 이황에게 매화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이황은 수도 없이 많은 시조들을 남기는데 대부분의 작품 속에 '매화'가 꼭 등장한다. 두향은 이황과 이별하곤 기생의 삶을 정리해 남한강 변에서 홀로 이황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두향은 수신인을 밝히지 않은 채 한때 같이 키우던 난초를 이황에게 보냈는데, 이황은 보자마자 두향이 보낸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이황 역시 두향을 잊지 못했다.
이황이 죽고 부고소식을 들은 두향은 도산서원까지 갔으나 과거 기생이었다는 신분으로 인해 빈소엔 들어가질 못 했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이황의 마지막 유언은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 였다고 한다. 두향과 이황의 이별로부터 둘은 결국 한 번도 만나질 못했다. 두향은 과거 이황과 자주 놀던 남한강에서 계속 머물며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 두향의 무덤이 이 옥순봉 인근에 남아있다. 아름다운 곳엔 늘 감성적인 이야기가 꼭 전해지는 법이다.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이곳 충주호에는 가슴 아픈 사연 또한 있다. 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충주호는 많은 사람들의 고향을 수몰시켜버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단양의 원도심은 지금의 충주호가 있는 적성면이었다. 하지만 1978년 충주댐 건설이 착공되고 85년 준공되면서 해당 지역을 전부 수장시켜다. 기생 두향의 무덤과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 시절 남긴 비석문들도 수장될 뻔 했으나 가까스로 건져올렸다고 한다. 일부 과거 역사의 흔적들과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이동시킬 순 있겠지만 그 기억은 완전히 건져내지 못한다. 충주댐에서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은 그 양만큼의 무언가를 담보로 가져가야만 했다. 가뭄이 들어 충주호가 메마르면 수몰되었던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단다.
적성면이 구단양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과거 삼국시대 고대전투의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충청도, 그중에서도 충청북도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던 지역으로 전투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이 일어나는 격전지였다. 땅의 주인도 여러 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충청북도는 한반도의 중부지방으로 방어하기가 어려운 곳이긴 했으나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550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해오자 백제는 당시 동맹국이었던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한다. 신라의 24대왕 진흥왕은 신라 정부의 원로장교였던 이사부를 시켜 백제를 도와 고구려군을 격퇴하며, 백제군과 힘을 합쳐 고구려 영토로 역공격에 나섰다. (550년은 아직 진흥왕이 친정을 시작하지 않았던 때로 이사부의 출정명령은 아마 섭정을 맡고 있던 지소태후의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충북의 단양이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사부는 신라군의 승전과 단양의 편입을 환영하고 기리기 위해 단양의 중심부에 비문을 적은 비석을 새겨둔다. 이 비석이 단양적성비이다. 이사부의 단양적성비 위치만 봐도 적성면의 중요도는 그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단양 적성비를 여러 차례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전부 실패하고 1978년 단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 팀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발견됐다. 그것도 단양적성비를 찾지 못해서 철수하려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비록 윗부분이 파손되어 비석의 원형태를 알 순 없으나 그나마 남아있는 부분으로 보아서 비석이 완벽한 직사각형의 모형은 아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단양적성비를 보면 독특한 서체에 눈이 간다. 보통 비석문이란 게 정부와 강력한 군주권을 행사하는 국왕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서체는 늠름하고 정확하고 각진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단양적성비는 서체가 아주 앙증맞다. 유홍준 교수님은 '율동적'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한자, 한글, 가나 등 한중일의 글자 하나하나는 한자의 영향으로 인해 반드시 정사각형 틀 안에서 표기된다. 파격적인 서체도 정사각형에서 벗어난 직사각형의 형태일 뿐 사각형이라는 큰 틀에선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단양적성비의 서체는 사각형보다는 원을 틀로 하고 있다. 아주 매력적인 멋이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단양의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이다. 온달산성은 단양의 맨위쪽에 있어서 동선을 고려하면 단양여행의 처음이나 마지막에 가는 편이 좋다. 온달산성은 신라가 지은 성이지만 고구려 장수의 이름이 붙여진 것만 봐도 이 지역의 주인이 삼국시대에 자주 엎치락뒤치락했다는 역사를 시사한다. 성의 이름이 따온 '온달'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그 온달이 맞다. 고구려 25대 국왕이었던 평원왕에겐 평강공주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하도 울보여서 평원왕은 "자꾸 그렇게 울면 나중에 바보 온달과 결혼시킨다"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딸의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당시 온달은 평양성에 살던 매우 가난한 평민으로 얼굴이 못 생겼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빌어먹고 살아 바보 온달이라고 불렸다. 정작 평강공주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평원왕은 평강공주를 귀족의 자제와 혼인시키려하자 평강공주는 "어릴 적 아버님께서 저를 온달과 혼인시키겠다고 하니 저는 온달과 혼인하겠다"며 궁궐을 나와 온달과 실제 혼인을 해버렸다. 평강공주는 온달을 고구려의 멋진 장수로 만들어내기 위해 궁궐에서 가지고 나온 지참금으로 온달을 교육시키고 훌륭한 말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는 등 온달을 지원해주었고 온달을 뛰어난 무예의 소유자로 거듭났다. 호풍적 분위기가 강했던 고구려에서는 국가적 단위의 무예 행사가 많았는데 온달이 사냥대회에 나가 눈에 띄어 고구려의 장수가 되었으며, 이후 중국 후주의 침입을 막아낸 공으로 고구려의 어엿한 고위장수가 된다. 평원왕 사후 평강공주의 오빠 영양왕 때 신라가 고구려 남측을 침범해오자 온달은 영양왕에게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북 땅을 빼앗기 전엔 돌아오지 않겠다며 출정한다. 그러나 온달은 아단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성으로 돌아온 온달의 시체가 눈을 감지 않자, 평강공주가 평양성에서 내려와 온달의 시체에 "이제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말하고 나서야 온달이 눈을 감았다는 가슴 절절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삼국유사는 물론 삼국사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거다. 물론 온달의 출생에 대해선 의혹점이 아직 많다. 또한 온달이 마지막에 신라군과 접전을 벌였던 죽령은 현재 문경 새재로 추측하고 있으며, 온달이 전사했다는 아단성이 바로 단양여행의 마지막 여행지 온달산성이다.
온달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확실한 건 설화 속 이야기처럼 온달이 찢어지게 가난한 평민은 아니었다. 용모에 대해선 삼국사기에서도 기록되어 있으니 못 생긴 건 분명한 거 같다만... 보통은 온달을 하급 귀족 출신이거나 당대 귀족 주류계에서 벗어나 있던 귀족 출신으로 추측하고 있다. 온달의 전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선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기본배경이 필요하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긴 이후 고구려 내부적으로 평양성 출신의 신귀족들과 이전 수도였던 국내성 출신의 구귀족들 사이에 심각한 내분이 있었다. 이 내분을 그나마 무마시키고 고구려의 평화를 이룩한 왕이 평강공주의 아버지 평원왕이다. 평원왕은 실세였던 신귀족들을 중용해주면서 정국을 안정화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신귀족들의 비대해진 권력을 조금이라도 견제하고자 새롭게 키운 친위세력이 신귀족도, 구귀족도 아닌 군부 세력이었다.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 평원왕이 온달을 등용했고, 명망있는 귀족가문이 아닌 군부 온달을 사위로 삼은 것도 군부양성 정책의 일환 속에서 이루어졌다.
온달산성은 온달관광지로부터 약 30분 정도 등산을 해야 한다. 하산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리고, 등산이 아닌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난이도가 다소 있는 코스이긴 하지만 꼭 한 번은 온달산성에 오르셔서 단양을 굽어보면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때때로 미지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카뮈의 말처럼 세상은 '두껍다'. 미지적 아름다움은 늘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념 속에 이면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생각했고 그 입구를 동굴로 여겼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에 과학을 한 스푼 가미하면 그 동굴은 보통 석회암 지대인 카르스트 지형에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석회암 지대는 지반이 약해서 종종 땅이 무너지고 지구의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석회동굴은 신화와 상상력의, 눈에 보이는 카르스트 지형은 여러 예술의 영감 역할을 해주었다. 한때 눈에 보이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세월에 묻혀 보이지 않은 지형에서는 고대 인류의 흔적을 확인할 수도 있다. 꼭 고대 인류까지 넘어가지 않더라도 독특한 지형에는 늘 과거 세대의 흔적과 역사의 사연들을 품고 있다.
카타필, 스토커 등 이런 지형을 탐사하는 이들을 일컫는 단어들도 따로 있다. 물론 단양이 세계의 거대한 지하세계 혹은 카르스트 세계와 맞댈 순 없다할지라도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미지적 아름다움은 가지고 있다. 석회암 지형의 붉은 테라로사 토양은 척박하고 푸석한 정조를 띄게 하지만 오히려 그 거치고 정제되지 않은 야성의 감성이 단양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든다. 단양은 패러글라이딩도 유명하니 도전할 수 있다면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로버트 맥팔레인 <언더랜드>
지하세계는 늘 신비로운 곳이죠.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만들어지는 지하세계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아주 오랜 전부터 많은 비밀들을 품고 있습니다. 혹은 아주 옛날에는 지상이었으나 세월이 퇴적되며 지하로 묻혀버린 경우도 있겠죠. 지구의 지하세계는 인류의 모든 시간을 전부 증명하고 있으며, 인류의 시간을 넘어 지구와 우주의 원리들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무궁무진함을 품고 있는 세계의 각종 지하세계를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이 직접 탐험하며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지식들을 에세이와 소설 그 사이의 문체로 풀어낸 책입니다. 인간이 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의 흔적들이 있고, 초기 인류의 숨결을 느낄 수도 있으며, 근대화 시기 인간이 자행하고 감추려고 했던 추악한 역사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류의 번영이란 미명 하에 벌어지고 있는 지하에 대한 탐닉 등 지구에 대한 이해도와 시각을 확 넓혀준답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심원의 시간'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에서 극찬했다고도 합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
공포영화 하나 추천드립니다. 평소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던 여섯 여성이 산속 깊숙이 아직까지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동굴을 탐험하다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더 동굴을 가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릴넘치고 호기심 왕성한 분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더 동굴을 가보고 싶은 자극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디센트>는 밀실의 공포를 극도로 밀어붙히며 더 사실적이고 공포적인 동굴 세팅을 위해 조명도 탐사도구의 조명에만 의지합니다. 사물분간이 어려운 상황설정에 관객을 끌고데려와 관객 역시 동굴에 갇혀있는 듯한 압박감을 줍니다. 공포영화란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배경과 설정 그 자체가 공포스러워야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공포영화다운 공포영화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