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은 국보 37호인 황복사지 3층 석탑과 국보 38호인 고선사지 3층 석탑과 통일 이후 8세기 신라 중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계단형 옥개석은 이 시기 제작되었던 탑의 유행양식이었다. 단 통일신라에는 거의 대부분 3층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5층으로 제작된 탑은 극히 드문 사례다.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은 탑 이외에 사찰의 내역을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유물이 없어서 무슨 배경으로 5층으로 제작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은 완벽에 가까운 비례미를 자랑하는 그 짜임새에 감탄하게 된다. 이 비례미만으로도 경주 황복사지 3층 석탑, 경주 고선사지 3층 석탑과 비슷한 양식을 취함에도 그중 가장 구조적으로 우수하다. 기단부는 정교하고 세밀하게 디자인되었으며 기단부와 1층, 머리장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다.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은 이끼도 잘 끼지 않아 특유의 순백색을 청초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을 '나원 백탑'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1924년 7월 10일 동아일보에서 경주에 있는 신라의 3가지 보물과 8가지 괴이한 풍경을 '삼기팔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바 있다. 동아일보에서 직접 명명한 이름이 아니라 경주 사람들끼리는 오랫동안 쓰이던 말이었다. 삼기팔괴 중 팔괴의 3번째가 바로 국보 39호인 '나원 백탑'이다. 팔괴에 꼽힌 건 탑 자체가 아니라 탑이 띠는 우유빛깔이다.
1995년 진행된 해체 수리 공사 도중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는데 이 사리장엄구는 신라 금속공예에서 빠질 수 없는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