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시대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다보면 민망할 정도로 단골손님처럼 거론되는 사람이 경덕왕이다. 신라 중대 경덕왕의 치세기가 신라인들의 문화적 역량이 얼마나 정점을 찍고 있었는지는 이미 수차례 언급했다. 그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 걸작들이 경덕왕 대에 대거 제작되었다. 배경은 경덕왕 개인적인 사유에 기인한다. 742년 신라 35대왕으로 즉위한 경덕왕 대부터 그동안 강력했던 왕권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덕왕 입장에서는 왕권을 드높이고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왕실을 상징하는 큰 규모의 토목공사를 단행했다. 그 예로 만들어진 것이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또 한 가지 사례가 성덕대왕 신종이다.
성덕대왕 신종은 이름 때문에 성덕왕이 지은 종으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상은 경덕왕이 즉위 이후 아버지였던 성덕왕을 기리고자 제작하였다. 성덕대왕 신종은 그 종소리가 '에밀레' 같다는 이유로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 신종의 제작 일화와 관련하여 경덕왕이 종 제작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스님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민간인들한테 시주를 받던 중 한 아낙네가 시주할 것이 자기 아이밖에 없다며 가난을 호소했다고 한다. 종 제작이 계속 지연되고 소리가 스님들의 성에 차지 않자 부정이 탔다는 이유로 그 아낙네의 아이를 데려다 아이와 청동을 같이 녹여 종을 완성시켰고 그 소리가 천상의 소리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에밀레종의 '에밀레'가 '에미 탓으로' 라는 말에서 변형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대에 와서 정밀한 과학분석으로 종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실제 사람뼈에서 나오는 인의 성분이 유독 많이 검출된다고 한다. 원래 모든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들은 최소한의 과학자료는 있어야 하는 법. 이런 스토리텔링이 국보를 더욱 국보답게 해주지 않겠나.
성덕대왕 신종이 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이유는 종에 종 제작과 관련하여 당대 신라인들이 글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성덕대왕 신종은 경덕왕이 선친이신 성덕왕의 덕과 치세를 칭송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 이 종은 구리 12만근(약 72톤)이라는 점, 종 제작이 시작된 시기와 완성이 된 시기,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전부 세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성덕대왕 신종이 771년 12월 14일이라는 아주 정확한 완성시기를 알 수 있고 이렇게 고대 신라인들과 대화할 수도 있게 되었다.
성덕대왕 신종이 왜 아름다운가는 시각적인 이유와 청각적인 이유가 있다. 어느 면에서나 성덕대왕 신종은 우리나라 최고의 범종이고 숱한 외국인들과 전문가들을 경탄에 빠뜨린다. 먼저 시각적인 이유에선 형태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이 3.7m, 둘레 7m, 무게 약 19톤의 이 성스러우면서도 장엄한 범종에 대해서 유홍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에밀레종은 여느 범종과 마찬가지로 항아리를 뒤집어놓은 달걀 모양, 또는 대포알을 머리와 허리춤에서 자른 모습이지만 가운데 아래쪽이 불룩하게 부풀어 있으면서 끝마무리는 슬쩍 오므려 풍만한 포만감을 주는 긴장미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종 어깨에서 몸체를 지나 허리에서 마감하는 유려한 곡선미를 드러낸다. 풍만하면 유려하기 힘들고, 유려하면 풍만하기 힘든 법이지만 에밀레종은 그 모두를 충족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에밀레종을 보면서 감히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쓰지 못한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고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형태와 소리를 지닌 신종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와 경의를 여기에 바칠 뿐이다.
에밀레종은 형태의 볼륨도 볼륨이지만 디테일한 문양들을 볼 때 즐거움이 더해진다. 우선 어깨부(구연부)에 9개의 동그란 연판을 보상당초문양이 감싸고 있고 이것이 하나의 패턴이 되어 4면에 조각되어 있다. 종의 허리부에 있는 비천상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회화 한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그림도 크다 보니 환상적이면서도 거룩한 인상을 배가해준다. 종의 위아래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보상당초문양은 종교적 추상화로 보이며 용틀임하는 용 모양의 종고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정교함의 획이다.
다음은 종의 소리에 대한 청각적 우수성이다. 종의 원래 역할을 소리를 내기 위함이고 범종의 종소리는 부처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에 범종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요소가 바로 이 종소리다. 이 영롱한 종소리는 취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는 음향학과 공학, 물리학의 관심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요 연구대상이기도 하고 이미 숱한 연구실적들이 누적되어 왔다. 카이스트의 이병호 박사는 한국의 종소리 아름다움을 계량화하여 수치로 표현해냈는데, 소리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객관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들을 수 있지만 음향학계 전문적인 개념들과 복잡한 공식 등을 정밀하게 계산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와 의미가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병호 박사는 100점 만점으로 한국 종소리들을 채점하였고 순위를 매기기도 했다. 3위가 보신각 종소리로 58.2점, 2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조 상원사 동종이 55.7점 그리고 1위인 성덕대왕 신종이 86.6점으로 독보적이다. 범종의 표면은 매끄럽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내부는 울퉁불퉁하여 종을 치면 서로 다른 두께의 주파수가 겹친다고 하는데 이를 '맥놀이 현상'이라고 한다. 참고로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현대의 기술로 재현이 불가능하다.
성덕대왕 신종의 라이브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992년 마지막으로 타종을 하고 이후 행사 때 간헐적으로 타종을 하다가 2004년 이후로 타종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서였다. 지나치게 많이 타종을 하면 범종에 손상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는 종은 쳐야 녹슬지 않는다며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범종에 치명적이라는 입장도 있다. 아무리 위대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아직까지 성덕대왕 신종에 훼손이 가해진 흔적은 없다고 한다.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녹음본으로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의 우수함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우리는 세계를 울릴 수 있는 소리를 만든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도 한국인은 멈추지 않고 세계를 울릴 것이다.
원래 성덕대왕 신종은 봉덕사에 있었으나 봉덕사가 폐사지가 되면서 덩그러니 놓여 있던 신종을 박물관으로 옮겼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