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색감을 여행하다
우리나라 지명 중엔 끝에 ‘~양’으로 끝나는 곳들이 있다. ‘~양’이란 풍수지리학에서 강의 위쪽에 있거나 산 아래쪽에 있는 지역들을 가리킨다. 흔히들 배산임수 지역이라고 하는 곳들이다. 즉 끝에 ‘~양’이 붙는 지명들은 도시의 규모와 무관하게 사람 살기에 자연적으로 혹은 지형적으로 참 좋다는 뜻이다. 예컨대 강원도 양양은 설악산 아래 있으면서 동해로 이어지는 '남대천'이란 강 위에 있으며, 충북 단양은 남한강 위쪽과 소백산 아래에 있으고, 전남의 광양은 백운산 아래에 있으면서 남해로 이어지는 ‘광양동천’이라는 강 위에 있는 도시다. 서울의 옛말 '한양'은 북한산(혹은 북악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경기도 안양시는 안양천 위 그리고 관악산 아래에 있는 볕 잘 드는 아주 편안한 도시다. 지역사에 의하면 '안양'이란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하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이란 뜻을 품고 있기도 한단다.
이런 풍수지리적 운명 때문인지 과거 60년 대부터 90년 대까지 관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천을 따라 안양유원지가 조성되어 많은 가족, 연인, 친구들의 추억이 담긴 피서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무분별한 관광산업으로 여러 논란에 휘말렸고 1999년 안양시가 유원지 일대를 사들여 관광지 대개혁에 나섰고 2005년 '안양 예술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옛 유원지 영역에 따라 예술공원 곳곳마다 국내외 52명의 설치예술 작품들이 즐비해 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안양 예술공원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건축과 조각이다. 날씨 좋은 날 운동 삼아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걸으면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는 여행에 경쾌함을 더한다. 말하자면 공원 전체가 야외전시장인 셈이다. 적당한 예술적 긴장감과 자연이 주는 편안함 사이에서 누릴 수 있는 '건축과 조각 여행'은 안양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교양 풍만한 여행이다.
안양 건축여행의 첫 시작은 만안교이다. 건축도시로서의 안양은 2005년부터지만 공교롭게도 조선시대의 뛰어난 건축공법을 볼 수 있는 건축품이 안양에 있다. 바로 조선후기 정조대왕이 수원화성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으로 행차할 때 지나쳤던 '만안교'라는 다리다. 원래 정조는 과천을 지나치려고 했지만 가는 길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함했던 한 사람의 무덤이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피하려고 했고 새로운 길을 찾던 중 안양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다만 하천을 지나야하기 때문에 이때 만안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조의 행렬은 늘 규모가 크고 화려했기 때문에 많은 인원들이 지나가도 끄덕 없을 정도의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왕이 지나치는 다리이기 때문에 조선의 건축 역량을 총동원해야 했다.
돌다리 중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어 마치 무지개 모양이 된 아치형 다리를 '홍예다리'라고 하는데 만안교가 홍예다리의 대표적인 사례다. 만안교는 폭 30m의 나름 거대한 다리이며 한국에서 특히 잘 나는 화강암을 우수한 건축공법으로 설계해 하천의 범람 등에도 끄덕 없는 아주 튼실한 다리이다. 건축 또한 예술의 한 장르라고 하지만 건축의 제1원칙은 실용성이다. 만안교는 미학적인 다리는 아니지만 건축학도들이라면 세밀하게 관측해봐야하는 만큼 실용적 가치가 뛰어난 다리다. 비록 지금의 위치는 국도 설치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200m 가량 옮겨졌지만 모습만큼은 정조 시대에 만든 그대로의 모습이다. 몇 백 년 간 훼손되지 않은 채 계속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만 봐도 건축적 우수성을 알 수가 있다.
만안교는 단지 왕이라는 국가원수가 지나야하기 때문에 일종의 쇼맨십을 만들어진 다리가 결코 아니다. 그랬더라면 실용성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만안교는 정조의 행차 이후로 수많은 백성들이 하천을 지나칠 때 사용했고, 지금도 안양시 주민들이 왔다갔다하는 다리다. 어쩌면 안양시 사람들에게 이 만안교는 너무나도 당연한 다리라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전혀 모를 지도 모른다. 일상이 되는 예술이야말로 건축의 최종 정향점이 아닐까. '만안교'라는 이름 자체도 만백성들이 편안하게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정조가 직접 명명했다고 하니 별 거 없어 보이는 이 다리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정조의 정치철학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래 가는 정치란 어떤 정치인지 새삼 너무나도 당연한 깨달음을 곱씹게 된다.
다음 향하는 곳은 만안교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유유제약회사의 안양공장이다. 구라다. 유유제약회사의 안양공장은 폐건물이 되어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을 뻔 한 폐공장을 안양시는 남은 두 개 동만 사들여 박물관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2004년 안양박물관이, 2007년 김중업건축박물관이 개관했다.
신라 말 고려 초, 경기도 시흥과 과천을 정벌하던 중 태조 왕건이 지금의 안양시를 지나치다가 어느 한 노승려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승려와 대화를 나눈 후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기뻐한 왕건은 이곳에다가 절을 만드는데 이곳이 '안양사'이고, 지금의 안양시 명칭이 바로 이 '안양사'에서 유래했다. 왕건이 안양사를 창건하기 전에 안양사 자리에는 중초사라는 절이 이미 있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사찰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왕건은 중초사 터에 안양사라는 새로운 사찰을 창건한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안양사는 그 당시 안양사를 옮긴 것이고 원래 있던 자리에는 사찰의 기단 터만 남아 있다.
갑자기 중초사니 안양사니 사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유유산업 공장, 아니 안양박물관과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있는 자리가 바로 안양사(중초사)의 터 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양박물관은 오늘날의 '안양시' 명칭을 만들어 준 사찰 땅 위에 태어난 셈이다. 안양의 유래와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안양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면 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안양박물관은 그렇다 쳐도 '김중업건축박물관'은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구 유유산업 공장을 설계한 건축가가 김중업이기 때문이다.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남아 있는 두 개 동 건물도 당연히 김중업이 설계한 곳들이고, 안양시는 안양예술공원을 조성하면서 김중업 건축가를 기리기 위한 박물관을 연 것이다. 김중업 건축가는 유유산업 공장을 설계하면서 건물 외벽 곳곳에 아기자기한 조각품을 새겨넣어 공장이라는 삭막하고 기계적인 느낌에서 최대한 탈피하려고 했다.
김중업 건축가는 1세대 한국건축가 중 한 명이며 승효상, 김수근 건축가와 함께 '한국근대건축의 3대장'이라고도 불린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중업은 해방 전까지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김중업은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예술회의에서 우연히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를 만난다. 전 세계 모든 건축가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르 꼬르뷔지에와의 만남은 김중업에게 개인의 건축사상과 개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실제 김중업은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르 꼬르뷔지에를 따라 프랑스에서 그의 근대건축사상을 전부 흡수한 채 1956년 귀국한다. 근대건축이란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산업화적인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건축이념이다. 언뜻 보면 근대건축과 건축의 예술성은 서로 반목하는 듯 하지만 르 꼬르뷔지에는 상반되어 보이는 실용성과 예술성 두 가지 개념을 한데 어우러 건축의 지평을 확대시켰다. 김중업이 계승한 건축이념 역시 이러한 고차원적인 근대성이었다.
단 오로지 발전만을 지향하던 3공, 4공 시절엔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환영해주지 않았다. 1971년 김중업은 행정당국의 세심하지 못한 불도저식 도시 계획에 반대하는 칼럼을 냈다가 한국에서 강제추방되었다. 김중업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그곳에서 유학을 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제추방 당해 있던 도중 만난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의 영향까지 받은 김중업의 건축세계는 한층 더 낭만성을 띠게 된다.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으로는 제주대학교 본관(현재는 사라짐), UN묘지 정문과 채플, 프랑스 대사관, 진해해군공관, 영등포 태양의 집 쇼핑센터, 종로에 있는 삼일빌딩, 부산 충혼탑,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등 수도 없이 많다.
김중업건축박물관에는 김중업 건축가의 수첩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중 인상적인 글귀들이 전시관 벽벽마다 새겨져 있다.
"건축은 인간이 빚어놓은 손짓이며 또 귀한 싸인입니다.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에 바쳐진 또 하나의 자연이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들의 수필이나 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늘 떠오르는 건, 건축이란 결코 인간의 삶과 자연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더 교감하도록 도와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이다. 실제 뛰어나다는 건축작품을 보면 전부 이 테제에 부합하는 사례들이다.
이론으로 무장한 뒤 이제 본격적으로 야외전시장을 구경할 차례다. 안양예술공원을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안양시관광안내소가 있다. 이곳에서 지도를 공수하고 옛 안양유원지 길 따라 일자로 쭉 늘어선 곳곳에 현대건축과 조각품들이 즐비해있다. 세계적인 유명작가들의 예술작품이 무려 75점이나 된다고 한다. 2005년 국제공모전을 통해 선발한 예술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든 이 프로젝트를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일명 'APAP(Anyang Public Art Project)' 라고 한다.
안양시관광안내소부터 출발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설치미술작품은 안내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1평 타워'이다.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라는 포르투갈 작가의 작품으로 1평짜리 동 하나를 수직으로 올린 조형물이다. '평'이란 단위는 유난히 한국에서 자주 쓰이던 면적 단위였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1평짜리 공간을 만들어 1평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리고 고작 1평짜리지만 이다지도 우람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안양판 오벨리스크인 셈이다.
'1평 타워'를 지나 계속 계곡을 따라 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중간지점인 '안양파빌리온'에 다다른다. 파빌리온이란 박람회나 전시장에서 실내전시를 목적으로 임시적으로 만든 구조물을 말한다. 안양파빌리온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 베에이라가 설계한 것으로 원래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임시적인 건물이 아닌 공공문화예술 전시를 위한 상설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안양파빌리온은 건축에 기하학적 곡선을 적극 도입한 건축물로 현대건축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현대추상미술이다. 안양파빌리온 실내에서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아카이브를 전시해두었고 현대적인 감각의 도서전시도 연출되어 있으니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 찾아서 구경도 하고 쉬다 가면 다음 관람을 위한 에너지도 비축할 수 있다.
파빌리온을 나와 진행방향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빠지면 안양 전망대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에도 다양한 조형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전망대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추상건축가 그룹 MVRDV 팀이 설계한 것으로 삼성산의 등고선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안양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체력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보길 바란다. 참고로 나는 올라가지 못 했다 :)
APAP 건축조각투어는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에서 끝이 난다.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은 각종 SNS에서 포토존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얼굴마담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의 건축가 그룹 아콘치 스튜디오가 설계한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은 도보로 걷는 관광객들이 주차장을 지나칠 때 차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주차장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관광객의 동선을 조작한다는 아주 기발한 조형 아이디어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작과 중간은 마치 우주선 내부를 연상하게 하는 고래 몸 속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파란색 유리로 둘러져 있어 바다 속을 걷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 터널의 끝에는 그저 평범하게 길을 바닥으로 내려오게 하지 않고 구부려뜨려서 야외공연장으로도 사용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단순히 감상이 아닌 체험이라는 의미에서 안양예술공공프로젝트 중 가장 인기도 많으며 가장 즐길 수 있는 세션이다.
'1평 타워', '파빌리온', '전망대',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외에도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즐비해있다. 하나하나 그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보면서 예술적 영감 풍성하게 받아가는 재미는 여행에 적당한 긴장감에 즐거움까지 준다. APAP는 안양 평촌에도 조성되어 있다고 하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다음날 안양과 붙어 있는 경기도 군포로 향해본다. 본래 군포는 안양, 과천, 시흥에 속해 있던 곳이었으나 1989년 군포시로 독립해 독자적인 역사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안양생활권에 속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군포(軍浦)'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때 처음 등장했고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자뜻풀이를 해보면 군사적 기능과 안양천에서 포구 기능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작은 도시라 뭐 볼 게 있나 의구심이 들 법하다. 그러나 단 한 군데를 위해서 충분히 놀러갈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바로 철쭉동산이다. 꽃구경은 그 계절이 아니면 놀러갈 수 없기 때문에 한 해를 놓치면 무려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매년 4월경 우연히 철쭉꽃을 볼 때마다 군포의 철쭉동산이 떠오른다.
매년 4월 중순경 군포시에서는 철쭉동산에서 철쭉축제를 개최한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지역꽃축제 중 하나이다. 3~4월 봄꽃들을 정리해보자면 봄을 예고하는 꽃이 동백꽃이고, 봄을 시작하는 꽃은 매화고, 봄을 무르익게 하는 건 벚꽃이고 그리고 봄을 완성하는 건 철쭉이다. 그리고 5월 봄꽃들이 개화한다.
작은 동산에 수놓인 보라색 철쭉 파라다이스는 마치 아기 신이 보라색 물감으로 장난을 쳐놓은 것만 같다. 규모가 그다지 큰 동산은 아니지만 철쭉 파라다이스가 만들어내는 보라색 휘장은 독특하고 묘한 매력을 풍겨준다. 참고로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안양과 군포를 여행간다고 하면 "거기에 뭐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아마 안양과 군포에 사는 주민들조차 여행온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수도권의 위성도시로서 놀러다닐 곳이 별로 없다는 건 그만큼 관광도시로서 활성화되어 있다기보단 주거기능에 더 집중된 도시라는 의미이고, 이는 살기가 참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괜히 안양의 평촌과 군포의 산본이 1기 신도시로 선정된 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여행다닐 곳 없는 위성도시를 여행하는 건 수려한 경관이나 장대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게 아닌 소소하고 맑고 가볍고 경쾌한 땅을 밟는 산책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여행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니까.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건축의 본질을 느껴보고, 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조각의 우아함을 만끽해보고, 꽃밭이 마련해주는 낭만적인 향연에 취해보는 안온한 여행은 편안한 오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조앤 엑스터트, 아리엘 엑스터트 <컬러, 그 비밀스러운 언어>
인간은 시각에 가장 예민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눈을 통해 '본다'는 지각은 색깔을 인식한다는 뜻이죠. 그만큼 색깔은 인간과 자연에게 있어서 세상을 드러내는 징표이자 자연의 원리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물리학적 단서입니다. <컬러, 그 비밀스러운 언어>는 무지개색 7가지와 색깔에 대한 일반론을 다룬 흥미로운 책입니다. 색깔의 이름 자체는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지만 그 색깔의 비밀과 역사에 담긴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 그리고 그 상징들까지. 어려운 물리학적 용어는 거의 없고 물리와 화학에 문외한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죠. 동시에 과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도 색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덕에 유용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비밀을 읽는 일은 언제나 호기심의 구미를 당기네요.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개인적으로 '조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가위손>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 봤으리라 생각이 든다만 대부분 어릴 때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겁니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들은 매니악적이지만 호불호가 거의 갈리진 않습니다. 그런 괴상하고 기발한 상상력도 팀 버튼 특유의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함으로 소화해내니기 때문일텐데, 팀 버튼의 영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습니다. <가위손>도 다시 보면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 유치함이 곧 낭만이 되는 아름다운 영화죠. 영화의 구성은 늙은 여주인공이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액자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젊었을 적 직접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는 거 같지만 할머니가 실재하지 않은 동화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영화의 내용엔 진위여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너무나도 순수하게 전달된다는 게 중요하죠. 할머니가 손녀에게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관객은 <가위손>을 통해 팀 버튼의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조각전시도 감상했으니 <가위손>을 보면서 에드워드의 작품도 함께 구경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모른죠.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나'가 다시 떠오를지. 앞으로도 <가위손>은 관객의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해주는 영화가 될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누구나 머리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 서투름, 그리고 소년소녀성을 곱씹게 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