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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un 21. 2022

서울촌놈의 국내여행 뿌수기 [보령 편]

잊혀지지 않은 안녕함을 여행하다


하늘은 푸르고 신록은 우거지고. 이런저런 행사가 많다 보니 왠지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할 것만 같은 5월. 생각나는 여행지만 해도 한 두곳이 아니다. 고민고민하다 이번에는 충남의 보령으로 떠나보려고 한다. 보령을 간다고 주변에 말하면 어디냐고들 물어본다. 대천해수욕장은 들어보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면 보령이 대천이냐고 신기해한다. 보령이 대천이 아니고, 대천이 보령이라고 정정해주면 그제서야 '보령머드축제' 를 떠올린다. 맞아 바로 그 보령이야! 분명 대천해수욕장과 머드축제는 보령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보령의 구석구석에는 대천해수욕장만큼이나 시원하고 머드만큼이나 진득한 관광지들이 아는 사람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다. 이름따나 '안녕함을 지키고 있'는 정겨운 곳들이다.




탁 트인 비움의 성주사터

아무리 여행욕구를 자극하는 5월이라지만 보령을 자주 오진 않기 때문에 보령에 오면 성주사터부터 들리려고 한다. 보령을 방문할 때가 아니면 일부러 성주사터만 보러 오긴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터로만 남은 성주사는 그 가치와 내력이 남다른 절이다. 통일신라 말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지방각지에서는 재력이 풍부한 지방호족들이 선종승려들을 모시며 거대한 사찰을 건립해주었다. 지방호족들은 선종승려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고 백성들 사이에서 명망 있던 선종승려들은 지방호족들을 지지해주며 해당 지방의 민심이 호족에게 향하게끔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선종은 교종과 상반되는 불교의 종파로 엘리트주의를 지양하며 누구나 불도가 될 수 있다는 깊은 불심만을 강조했기에 민간백성들과 귀족이 아닌 유력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통일신라 말 수도 경주를 제외하고 지방에서 창건한 선종사찰들 가운데 대표적인 9개의 본산 구산선문이 개창하였다. 보령의 성주사는 구산선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사찰이었다.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어 지금까지는 폐사지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성주사 재현 모형


성주산문을 개창한 승려는 무염 스님이다. 원래 백제시대 때 이곳에 오합사라는 절이 세워졌으나 이후 몇 백 년이 흐른 뒤 신라 말 당나라에서 귀국한 무염 스님이 보령의 호족이었던 김흔의 지원 하에 오합사를 중창하고 이름을 성주사로 개칭하며 성주사가 탄생하였다. 무염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신라 하대의 여느 승려처럼 당나라에서 20여 년 간 유학을 한 이력이 있다. 귀국 후 무염스님이 건설한 성주사는 교단이 더욱 확대되어 무려 2천 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다고 한다. 선종의 승려들은 지방호족과 결탁했기에 중앙의 신라 왕족 혹은 귀족들과는 척을 질 수밖에 없는 관계였으나 무염 스님만큼은 신라 하대의 여러 왕들이 스승으로 모셨다. 당시 그의 별명은 '동방의 대보살'이었다고 한다.


성주사터에 도착해 크지 않은 박물관을 살짝 둘러보고 나와 성주터 내부 권역으로 들어오면 싱그러운 풍경에 시야는 물론 마음까지 탁 트이게 된다. 원래부터 폐사지를 좋아하지만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폐사지의 매력은 해가 지는 불그스름한 하늘에 파멸의 정념을 자극해주는 비장의 미학이라고 생각했거늘 5월의 성주사터는 폐사지의 매력이 무궁무진함을 일깨워준다. 낮은 돌담이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는 가운데 싱그러운 풀들의 초록색과 구름 한 점 없이 맑디 맑은 하늘의 파란색의 조합은 폐사지를 생기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바람에 살짝식 흔들리는 풀들은 마치 초록 파도를 보는 거 같고, 풀밭과 하늘 사이의 산들은 풍경의 그라데이션이다. 적당히 넓은 이 폐사지에 탑비와 석탑 몇 개 덩그러니 놓여 있고 나머지 비어진 공간은 내 감수성으로 맘껏 채우기 몫이다. 돌담과 풀밭과 하늘이 격한 포옹보다는 살포시 내 손을 잡아주는 보드라운 살결의 손길 같다. 



그렇게 풀밭을 천천히 해치고 국보 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앞에 선다. 국보 8호 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하대, 진성여왕 4년 차이던 890년 무염 스님(801~888)을 공적을 기록한 탑비다. 불교사회에서는 승려를 조형적으로 기념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승탑을 세워 승려의 넋과 불공을 기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탑비를 세워 승려의 생전 공적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비(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특정 무언가의 내역을 작성하는 기록의 한 유형이었다.  888년 무염스님 타계 이후 당시 국왕이었던 진성여왕은 무염스님에게 '낭혜'라는 시호를 하사했고, 그의 제자들이 무염스님의 탑비를 세우자 진성여왕은 해당 탑비에 '백월보광'이라는 탑호를 내렸다. '화상'이란 승려들 중에서도 대스승으로서 제자 승려들을 인도하는 승려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국보 8호의 명칭은 '낭혜화상 백월보광 탑비'로 분절해서 읽으면 된다. 탑비의 내용은 신라 하대 지식인들 중 원 탑 오브 원 탑이었던 최치원이 지었고 이 비문은 최치원의 또다른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문의 문장은 해박한 지식과 고전을 인용하며 날렵하면서 근엄한 어조를 띠는 명문이다. 비문 중 가장 좋아하는 아래 글귀는 비단 무염에 대한 최치원의 소견으로만 끝나지 않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지침을 깨닫게 해준다.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을 덕을 세우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말을 세우니, 덕은 말에 의지해야 칭솔될 수 있고, 말은 덕에 의지해야 영원할 수 있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총높이 4.55m로 신라 시대 탑비들 중 가장 크다. 크기가 가장 크다고 전부 훌륭한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그 자체로 주는 근엄함이 있다. 근엄함은 그 두꺼움에서 기인한다. 거북받침돌도 옆으로 넓직한 편이며 지붕돌도 상당히 두꺼운 편으로 운룡이 휘어감고 있어 격동적이고 환상적인 구조를 연출해냈다. 무엇보다 비문이 적혀 있는 비석의 몸통 부분이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훼손의 흔적도 적고 화강석 받침돌-지붕돌과 묘한 조화도 이루고 있다.


무염스님은 불도의 본성은 말이나 글에 있지 않고 진심에 있다고 보았다. 말과 이론은 불도를 전파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단이고, 이심전심을 통해 불교의 도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했다. 굳이 불교의 도가 아니더라도 현대사회의 우리는 말과 글과 같은 수단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중요한 건 마음이고 진심이다. 말과 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진심이 결여된 말과 글은 공허할 뿐이라고 성주사터의 탁 트인 비움이 분연히 말해준다.



석탄 캐던 카페, 갱스커피

성주사터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SNS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카페 '갱스커피'가 있다.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카페들은 접근성이 쉬운 편인데 이곳만큼은 운전에 집중을 해야할 만큼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산을 올라가면서 이 정도 높이에 있는 곳이라면 경치는 보장되겠구나 기대감을 잔뜩 품는다. 가는 길이 험할 뿐 주차공간도 넓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카페의 건축디자인이 노출콘크리트다. 외벽을 별도의 장식으로 마감하지 않고 구조체인 콘크리트를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디자인이다. 처음 유행할 때야 신기하긴 했지만 근래에는 노출콘크리트의 카페 디자인이 워낙 많다 보니 질리는 맛이 있고, 오래도록 이어져오던 건물을 재활용하지 않고 새로 짓는 건축의 노출콘크리트는 작위적인 느낌 물씬이다. 그러나 갱스커피의 경우 허물어져가던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재활용하여 증축하여 카페로 운영 중인 곳으로 세월의 끈적한 생명력이 역력한 곳이다. 



원래 이 건물은 탄광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시설이었다. 카페 곳곳에서 옛 광부들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그제서야 이토록 인기 있는 카페가 왜 오기가 힘들었고 산 속에 있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탄광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오는 길에 '보령석탄박물관' 표지판을 본 것이 기억난다.


석탄이 언제적 석탄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전력에너지원의 부동의 1위가 화력이며 그중에서도 석탄이 압도적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인식개선 덕에 석탄의 비중을 낮추려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고 오로지 산업발전만이 국가와 국민의 주목적이었던 산업화 시대에 석탄화력은 국가를 밤낮으로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화력발전소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한다. 그중에서도 인구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에 화력발전소가 많이 배치될 수밖에 없지만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수도권에선 조금 떨어진 충남의 해안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현재 전국 57기의 화력발전소 중 26기가 충남에 위치해 있고 충남지역에서도 가장 먼저 화력발전소가 세워진 곳이 보령이었다. 2022년에는 노후화된 2기가 작동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력원이지만 석탄은 환경에 가장 취약한 에너지원이며 충남화력발전의 포문을 열었던 보령의 화력발전처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량은 거의 전국 최대치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보령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광산으로 개발되어 왔다고 한다.


광부의 업무라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는 이 위험한 직종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불의의 사고가 날지, 한 번 갱을 갔다나오면 온몸이 검은 범벅이 되고, 심한 폐질환을 앓게 되어도 대한민국을 돌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이 석탄이 유일했던 시절. 카페 벽화 속 광부들 그림의 시선 대로 바라보면 멋진 산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갱굴에 들어가기 전, 나온 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광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도 상화원을 거닐며

대천 쪽으로 보령 끝자락에 돌출되어 있는 죽도는 예전부터 어부들이 살던 어촌마을이었던 섬으로 1999년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이 알려져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한국식 전통정원 '상화원'이 들어섰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화원'은 '조화를 숭상한다'는 이름 그대로 죽도가 지닌 자연미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정원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돌담과 회랑, 그리고 전통 한옥과 빌라 등이 한데 어우러져, 걷고 싶고 쉬고 싶고 만나고 싶은 공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싼 2km 구간의 지붕형 '회랑'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서 눈비가 와도 해변일주를 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으며, 새롭게 조성된 '석양정원'은 바다 가까이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물보라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상화원의 황홀한 석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350m의 석양정원에는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는 108개의 나무벤치가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선사합니다. 회랑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돌기만 해도 상화원의 주요시설을 거의 감상할 수 있으며, 곳곳에 꾸며진 해변 연못과 정원 등을 만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조망하실 수 있습니다.


-상화원 홈페이지


상화원은 죽도 섬 둘레를 따라 놓여진 회랑을 걷는 코스로 1인 6000원의 입장료로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40분 가량 걸리는데 물론 회랑만 덩그러니 놓여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닌 중간중간 볼거리들이 가득하여 쉴 곳에서 쉬고 멈출 곳에서 멈추다보면 더 많은 체감하지 못한 시간들이 소요된다. 회랑을 15분 가량 걷다보면 중간에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입장료를 제시하면 떡과 커피를 대접받는다. 특별할 것 없는 종이컵 커피 한 잔이지만 아직은 무덥지 않은 5월 섬으로 찾아오는 바닷바람이 차갑기 때문에 커피 한 잔이 얼마나 든든하고 낭만적인지 모른다. 섬이 아름다운 건 섬 자체보다는 섬에서 바라보는 그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나무 회랑과 어울리는 흙, 호젓한 해송과, 파도가 부딪히는 바다바위, 그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빛. 하얀 포말처럼 햇빛의 조각들이 바다에서 반짝인다. 하늘의 색감과 빛이 바다를 비추고, 바다는 하늘을 적셔준다. 그리고 잔잔히 들리는 파도소리까지. 한국식 정원이라고 하지만 상화원은 정원 구조라기보단 산책코스의 회랑이 이어져 있다. 회랑의 모습은 한국적이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동남아나 하와이 등 태평양 섬들의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적이다는 것일까? 정원을 대하는, 자연에서 노니는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사상이 상화원의 취지에 새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중일 세 국가의 정원양식을 비교해볼 때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정원에 대한 서로 다른 사상들이다. 우선 중국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실제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인간이 자연으로 다가가는데, 일본은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받아드려지는 딱 한 군데를 지정하여 그곳에 정원건축이 들어선다. 따라서 일본식 정원은 한 가지 장면만 볼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식 정원은 감상자 위주가 아닌 자연의 흐름과 라인에 가장 어울리는 곳에 건축이 들어서고 최대한 건축 자신을 감추며 감상자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알아서 찾게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한국식 정원은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천차만별의 장면들이 나올 수 있다. 상화원을 걷다보면 이런 한국식 정원사상과 태도가 잘 살리려고 애쓴 사실이 느껴진다. 정말로 내가 위치하는 곳마다 다 다른 모습의 바다와 하늘과 나무와 흙과 바위를 볼 수 있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멈추지 않고 자전하기 때문에 매시각 그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벽-일출-아침-정오-대낮-일몰-저녁-밤' 이 사이사이 명명되지 않은 하늘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는 즐거움 또한 감상자의 몫이다. 내가 입체적인 만큼 더 다채롭고 많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코스 마지막 여러 채의 한옥들이 즐비하다. 지방별 한옥의 모습들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가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재미로 죽도 상화원의 대미를 장식해본다.




오천항의 키조개

죽도를 나와 오천항 쪽으로 운전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다. 숙소를 오천항 근처에 잡은 이유는, 그리고 굳이 5월에 보령을 찾은 이유는 오천항의 키조개가 주된 목적이기도 했다. 아주 큼직막한 몸체가 특징인 키조개는 4~5월이 제철이며 생긴 것이 농기구 '키'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개들은 관자를 이용해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고 갯벌과 진흙에 박혀 사는 키조개는 관자의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조개류 가운데 관자가 가장 크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기폐'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민가에서는 '기홍합'이라고 불렀던 듯하다. <자산어보>에는 키조개에 대해 "큰 것은 지름이 5~6치다. 생김새는 키와 같고, 평평하고 넓으나 두껍지는 않다. 실 가닥처럼 생긴 세로무늬가 있다. 색깔은 붉은색이다. 털이 있어 돌에 붙어 있다. 또 돌에서 떨어져 나와 헤엄쳐 다닐 수 있다. 맛은 달고 깔끔하다."고 나와 있다.


본디 키조개는 남해안에서 많이 잡혔으며 특히 장흥이 키조개로 유명하다. 1970년대부터 갯벌이 발달되어 있는 서해안에서도 키조개가 잡혔으며 보령 인근 해역에서도 키조개가 많이 잡히다보니 오천항에는 키조개집 타운이 줄 서 있다. 오천항수산물판매센터 8호점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급적 모든 키조개 요리를 먹어보고 싶어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키조개 요리란 주로 크고 넓직한 키조개 관자 요리를 뜻한다. 키조개관자회부터 샤브샤브, 무침, 양념까지 네 가지 코스요리가 나온다. 관자 자체의 연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맛은 깔끔한 소주를 부르고 요리형태별로도 제각각의 맛이 난다. 회로 먹을 땐 식감이 훨씬 찰지고 익혀먹을 땐 훨씬 쫀득하다. 마지막 볶음밥까지 포기할 수 없다. 소주를 주문할 때 사장님께 린을 주문하니 서울사람이 어떻게 충청도 소주를 아냐며 좋아라 하신다. 괜시리 뿌듯해진다.




숙소로 들어와 더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일어나 다시 오천항 쪽으로 왔다. 어젯밤엔 술을 위해서 다음날엔 해장을 위해서다. 오천항에는 오양손칼국수라는 유명맛집이 있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오픈시간도 전에 도착해서 웨이팅을 걸어놔야 하는 수준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단품보다는 세트로 시키는 편이 낫다. 서해안 일대가 갯벌이 발달해 있어서 조개가 잘 잡히고 그래서인지 칼국수 요리가 발달해 있다. 20대 초반 학교 선배들과 함께 대천에 와서 조개구이에 바지락칼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양손칼국수 역시 서해안을 대표하는 칼국수집 중 하나인데 근래 들어 비빔국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확실히 비빔국수의 비주얼이 독특하긴 하지만 맛 자체는 일반 비빔국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양손칼국수의 핵심은 역시 칼국수다. 식전 나오는 보리밥 또한 일품이다. 윤기가득한 보리밥 위에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를 올려다 먹으면 역시 김치 맛있는 곳은 무조건 메인요리도 맛있다는 명제가 새삼 떠오른다. 식당 설명문을 보니 30년 전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바지락만으로 육수를 우렸으나 점점 바지락 공급에 문제가 생기며 오천항의 특산물인 키조개로 대체했다고 한다. 키조개로 우린 칼국수까지. 장흥 부럽지 않은 오천항에서 키조개의 끝을 맛보고 왔다. 키조개가 자주 먹는 요리는 아니다보니 올해 한 해 먹을 모든 키조개는 다 먹고 간다.




공효진도 반한 충청수영

오양손칼국 개장 전 대기를 걸어놨음에도 웨이팅이 있어서 그 사이 바로 옆에 있는 충청수영을 산책하러 오기로 했다. 충청수영으로 진입하는 이 돌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양옆으로 녹색의 수풀들이 장식해주고 있으니 이 돌문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는 마법의 문만 같다. 별 장식없이 아치형 돌문만 떡하니 놓여있는 것이 오히려 주변과 잘 어울리고 창덕궁 후원에 있는 돌문, 논산 관촉사에 있는 돌문과 더불어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돌문들 중 하나이다. 돌문을 지나 잔잔한 작은 풀들이 장판을 깔아주고 있는 공터의 트임에 시원한 공기 한 번 마시고 영보정에 오르면 고기잡으러 나간 작은 고깃배에서부터 맑은 하늘만큼이나 넓직하고 잔잔한 바다가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관아 자체가 삼면이 트여 있어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확실히 군사시설이 있던 곳이 전망이 좋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충청수영은 오늘날의 용어로 끄집어와 말하자면 충청도해군사령부쯤 된다. 충청방면 모든 수군을 관장하던 군사시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총 5개의 수영, 그러니까 5개의 해군사령부가 있었다. 전라도에 좌수영, 우수영 하나씩, 경상도에 좌수영, 우수영 하나씩 그리고 충청도에 수영 하나가 있었다. 각 수영의 책임자는 '수사'라고 '수군절도사'의 줄인말이다. 수군절도사는 조선시대 군 장교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 따라서 보령의 충청수영은 황해안을 지키고 사수하는 조선시대 수군의 상징이었다. 조선 초기 충청수영 소속의 군선은 142척, 병사 수는 8,414명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충청수영성의 전망이 좋을 수밖에 없다. 영보정에서 경치를 배경 삼아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고 다시 내려가는 길에 이곳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장소였다는 팻말이 놓여 있다. 일행의 말에 의하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공효진 배우가 촬영을 하며 '보령'에 크게 반했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드라마 메인촬영지가 포항이라 뜬금없이 나온 보령에 의아했다고 하는데 이제 여기 와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것이었다. 식사해장 전에 눈해장. 이보다 완벽한 해장코스는 없다.




우유에 진심이다! 보령의 우유창고

보령의 북쪽 천북면에는 '보령우유'에서 운영 중인 목장 겸 카페다고 소문이 나서 찾아가보았다. 가는 길에 조금씩 건물들은 줄어들고 나무와 흙이 많아지는 경치에 내심 기대감이 더 커진다. 넓은 부지에 볼거리 투성인 보령의 우유창고. 그저 독특하기만한 카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보령우유사가 얼마나 우유연구에 '진심'인지 그 진정성에 놀라게 된다. 차에서 내리면 큼지막한 건물이 있는데 '바른우유연구소'라고 우유, 요거트, 치즈 등 건강에 좋으면서도 맛도 챙기는 품질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기관이다. 사전예약을 하면 이곳에서 유제품 관련 체험활동도 가능하다. 길을 건너면 카페가 있다. 

우유창고이니 우유가 들어간 메뉴를 고민해보지만 개운한 커피도 땡겼던지라 카페라떼를 시키고, 일행은 오곡라떼를 주문했다. 직접 만든 우유를 넣은 카페라떼이다보니 깔끔한 목넘김이 인상적이었는데 오곡라떼를 먹은 일행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맛이 없냐고 걱정되어 물어보는데 멍하고 벙찐 얼굴로 일행은 "태어나서 먹은 오곡라떼 중에 제일 맛있어"라는 넋 나간 감탄을 읊조리는 게 아닌가. 특유의 꾸덕꾸덕하고 텁텁한 맛에 별로 오곡라떼를 좋아하지 않지만 호기심어린 마음에 한 입 먹어보는데, 세상에나 ...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오곡라떼가 있구나. 음료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요리는 결국 재료가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맛이었다. 


다시 길을 건너오면 개화목장이라고 듬직한 소에서부터 귀여운 송아지까지 볼 수 있다. 1982년 처음 개화목장을 연 보령우유는 소와 소젖에 대한 정성어린 태도로 우수한 우유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개화목장은 '개화목장이 위치한 천북면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청정해역으로 국내 유기농 원유의 30%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젖소가 자라기에 최적의 지리적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직접 10만평 가량의 유기농 초지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목초를 소들에게 급여하며, 젖소의 분뇨가 다시 초지의 거름으로 활용되는 순환농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 한다. 목장과 연구소 사이에는 딱 봐도 공장시설이 눈에 띄는데 당연히 일반인 입장은 불가능하고 나중에 찾아보니 개화목장에서 당일 착유한 원유를 공장으로 가져와 당일 우유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토록 우유에 대한 진심이 우러나오니 이곳을 찾은 나조차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우유창고의 마스코트인 아저씨도 푸근한 인상에 참 정감간다. 



대천해수욕장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는 대천역발로 예약을 해놨다. 시간이 남아 대천해수욕장을 들르기로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대천해수욕장. 아니나다를까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곳 대천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다른 해수욕장의 모래들에 비해 몸에 잘 달라붙지도 않고 물에 잘 씻긴다고 해서 예전부터 해수욕장으로서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해안 특유의 갯벌도 사뭇 형성되어 있어서 독특한 해수욕장 중 하나이다. 바다 위를 달린다는 모노레일바이크 '대천 스카이바이크'를 타고 싶었는데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벌써 매진되었다고 한다. 사전예약이 안 되고 오로지 현장예약만 가능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한가보다. 무언가 특별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백사장을 그저 걷기만 하는데 저 높이 수직으로 치솟은 짚라인이 눈에 띈다. 일행과 눈치를 보다가 태어나서 짚라인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생애 첫 짚라인인데 장비를 맬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는데 출발선에 서고 나면 바다의 아름다움보다 쿵쾅거리는 가슴이 더 신경쓰인다. 직원분이 힘차게 밀어주며 쾌속으로 내려가는 순간 맞는 바닷바람의 카타르시스는 굉장하다. 중간에 멈추는데 바다 위 하늘에 둥둥 떠있는 신난 기분이 주체가 안 될 정도다. 너무 빨리 끝나 아쉬울 만큼 이제껏 왜 짚라인의 재미를 모르고 살았나 싶다. 다음번엔 숲속의 짚라인에 도전해봐야지.




대천하면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바로 머드축제다. 1998년부터 시작한 대천해수욕장의 보령머드축제는 시작과 함께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며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국내지역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매해 수 백만 명의 외국인들이 찾았으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하였다가 2022년부터 재개한다. 대천 머드축제를 처음 생각해낸 박상돈 전 보령시장은 보령의 머드 성분분석을 한국화학연구소와 아모레퍼시픽에 의뢰했고 연구결과 보령의 머드에서는 미네랄, 게르마늄, 벤토나이트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고 한다. 화학원소에 대핸 잘 모르지만 피부미용에 좋은 성분들이라고 한다. 보령 머드축제는 다양한 머드 관련 콘텐츠들로 구성되어있고 머드의 미래가치를 탐구하는 머드박람회까지 개최된다. 보령머드를 활용한 화장품까지 브랜드화 되어 있다. '보령머드' 화장품은 "천연 갯벌 진흙을 일련의 세척, 건조, 분쇄, 멸균 과정을 거친 원료를 생산하여 화장품 원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 백만명의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보령머드축제는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추억을 잠시 제쳐두어야만 했고, 여러 지역축제들은 그간 쌓아두었던 이야기의 역사를 휴지시켜야했다. 다행히 이제서야 그 이야기의 흐름이 다시 트이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온 후 놀란 건 각종 편의점에서 '보령우유'산 빵들을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편의점에서 '보령우유' 아저씨를 보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보령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이제는 지나칠 때마다 나와 보령에서 만든 추억과 이야기를 재소환하는 느낌이다. 여행을 가서 만드는 추억과 이야기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어느 한 영화의 대사따나 이야기가 되면 사라지지 않는다.


"He becomes the story. In that way he becomes immortal"  -팀 버튼 <빅 피쉬>


저 위의 문장 주어 He를 무염스님으로, 탄광광부들로, 키조개를 캐는 어부들로, 보령의 우유창고로, 대천의 머드축제로, 여행 떠나온 관광객들로 치환해보고 문장을 곱씹어보면 여행의 여운이 더 맴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 추천 

- 최시한 <간사지 이야기>

'간사지'란 갯벌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지만 바닷가 현지인들은 '간척지'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과거 바다였던 지역 혹은 그 지역의 동네를 일컫는다고 하죠. 저자 최시한 작가는 보령 출생의 소설가로 소설뿐 아니라 소설이론에 대해서도 여러 강연과 집필을 해오셨습니다. <간사지 이야기>는 저자가 살았던 고향 보령의 간사지 마을을 배경으로 여러 단편소설들을 엮은 연작소설집입니다. 분명 소설의 문체이긴 하지만 저자 개인의 경험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수필에 가깝습니다. 더불어 연작소설이지만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성인시절까지의 특별하고 기억에 남은 과거의 파편들이기에 느슨하게나마 하나의 배경관이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보령 여행을 다녀오신 분이라면 익숙하고 반가운 지명들이 여러 등장하고, 비록 어촌마을에서도 시골에서도 자라지 않은 독자라도 매력적인 문장력 덕에 금세 몰입되어 저자와 같은 추억 속에 있는 느낌이죠. 대단할 거 없는 내용인 그저 평범한 개인의 소회일 수 있으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예술적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줍니다. 


◆ 여행의 재미를 더 깊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영화 추천 

-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

보령의 우유창고와 개화목장에 제대로 매료되어 이와 관련해 꼭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적인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 선정 2021년 최고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으며 뉴욕비평가협회상을 비롯해 미국의 각종 영화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서부극을 주로 만들어왔는데, 팽창주의 정신을 기리는 기존의 서부극 기조와 다른 관점에서 서부극을 해석해왔습니다. <퍼스트 카우>는 서부극의 주무대에서 빗겨나있는 오리건 주를 무대로 (오리건 주는 미 서부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편입된 주입니다) 이탈리아계 백인과 중국계 아시아인을 두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이질적인 두 외국인의 우정과 연대를 중심으로 힘도 없고 돈도 없는 두 주인공이 수직적 팽창주의 및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에서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는가가 영화의 맹점이죠. 두 주인공이 연대하는 또 하나의 존재. 자본주의의 도구로만 인식되는 젖소 한 마리. 연대하는 세 존재들과 서부개척시대라는 세계 사이에서 조성되는 이 긴장감은 서부극이란 장르와 미국의 역사에 새로운 시선을 트이게 해줍니다.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큰 돈을 번다거나 그간 서부극 주인공들의 꿈과는 다르게 두 주인공의 꿈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면 <퍼스트 카우>는 훈훈하면서도 씁쓸한 역설적인 여러 감정들을 자극시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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