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의 국내여행 뿌수기 [횡성 편]

은은한 물듦을 여행하다

by 이영


















강원도의 매력은 정말 다양하다. 태백산맥이라는 험준한 산세가 과시하는 장중한 산자락이 있고,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을한없이 확장시켜주는 호방한 동해바다가 있으며, 산과 강이 빚은 자연지형의 예술을 만끽할 수도 있다. 이렇게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자연의 기상에 물씬 감탄할 수 있는 곳이 강원도이다. 그러나 동시에 강원도는 단정하고 친숙하며 정감어린 자연의 잔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이 감상의 대상이 되지 않고, 나를 감싸는 배경이 되어주는 곳들이 강원도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곳은 강원도 횡성이다.




너무나도 흔해서 특별한, 안흥찐빵

횡성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횡성의 '안흥찐빵'이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하지만 한때 고속도로 간식 3대장이 호두과자, 풀빵, 찐빵이지 않았나. 어딜 가든 '안흥찐빵'이란 말을 내걸었고 처음엔 '브랜드인가?' 착각하기도 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지 않을까 싶다. '안흥'은 횡성의 지명이었다!


찐빵은 두꺼운 밀가루 반죽 안에 팥을 넣고 가마솥으로 찐 빵이다. 빵이란 요리가 구한말 조선이 개항하면서 들어온 서양의 요리인지라 그때부터 밀가루 반죽 안에 우리민족이 많이 먹던 팥을 넣고, 우리 민족이 많이 사용하는 가마솥으로 찌면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요리 자체는 서양식이지만 앙소와 재료도구는 지극히 한국적인 토착화된 외래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50년대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보급받으며 한반도에 밀가루가 흔해지자 찐빵은 만두집이나 빵집에서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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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은 휴대하기도 편하고 추운 겨울 몸을 녹여주기 때문에 무언가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서민적인 느낌이 많이 나기도 하나 보다. 1997년 IMF가 터지고 모두가 어렵던 시절 횡성군 안흥면에서 심순녀 할머니께서 차린 찐빵집이 방송에 나와 많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방송이 큰 인기를 얻으며 심순녀할머니찐빵 덕분에 '찐빵'하면 자연스레 안흥이 연상됐고 이렇게 '안흥찐빵'의 명성이 탄생했다. 모두가 힘들던 그때 그 시절 항상 곁을 지켜줄 것만 같은 서민적이고 친숙한 찐빵은 당시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확실한 위로를 주었던 듯하다. 그리고부터 누구나 고속도로를 탈 때 내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존재로 찐빵이 부상하게 되었다. 심순녀 할머니의 찐빵집은 아직까지 있고 근처에 '안흥찐빵마을'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젠 안흥찐빵의 대중적인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 특별할 거 없는 찐빵의 맛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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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호수길을 걸으며

횡성에는 아는 사람들은 잘 아는 유명한 호수둘레길이 있다. 바로 횡성호수길이다. 2000년 완공되었던 횡성호는 횡성댐을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다. 횡성호는 면적 209제곱킬로미터로 아주 넓은 호수며 저수량은 8만6천 톤이나 된다. 결코 작은 인공호수가 아니다. 그래도 인위적인 느낌이 없고 산속 외진 곳에 있다보니 자연스러운 운치가 있다. 물론 인공호수는 경제발전과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주지만 마을을 수몰시켜야 한다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 횡성호 안에는 무려 5개 리(里)가 수몰되어 있다. 그래서 횡성호수길 입구를 '망향의 동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망향의 동산에는 '화성정'이라는 정자가 횡성호를 눈에 담는 최적인 장소이다. 화려하거나 현란하지 않고 은은하고 여운을 주는 이 인공호수의 풍광은 어쩌면 망향의 상실이 빚은 비장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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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호를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횡성호수길이다. 여러 구간이 있는데 제5구간이 가장 유명하다. 제5구간도 A코스와 B코스가 있는데 A코스는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 B코스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A코스가 거리가 있긴 하지만 다시 입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B코스는 다 돌고 다시 망향의 동산까지 오면 소요시간은 아마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풍수원에서 온 편지

횡성에 있는 풍수원성당은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자 강원도에선 최초로 지어진 성당이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경기도 용인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1803년 강원도 횡성에 모여 비밀리에 종교적 집회를 가졌던 곳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888년 프랑스에서 공식 성직자 르메르 신부가 풍수원에 파견되어 정식적인 성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르메르 신부를 이어 정규하 신부가 성당을 잇게 되었고 1906년 성당 공사를 시작해 1907년 지금의 풍수원 성당이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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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은 십자가의 형태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다. 정면의 큰 원을 중심으로 여러 작은 아치형과 사각형 창문들이 대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구도감은 감상의 편안함을 자아낸다. 베이지와 갈색 계열의 색감은 고즈넉해서 늠름하기도 하다. 아주 잘 늙은 중년 혹은 노년의 모습이랄까. 횡성군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한적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다.


정규하 신부는 의병에도 몸을 담았던 신부였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신부 교육을 받은 뒤 정식 신부가 되고는 47년 간 횡성의 풍수원성당에 있었다. 풍수원성당으로 근무했을 당시가 청일전쟁이 끝나고 몇 년 안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은 노골화되고, 나중엔 러일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의 팔다리를 하나둘 잘라갈 때 정규하 신부는 비밀리에 의병 결성을 격려하거나 스스로도 참여하기도 했다. 정규하 신부와 성당의 사제들은 풍수원 성당에 도망친 의병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정규하 신부는 아쉽게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3년 2년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당시 어둡고 험난했던 시대에 정규하 신부가 썼던 편지들을 엮은 책 <풍수원에서 온 편지>를 풍수원성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신부 개인의 종교적 숭고함과 더불어 시대상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횡성'하면 역시 '한우'

첫날 저녁으로 어쩌면 가장 기다렸을 횡성의 '그' 음식을 먹으러 간다. '횡성'하면 역시 '한우'! 조선시대부터 "동대문 밖 우시장은 횡성이 가장 크다" 라는 말이 있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도 '한우'를 빼놓고 횡성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한 가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할 건 '횡성 한우' 란 소 자체라기보단 소 요리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횡성을 포함해 진주, 수원, 광양, 언양 등 소 요리가 지금까지도 유명한 곳들은 조선시대부터 큰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은 소를 사고 파는 곳이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서 소를 키우는 목장주들이 다 모이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지역 소들의 집합지가 되는 셈이다. 물론 우시장의 규모에 따라 더 많은 목장주와 더 우수한 소들이 모였다. 아마 수도권 동부와 강원권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횡성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우시장 근처에서 소요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소요리를 먹는 관습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횡성 한우가 대중화되다가 네임밸류를 갖게 되면서 사람들은 소 요리와 소 목축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우시장이 있던 횡성에서 소 요리를 먹는 전통으로 '횡성 한우'가 유명하다보니 사람들 의식 속엔 '횡성에 거대한 목장이 있나보구나'라며 일반화 하게 된다. 물론 횡성 우시장 가까이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횡성에 소규모 목장이 몰린 것도 우시장 덕분이다. 목장만 따진다면 대관령이 훨씬 더 유명하다. 사람들 의식 속에서 '횡성-한우-목장-소 요리?' 사고사슬이 굳혀지고 나서야 정부와 축산업자들이 횡성의 소 목축업 발전에 뛰어들었다.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가 횡성 둔내면 죽림산에 위치한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비록 배보다 배꼽이 커지긴 했지만 지금 횡성이 한우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 건 새로 써내려가는 지금의 역사다. 횡성한우는 농협중앙회가 명품 축산물 1호로 인증하기도 했다.


이제 횡성은 소 목축업과 소 요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횡성 한우집으로는 '횡성순한우' 식당을 추천한다. 그런데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한우의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고, 횡성 한우는 더 양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먹기엔 다양하게 먹지 못할 수도 있고 가격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도 횡성 한우의 맛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입안에 넣는 순간... 이 다음 말은 먹어본 사람의 기억과 먹어볼 사람의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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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의 더덕요리

전날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 다음날 아점까지 과연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배는 저절로 고파지기 마련! 한우말고 횡성에는 자부심을 갖는 또 다른 특산품이 있다. 바로 더덕이다. 역시 산나물은 강원도다. 더덕은 사포닌이 많아 기침, 가래, 천식 등의 호흡계 질환과 고혈압, 콜레스테롤, 염증 및 피부에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오래 전부터 식재료로 사용됐고 중국에서는 약재로 사용되기까지 한다다. 더덕은 산삼에 버금갈 정도로 약효가 있다. 이렇게 건강에 좋은 산나물들을 왠지 쓸 거 같다는 억울한 편견들이 있다. 물론 더덕은 쌉싸한 향은 나지만 결코 역하지 않다. 심지어 특유의 식감 때문에 '산에서 나는 고기'라는 별명까지 있다. 정말 식감이 고기 씹는 맛이다. 더덕으로 무슨 요리가 가능할까 싶습니다만 이렇게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지는 횡성을 와서야 알았다. 더덕은 다른 요리와 어울려 향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도 단독으로도 구이로 먹기도 한다. 이외에도 더덕차로도, 더덕비빔밥으로도 해먹는다. 그런데 더덕은 손질하기가 힘들어서 가정집에서 먹긴 까다롭다. 그런만큼 횡성을 가서 더덕풀코스를 접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가격도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횡성에서 더덕요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박현자네더덕밥'이다. 여기선 후식으로까지 더덕식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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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돌솥비빔밥과 더덕구이


작은 마무리, 올챙이추억전시관

마지막 목적지는 올챙이추억전시관이다. 올챙이추억전시관은 횡성의 아주 깊은 산골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곳이다.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이 시간을 멈춘 곳! 그때 그 당시 추억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올챙이추억전시관은 50년의 생활사를 조명한 3개의 테마관이 있고 테마전시관 외에도 야외전시까지 놀거리 볼거리 사진찍을거리가 풍성하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전시 관람 말고도 다양한 체험학습행사가 있는데 행사에 참여하실 거면 미리 예약하셔야하고 8인~15인은 필수다. 체험학습은 종류별로 가격대가 다르며 1일 전부 예약하시면 3만원이라고 한다. 중간에 식사도 가능하시고 말이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단위로 방문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체험학습으로는 국수체험, 고무줄총 만들기, 사탕만들기, 달고나만들기, 솜사탕만들기, 뻥튀기 체험, 종이인형오리기 등이 있다. 동심이 아직까지 살아숨쉬는 나에게는 횡성 여행을 작게 마무리할 수 있는 말그대로 '올챙이' 같은 관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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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호수길에서 본 팻말의 글귀따나 '물든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무언가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지되 지나친 집착이나 탐닉이 아닌, 서서히 그 매력에 나 자신이 동화된다는 뜻의 단어들 중 가장 낭만적인 단어 같다. 그것이 공부하는 분야든, 일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소중한 사람이든, 여행지든 '물든다'는 건 내 의지나 이성으로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횡성은 개발된 도시도 아니고 산골자락에 있어서 나 같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모든 풍경 풍경이 그다지도 정겨울 수가 없다. 횡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랜드마크 혹은 대표사진을 고르라면 내겐 재간이 없다. 그저 한곳한곳이 은은하게 내 머리와 가슴과 추억에 남아 단 하나의 이미지를 뽑는 건 적어도 횡성 같은 곳을 여행할 때는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나도 모르게 횡성에 물들었나 보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헨리 소로 <월든>

미국의 거장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입니다. 이미 미국문학사에서 고전의 반열에 든 정전작품이죠. <월든>은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시골의 월든 호수로 이사를 가 그곳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며 작가 본인의 일상과 생각하는 바들을 적어내린 수필입니다. 저는 동양에 '노자와 장자'가 있다면 서양에 '헨리 소로'가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헨리 소로의 <월든>에는 동양의 도교적 사상이 물씬 묻어나 있습니다. 작가 개인의 사상에 동의 여부를 떠나 유려한 문체와 말의 맛, 그리고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있는 느낌은 역시 거장은 다르구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너무 두껍다 하시면 이중 '호수' 편만이라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흥행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몇 안 되는 다큐멘터리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충렬 감독의 데뷔작인 것도 놀라운데요, '워낭소리'란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의 목에 다는 쇠고리로 이 소리로 가축이 어디있는지 주인이 알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영화 <워낭소리>는 경북 봉화군의 어느 한 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노부부와 노부부가 무려 30년이나 키운 소와의 유대관계를 다룬 작품입니다. 할머니는 건강하지도 못하고 밭일도 못하는 이 소를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버리지 못한 할아버지는 아무 힘도 못 쓰는 이 소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다그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입을 다문 채 시종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소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할아버지의 건강도 안 좋아지기만 합니다. 할아버지가 소에 대해 그토록 고집을 부리는 것이 소와의 유대감 때문인지, 30년이라는 그 세월 때문인지, 소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투영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 고집엔 묵직한 정서적 울림이 있답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1년 간 노부부와 소를 찍은 영화제작진의 노고 역시 숭고한 고집이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