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의 흔적을 여행하다
동두천은 의정부, 포천, 연천 등 다른 경기도 북부지역권들처럼 군사적인 기능이 강한 곳이다. 특히 동두천은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실시될 때 미군이 처음으로 자리잡은 곳들 중 한 곳으로 다른 경기도 북부의 군사업무 기능도시보다 미군 부대의 비중이 유독 큰 곳이기도 하다. 마치 도시 하나가 큰 군부대 같다고 할까. 지금은 소요산으로도 많은 등산객들을 모으고 있지만 과거의 동두천이나 지금의 동두천은 미군부대라는 정체성이 짙었다.
한국은 해방이 되지마자 미국의 군부대가 들어와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군이 한반도의 정치를 대신 해주는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한반도 곳곳에 미군이 눌러 앉았고, 이때 미보병 24사단, 3사단, 7사단 그리고 2사단 등이 주둔한 곳이 지금의 동두천이었다. 오늘날의 동두천 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주민들은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하는 수없이 동두천의 외진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가야만 했다. 지금 형성된 동두천 중심지는 생활터전을 미군부대에게 빼앗기고 이주해야만 했던 이주민들이 일군 것이다. 미군부대를 전문용어로 '캠프'라고 부르는데, 해방 이후 지금까지 캠프 님블, 캠프 케이시, 캠프 호비, 캠프 캐슬, 캠프 헬리포트, 캠프 모빌 등 6개의 캠프가 있었으나 캠프 님블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될 예정이라고 한다.
동두천시 1호선 지하철이 지나는 보산역에 내리면 '보산 캠프'라는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단지가 있다. 지금은 없지만 원래 보산역 근처에는 '캠프 모빌'이라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보산동은 원래 '캠프 모빌'은 물론 동두천시의 미군들을 위한 기지촌이었다. 미군들을 위한 시설이 몰려 있는 이 기지촌은 시간이 흐르며 모습을 계속 바꾸어왔고 현재의 외국인관광특구 모습을 갖추었다. 미군 부대가 있었던 용산, 의정부, 평택 등의 기지촌은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에 동두천의 외국인관광특구가 거의 유일한 기지촌이라고 할 수 있다.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는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예전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외관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해서 이곳저곳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단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는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한 곳이다. 대부분이 클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클럽'이라는 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럽이 아니라 당구치고, 술 마시고, 다트를 하는 미국식 클럽 개념이다. 거의 전부가 외국인 전용 클럽이고 내국인은 출입금지라 저희가 놀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는 게 흠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작은 공방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도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있으니, 어떤 공방카페들이 있는지 사전에 찾아보시고 가보길 추천한다.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사에 있어서 동두천의 기지촌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후 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국가의 문화생활을 눈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던 시절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전자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기지촌의 클럽이 유일했다. 음악애호가들은 클럽에서 나오는 경쾌한 리듬에 몰려들었고 한국의 락은 미군부대의 기지촌 클럽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일렉기타를 틀며 데뷔한 한국의 락가수들은 역시나 미군부대 기지촌 클럽이 아니면 공연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196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다고 보면 되는데, 한국의 공연장과 카페 등지에선 포크송이 틀어졌다고 하면 기지촌 클럽에서는 기타의 전자음이 엠프를 찢고 나오는 음악이 틀어졌다. 이렇게 한국의 락 음악을 미군부대 기지촌 클럽에서 시작시킨 사람이 신중현이다. 신중현을 '한국 락음악의 대부'라고 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영화 <고고 70>의 주인공 밴드인 데블스 역시 60년대 후반 미국 기지촌 클럽에서 시작했다. 군부대 기지촌 클럽에서도 동두천의 기지촌 클럽이 가장 유명했다고 하며 한국의 락밴드나 음악인들은 동두천이 주무대였다고 한다. 한국 락의 고향은 동두천인 셈이다. 현재 동두천외국인관광특구는 한때 영광스러웠던 동두천의 락음악 시장을 살리고자 동두천 두드림 음악센터를 만들어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고 있다.
점심도 양끼 가득한 음식을 먹어본다. 동두천외국인관광특구 근처에 있는 텍사스바베큐이다. 미국 텍사스 형식으로 구워낸 닭요리인데, 가게에서 만든 특제소스가 발려서 나온다. 소스는 토마토가 베이스인데 너무 달지도 않고 새콤함의 정도가 아주 절묘하다.
여행을 갈 때 그 지역의 특수한 얼굴을 보고 싶다면 전통시장만한 곳이 없다. 동두천에는 중앙시장이라고 핵심이 되는 시장도 있지만 '양키 시장'이라는 상당히 이색적인 시장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용품과 수입과자, 수입주류들을 판매하는 시장이다. 이태원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의 양키시장을 걷노라면 동두천이 어떻게 도시를 형성해왔는지 그 과거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전국에 미군부대야 여러 곳에 흩어져있지만 아메리칸 타운 단 한 곳만 꼽으라면 '동두천'을 뽑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동두천은 미국의 모습이 강하게 새겨진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영세규모의 장사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이 동두천에서는 미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팔거나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암암리에 거래하면서 자연스레 양키시장이 형성되었고 1960년대 양키시장은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물론 미군부대를 상대로 상권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그 뒷골목에 환락시설들이 즐비해있었다는 번영의 그림자를 전제로 깔고 있다.
동두천엔 총 6개의 미군 기지가 있었다. 그 중 보산동에 위치한 캠프 모빌이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었고, 동두천 시는 반환받은 캠프 모빌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 공원이 상패수변공원이다. 소요산의 정상이 보이는 상패수변공원에 오면 이곳이 군 기지였다는 걸 알고 봐도 모를 정도로 많이 변해 있다. 비록 공원 자체는 특별한 게 없고 크지도 않지만 동두천시의 역사적 숨결을 짧게 나마 되새겨볼 수 있는 곳이다.
동두천에서 미군 캠프들이 사라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현 동두천의 모습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군사도시로서 기지촌과 위락시설이 즐비해있던 광경은 (물론 아직도 그 흔적들 일부는 뚜렷하게 남아있지만)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한때 동두천 기지촌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던 분들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양공주'라고도 불리는 '미군 위안부'들이다. 흔히들 '위안부'하면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 위안부만을 떠올리지만 '미군 위안부' 의 존재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분명 미군 위안부까지도 일본 위안부와 함께 우리가 관심을 갖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분들이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미군 시설 주변에 숱한 사창가들이 생겨났다.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사창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번성했다. 한국정부는 도리어 미군을 위한 성매매산업을 활성화했다. 성매매의 윤리성을 놓고 갑론을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사창가에 들어가는 여성들로만 미군을 위한 위락시설을 만들었다면 논쟁의 여지가 더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부터 80~90년 대까지 이른바 '미군 위안부'들의 상당수는 악덕 포주들의 인신매매와 납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여성들은 포주들과 클럽, 조폭들 간의 연계로 절대 지하세계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폭행, 구타, 협박, 강압에 의한 마약복용, 낙태 강요,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을 생모의 동의 없이 입양 보내는 행위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탈출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이 부지기수였고, 포주나 폭력적인 미군들에 의해 살해되어 야산에 소리 소문없이 묻혀지는 여성들도 집산이 불가능할 만큼 많았다. 당국의 비호 하에 미군과 포주들에 의해 조직적인 강제 성매매가 버젓이 일어났다. 그것도 일부 시기가 아니라 한국현대사 전체 동안 말이다. 시대별로 가게의 모습만 바뀔 뿐 그 악의 고리는 끊어지질 않았다.
1992년에는 '윤금이 피살 사건'이 있었다.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하던 윤금이(가명)가 겨우 26살밖에 안 된 나이에 미군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콜라병으로 얼굴을 맞고 사망해버린 사건이었다. 콜라병으로 얼굴을 가격했다는 건 의도적으로 살해를 했다기보단 여성을 장난감처럼 취급하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홧김에 세게 가격했다는 뜻이다. 시신에는 비단 콜라병 유리조각뿐 아니라 여성의 몸 군데군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적이고 끔찍한 흔적들이 너무 많았다. '윤금이 피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윤금이 피살 사건은 그간 기지촌 여성들이 겪어온 그 수많은 비극들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이후로도 '윤금이 피살 사건' 같은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많은 위락시설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고 2010년대부터는 한때 강제적으로 기지촌 여성이 되어야만 했던 분들이 용기를 내어 진상규모운동에 나서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위안군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한국여성들의 자발적인 신청이었'다는 일본 정부 측 주장을 들을 때마다 분노해하면서 한국정부가 '미군 위안부'의 존재를 눈감아주었다는 사실엔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여성들을 왜 국가가 보상해주어야 하냐'며 역사를 부인하려든다. 물론 자발적으로 뛰어든 여성의 비율이 일본 위안부보단 많겠지만 비율이나 그 수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래도 많은 힘없는 여성들이 국가의 보호를 외칠 때 정부는 외면했고 오히려 더 그녀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2014년 기지촌 출신 여성들이 국가배상 소송을 걸었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할 배상이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기지촌 여성들을 도우려는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보호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새움터도 세워지고 있으며, 제1호 새움터가 바로 동두천에서 출발했다.
동두천에는 옛날 감성 가득한, 아니 옛날 감성 그대로의 극장들이 있다. 사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쉽게 공감할 순 없지만 겪어보지 못한 선배 세대들이 즐겼던 장소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또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바로 문화극장과 동광극장이다. 문화극장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극장 중 가장 오래된 극장이며, 동광극장 역시 그 정도에 준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응답하라 1988>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종로의 서울극장이나 대한극장의 경우 역사는 오래됐으나 수차례의 공사를 거쳐 최신식 모습을 갖추었으나 동두천의 두 극장은 리모델링을 전혀 거치지 않아 처음 만들어졌던 그때 그 모습이다. 상영하고 있는 영화만 다를뿐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이곳에서 영화를 봤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게 역사지. 실제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것을 지금까지도 사용하며 지금의 세대도 그때 그 당시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행위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고 말이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오니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저녁은 '호수식당'이라고 유명한 부대볶음집을 찾아가본다. 부대찌개는 몰라도 부대볶음이라니. 동두천이나 한때 기지촌이었던 동네가 아니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리다. 미군 근처 시장에서 유통되던 햄이나 소시지 등을 김치와 우려낸 찌개가 부대찌개이고, 거기서 더 쫄여먹으면 부대볶음이다. 육수보다는 건더기가 메인인 요리니 배를 확실하게 채우는데는 부대찌개보다는 부대볶음이다. 이렇게 배도 채운 채로 첫째날을 마무리한다.
동두천을 찾는 관광객들은 아마 대부분 소요산 등산객일 것이다. 등산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소요산은 부담없이 운동을 하시는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소요산 가는 길 한 켠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있다. 동두천시가 군사기능을 담당하는 수도권의 위성도시인만큼 국가안보와 관련된 박물관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며, 전시는 2~4층까지 있다. 전시내용은 6.25전쟁과 6.25전쟁 때 참전한 UN군의 국가들을 소개해준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입구에는 전국에 있는 UN참전국기념비를 국가별로 모형으로 나열해놓았는데, 이 기념비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로 동두천시에는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탑과 노르웨이참전기념비가 있습니다. UN참전군에는 미국/영국/터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티오피아/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태국/필리핀/그리스/남아프리카/콜롬비아 총 16개국이 교전국가로 참전했고,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이탈리아/인도 5개국이 의료지원국으로 나섰으며 총 32개국이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해주었다. 한국전쟁을 세계3차대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아마 밀리터리 덕후들이 환장할 박물관이 아니지 싶다. 혹은 주변에 '밀덕' 한 명을 데리고 간다면 큐레이터 역할도 맡길 수 있고 말이다. 1층에서는 태극기를 그려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아침에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면 점심을 먹을 차례다. 이 날의 점심을 유난히 기다렸다. 이 음식은 동두천에'만' 있기 때문이다. 바로 솥뚜껑모둠구이다. <원조다래솥뚜껑>이란 식당에서 개발해낸 레시피로 이미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가 있으며, 이 요리는 동두천의 이 가게가 아니면 절대 먹어볼 수가 없는 요리이다. 잊을 수 없는 맛이며 내가 먹어본 요리 중 손꼽힌다. 이 요리 하나 때문에라도 동두천을 한 번 더 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여행의 마무리하는 음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역사에는 주류의 역사와 비주류의 역사가 있다. 주류의 역사는 강자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이 접하기가 쉬운 반면 비주류의 역사는 약자의 삶이었던 만큼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가 어렵다. 그리고 주류의 역사는 일방향적인 반면 비주류의 역사는 그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다. 그래서 더 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비주류의 역사는 그 목소리를 듣기가 힘든 만큼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역사의 기억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상처 받은 분들이 국가폭력에 희생된 존재라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아직도 살아계신다. 최근 들어 용기 있는 몇 분들과 그분들을 돕는 단체에서 힘써준 덕분에 조금씩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동두천은 그 상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진 공간 중 하나이다. 마치 하나의 병영처럼 되어 있는, 그리고 이를 관광의 컨셉으로 잡은 동두천을 돌아다니며 어쩌면 생소할 수도 있는 '미군 위안부'의 존재를 떠올려보고, 여행 이후에도 우연히라도 '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접하게 될 때 응원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한 여행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남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하는 법을 알아야 하며, 양심적이고 올바른 사과가 진정한 영웅을 만든다는 것을.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김현선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기지촌여성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한 여대생이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다니며 '미군 위안부'의 존재들을 알게 되었고 20대 시절을 그녀들과 함께 다니며 엮어낸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록입니다. 동시에 기지촌 여성, 아니 미군 위안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책으로 엮어 세상에 공개한 최초의 증언록이기도 하죠. 저자 김현선 작가는 한때 기지촌 여성이었던 김정자 '언니'와 그녀의 과거 일생을 따라 대한민국 곳곳의 기지촌 여정을 떠나는 일종의 로드무비 같기도 하죠. 이 여행을 통해 김정자 씨는 떠올리기도 싫던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들로 인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여행과 증언으로 본인과 같은 존재들을 반드시 세상에 알리기 위한 일념 하에 그 고통스러운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죠. 이 책을 읽어보면 당대 기지촌의 처우가 얼마나 예상을 벗어나는 정도였는지에 충격을 받게 되면서 그간 감춰져있던 생활사의 이면들을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알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이자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죠. 더불어 증언자와 증언을 이끌어내는 사람 사이의 윤리적 거리감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미군 위안부의 존재들에 대해 아직까지도 잘못 퍼진 정보들이 많고, 색안경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기지촌 여성에 의한 직접적인 고백이나 증언이 다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은 아주 가치 있고 숭고롭기까지 합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테드 코체프 감독의 <람보>
'람보' 시리즈 하면 다들 총격전만 난무하는 전형적인 전쟁오락영화라고 생각하시지만 1982년에 나온 <람보> 1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람보>는 반전영화에 가깝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PSTD를 겪으며 사회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참전군인의 방황기를 하드보일드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람보'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람보> 1의 흥행성공으로 이후 속편들이 오로지 흥행성적에만 집중하는 나머지 전혀 이상한 길로 빠져버렸죠. 주연인 실베스터 스텔론이 각본까지 참여했으며, 전후 외상이란 물리적인 상처만큼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전후의 참상을 비감어리게 다룬 영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