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의 국내여행 뿌수기 [사천 편]

바다의 감각을 여행하다.

by 이영




















친구 중에 "여행은 곧 바다"라며 여행과 바다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녀석이 있다. 바다를 보지 않으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란다. 이렇게 극단적이기까진 않더라도 여행을 가서 바다를 보고 오지 않으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거나 별 걸 하지 않더라도 바다만 보면 여행 기분을 내는 사람들은 많다. 나 역시 바다에 집착하진 않지만 바다의 청량함과 광활함, 그리고 그 시원함을 보고 오는 것과 그렇지 않은 여행과는 느낌이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바다의 묘한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더불어 각종 문학과 영화 등의 예술작품에선 바다를 모든 생명의 근원 혹은 시원으로 다루곤 한다.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라 바다를 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심지어 서해안, 동해안, 남해안 모두 제각기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사연이 많은 곳은 남해안이다. 동해안은 넓디 넓은 태평양과 이어져 있고, 서해안은 주로 중국과의 교류로 한정되어 있는 반면 남해안은 전통적으로 여러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혼자서 '한국의 바닷길은 모두 남해안으로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더불어 가장 낭만적인 바다도 남해안인 듯하다.


바다의 매력을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바다에서 볼거리, 할거리, 놀거리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나의 오션리스트들을 한 번의 여행으로 모든 걸 채울 순 없지만 그나마 여러 가지 바다 위의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본다. 바로 경남 사천이다.


사천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지명에 '사' 자가 들어갔다. 뜻을 알 수 없는 고대순우리말이었고, 이후로 한자로 '사'자를 계속 표기해오다가 시대에 따라 행정구역명의 단위가 '사'자 옆에 붙어있었다. 예컨대 통일신라 시대엔 '사수', 고려시대엔 '사주'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사천'이었다. 1995년 인근의 삼천포시가 사천시로 통합되었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재미있게 거론된 적도 있다. 통합된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옛 삼천포의 흔적도 뚜렷하게 남아 사천 여행의 컨텐츠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왜성 선진리성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시절 일본군이 축조한 왜성이다. 임진왜란은 중간에 휴전기를 잠깐 가진 적이 있었다. 휴전 내약에 따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 일본군에게 한반도의 남해안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때 일본군은 남해안 일대에 본인들이 거주할 성들을 대거 축조하는데, 사천 지역에 있던 일본군 제4군 총대장이었던 모리 요시나리가 축조한 성이 선진리성이다. 선진리성을 보면 일본의 성 구조와 한국의 성 구조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확연하게 구분할 수가 있다. 일본은 평지에 쌓은 성이 많고 한국은 산성이 주를 이룬다. 한국의 성은 산의 능선에 따라 쌓다보니 성벽의 흐름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이어져 있다. 비단 산성뿐 아니라 한국의 읍성조차 곡선형태다. 반면 일본의 왜성은 상당히 각이 져있다. 마치 칼의 한 단면마냥 직교되는 선을 강조하며 기교적 형태미를 뽐내는 게 일본 왜성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일본의 유명한 나고야 성을 떠올려보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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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선진리성은 바다를 끼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이 일어난 바다다. 사천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2차 출전이었다. 당시 이순신의 직급은 전라좌수사로,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해군 3스타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해군본부가 전라좌우수영, 경상좌우수영, 충청수영 이렇게 총 5군데가 있었다. 임진왜란이 경상도로부터 시작되다보니 경상좌수영과 우수영은 일찌감치 초토화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의 해전은 전라좌-우수영이 도맡아야만 했다. 이중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을 책임지는 전라좌수사였다. 1차 해전 때는 이순신의 전라좌수군만 출전했었으나 이순신은 전라우수영과의 합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2차 해전에 앞서 전라우수군과 합동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런데 경상우수영이 전멸하고 이순신에게 합류하고 해있던 경상우수사 원균이 사천 앞바다에 왜군의 움직임을 포착해 이순신에게 보고한다. 이순신은 전라우수군과 합류하기 전에 지금의 선진리성 앞바다로 가서 일본함대 13척을 모조리 섬멸하는데, 이 해전이 1592년 7월 8일 벌어진 사천해전이다. 그러니까 사천해전까지는 선진리성이 축조되기 이전의 시점인 것이다. 사천해전은 무엇보다 거북선이 해전 사상 최초로 투입된 전투라는 의의로 주목받는 전투다. 사천해전 당시 왜장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죽이는 성과를 내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사천해전 도중 어깨에 총상을 겪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선진리성에 가면 사천해전무공훈비가 있어 거북선의 데뷔전쟁과 이순신 장군의 2차 출동을 기념하고 있다. 참고로 사천해전 이후 이순신은 전라우수영과 합류하는데 성공해 당포-당항포-율포를 돌며 2차 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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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침략의 흔적이며 적군이 축조한 성이지만, 지금의 선진리성은 사천 시민들분들과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을 주는 공원이 되었다. 벚꽃 시즌이 되면 지역 내 유명한 벚꽃축제를 개최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벚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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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 커피 한 잔, 영화 한 편

사천에 가면 바다 위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은 다 만끽하고 올 수 있다. 먼저 바다 위에서 커피를 마셔볼 수 있다. 바다 위 카페는 만들고 싶다고 해서 아무데서나 만들어질 순 없다. 카페 이름마저도 바다 위의 로맨스, "씨멘스"이다. 동네이름이 '실안'이라 공식명칭은 실안선상카페 '씨멘스'이다. 이미 여러 SNS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아 실제 이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을이 되면 조명을 쏴서 더 아름다워진다! 참고로 이 카페에서는 유튜브 등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영상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커피도 사장님이 직접 타주시는 거라 상당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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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바다가 보이는 극장도 있다. 영화광 중 한 사람으로 지역 내 이색극장이나 독립영화관이 있으면 꼭 들르는 편이라 사천에 바다가 보이는 극장이 있다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메가박스 삼천포점이 그곳인데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바다가 널찍이 다 보인다. 물론 영화가 시작하면 커튼이 쳐진다. 영화관은 그리 크지 않고 상영관도 3개밖에 없다.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 사치야 나를 위한 선물이다. 날 좋은 날이면 영화 시작 전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관람하는 영화가 더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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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동네가 걷기 딱 좋게 한적하고 평화롭다. 여기에 잔잔한 파도소리와 바다냄새 덕분에 이 평화로움을 만끽하고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진다. 내 감성을 극대화해주는 이 마을의 서정은 얼떨결에 발견한 너무나도 반가운 아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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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실비집 거리

이제와서 삼천포와 사천을 구분짓는 건 무의미하지만 옛 삼천포 지역에는 '실비집'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경남에만 있는 술문화인데 술값을 내지 않고 처음 기본값만 내면 인원수에 맞게, 그리고 제철과 그날 사정에 맞추어 한 상이 차려진다. 한 상 이후엔 술 한 병을 더 시킬 때마다 새로운 안주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요즘 같이 워낙 맛있는 메뉴들이 많아 안주로 뭘 골라야할지 모르겠을 때 실비집은 참 유용하다. '실비'라는 어원은 확실하진 않지만 '실제 내는 비용에 따른 한 상' 이라는 뜻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원래 그 시작은 정식 술집이 아닌 구멍가게에서 술을 내다 파는 형태로 시작해서 큰 가게라는 느낌보다는 단골들만 찾아가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이제는 관광의 일환으로 거리도 조성되고, 나름 다른 지방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허무주의 시인, 박재삼문학관

다음날 운좋게도 날이 아주 좋다. 둘째날에도 바다를 토대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맑은 하늘에 안도감과 함께 벌써부터 신이 난다. 먼저 향한 곳은 박재삼문학관이다. 박재삼은 20대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하나 중퇴하고 여러 언론사에서 일을 하면서 작시활동을 하다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서정주와 유치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문단계에 데뷔했다. 1962년 첫시집『춘향이 마음』이후 타계하는 92년까지 무려 10권이 넘는 시집을 냈다.


박재삼 시인은 제2의 김소월이라고 불리는 삼천포 출신의 60~80년대 시인이다. 박재삼 시인이 '제2의 김소월'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박재삼의 시에서 김소월만큼이나 '한'이라는 민족의 정서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한(恨)'이라는 정서는 누군가의 죽음, 소멸 등으로 비롯될 때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김소월이 그랬고, 박재삼이 그랬다. 두 명의 시인들은 전부 자신의 시에서 죽음을 다루었다. 박재삼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죽음의 한과 더불어 죽음의 허무,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 등을 함께 표현하기도 했다.


박재삼의 시 대부분에는 물의 속성을 띠는 소재들이 나타난다. 인간의 유한성을 지구의 자연 속에서 생성되어 소멸되고 또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섭리에 빗댄 것이다. 이때 물이 소멸되기 전의 과정은 ‘강물’로, 물의 최종 종착지는 ‘바다’로 은유된다. 따라서 박재삼의 시에서 ‘강물’은 삶의 여정이고 ‘바다’는 ‘소멸’의 공간이다. 박재삼의 여러 시편에서 ‘바다’는 인간이 죽는 곳 혹은 자살하는 곳으로 상정되어 ‘한’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박재삼/ 밤바다에서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 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문학관의 설명에는 박재삼 시인을 설명하면서 허무주의에서 그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희망을 찾기는 어려운 듯싶다. 허무주의로 관철되는 시상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기 때문에 문학관에서는 일부러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려고 한 듯 하지만 시를 포함해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 허무주의를 마냥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허무주의에 그친다고 해서 예술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희망을 도출해내는 것보단 허무주의 그 자체를 다루는 예술이 더 수준 높은 작품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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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강물에서


무거운 짐을 부리듯 강물에 마음을 풀다.

오늘, 안타까이 바란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아지랭이가 솟아 아뜩하여지는가.


물오른 풀잎처럼 새삼 느끼는 보람,

꿈 같은 그 세월을 아른아른 어찌 잊으랴,

하도한 햇살이 흘러 눈이 절로 감기는데……


그날을 돌아보는 마음은 너그럽다.

반짝이는 강물이사 주름살도 아닌 것은,

눈물이 아로새기는 내 눈부신 자국이여!


박재삼과 김소월의 다른 공통점은 전통에 기반한 표현방식이다. 박재삼의 시는 시조의 3, 4음보 율격으로 읽힌다. 시조는 기본적으로 4음보의 율격을 기본으로 하는데, 박재삼의 시도 4음보를 기본 율격으로 하되 감정적 흔들림을 표현할 때는 불안정한 3음보를 사용한다. 박재삼 시인의 음보 원칙을 염두에 두시고 다시 한 번 시들을 읽어보라. 시가 갖는 전통적인 구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박재삼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문학관은 언덕 위 공원에 있는데,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멋진 바다를 관람할 수도 있다. 박재삼의 시세계를 오버랩하며 바다를 보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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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의 쥐포

박재삼문학관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만 걸어나오면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이 있다. 지금은 사천에 통합된 삼천포지만 여전히 삼천포의 지명이 여기저기 뚜렷히 남아 있다. 더불어 전통시장만큼은 사천보다 삼천포의 용궁수산시장이 조금 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듯하다. 이름 자체도 '용궁'이라니 이런 소소한 재치를 다른 지역 전통시장에선 의외로 보기가 힘들다. 모든 지역의 전통시장은 다 똑같아보이지만 전부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으며, 그 지역의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시장이란 인근 동네 사람들의 생활상을 집약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삼천포뿐 아니라 수산시장은 주로 어촌마을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싱싱한 활어나 활어까진 아니더라도 품질 좋은 해산물들을 구할 수 있다. 삼천포용궁시장을 구경하고 나와 방파제 끝에 이르면 삼천포항 넘어로 삼천포대교도 보인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쥐포'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 가보면 쥐포를 파는 집이 정말 많다. 쥐포란 '쥐치'라는 생선의 포를 떠 양념 후 말린 음식으로 한동안 맥주 안주 최고의 궁합이어 왔다. 쥐치는 남해안에서 흔히 분포하는 어종으로 살이 많지 않아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포를 떠서 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쥐포에 쓰이는 생선 쥐치를 다른 요리로는 안 해 먹는 이유다. 그런데 어느순간 쥐치의 포획량이 많지 않고, 수요도 전성기 시절 만큼은 아니라 지금은 그렇게까지 활성화 된 어업산업은 아니라고 한다. 주로 부산에서 잡히는 쥐치를 삼천포의 어부들이 포를 떤 후 조미해서 판다고 하는데,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 가도 국내산의 가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싸 놀랐는데 이런 내막이 있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쥐포는 대부분 수입산이라고 한다. 맛에 큰 차이는 없겠지만 사천을 놀러간 김에 국내산 한 번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노란색으로 물든 사천 케이블카

천 여행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남해 바다까지 와서 케이블카를 안 타볼 수가 있나. 사천에도 케이블카가 있으며 다도해를 한눈에 관람하실 수 있다. 계절만 잘 맞추면 사진처럼 노란색 유채꽃이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마저 볼 수 있다. 유채꽃의 노란색과 바다의 코발트 블루 조화가 절묘한 궁합이다.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다. 사천 케이블카는 왕복이 안 되고 편도만 가능하니 이 점 유의하길 바란다. 케이블카 도착지에는 간이매점도 있으니까 출출하시면 바다를 배경 삼아 라면 한 사바리 후루룩 하는 것도 추천한다. 밤에 찾아오시면 삼천포대교의 야경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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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여행을 통해 바다 위에서 참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바다에서 커피도 마셔보고,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도 보고, 바다를 따라 한적한 마을을 걸어보기도 하고,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의 전통시장도 가보고, 예쁘디 예쁜 노란색 유채꽃 위의 바다도 구경해보고, 어느 한 시인의 감성으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거북선이 데뷔전을 갖은 바다까지 가보았다.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바다의 매력에 대해 깔끔하게 정의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바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더불어 바다의 매력을 느끼는 방법 역시 무궁무진하다. 바다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그 향기마저 맡을 수도 있다. 감각을 동원하면 동원할수록 바다는 더 낭만적인 세계가 되어 우리에게 화답해준다. 아, 그거구나. 바다는 내가 몰랐던 감각을 일깨워주고 또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구나.


"바다는 자유와 초월성에 대한 비유다."

- 칼 야스퍼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군터 숄츠 <바다의 철학>

독일의 철학자 군터 숄츠가 바다를 구심점으로 서양철학의 계보를 정리한 책입니다. 바다는 지구에 탄생할 때부터 존재해왔기에 인류의 모든 역사를 목도해온 주시자였죠. 그래서 저 오래 전 고대시절부터 21세기까지 인류의 철학자들은 저마다의 사상으로 바다를 정의하고 규정지으며 사유해왔습니다. 누구는 바다를 생명의 근원으로, 누구는 바다를 미학으로, 누구는 바다를 두려움의 공간으로, 누구는 바다를 극복의 대상으로, 누구는 바다를 경제적 가치로, 누구는 바다를 통해 윤리학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시대별로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에 맞추어 바다를 간주해온 듯합니다.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며 저자는 바다와 인간의 관계가 전도되어 있다며, 인간이 바다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바다가 우리를 규정하는 존재임을 은은하게 내비춥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주인공은 '철학'이 아니라 '바다'임을 느끼게 되는 참신한 책입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0번째 작품입니다. 가족의 진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혈연에 기반한 진짜 가족들을 다루면서도 혈연을 벗어난 가족 개념을 내세울 때도 있습니다. 이로써 관객은 사전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정서적인 의미의 가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죠.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15년전 외도로 인해 아내와 세 자매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세 자매는 상가집을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외도한 여성과 낳은 10대 딸이 있었는데, 딸의 친모도 없는 상황에서 세 자매가 이복동생을 거두기로 합니다. 어찌보면 본인들의 가정을 파탄낸 원인으로 낳은 딸이었기에 선의만으로는 네 자매가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기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애써 불편한 과거는 들추지 않으려고 하지만 네 자매의 현재를 붙잡는 과거의 원죄와 상처들. 바닷마을을 배경으로 유대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네 자매의 잔잔한 행복과 일상을 마음 조리면서 응원하게 되는 훈훈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