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거리의 사람들

11화. 다시 쌓는 벽돌

by SW

10화의 결심 이후, 폐허 위에 천막을 치고 다시 장사를 시작하는 과정과 공동체의 도움으로 '사람'이라는 자산을 확인하는 회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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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망치질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
준호는 입에 못을 문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불에 타다 남은 목재 기둥에 푸른색 방수포(Blue Tarp)를 덧대는 작업이었다.
​그럴듯한 건물이 아니었다.
바닥은 여전히 시멘트 맨살이 드러나 있었고, 지붕 대신 얼룩덜룩한 천막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공사판이나 난민촌 텐트처럼 보일 만큼 초라한 몰골이었다.
​“여보, 이쪽 좀 잡아줘.”
​준호의 말에 지현이 천막 끝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녀의 손은 며칠 새 더 거칠어져 있었다. 패물을 판 돈으로 마련한 것은 중고 발전기 한 대와 기본적인 식료품 몇 박스가 전부였다.
​“이게... 될까?”
​지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텅 빈 매대를 바라보았다.
사과 상자를 뒤집어 만든 진열대에는 라면, 통조림, 물, 그리고 건전지 같은 생필품만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예전의 그 풍성하고 정돈된 가게와 비교하면 소꿉장난 같았다.
​“해야지. 이것밖에 없으니까.”
​준호는 애써 씩씩하게 대답하며 마지막 못을 박았다.
**[준호네 청과(Junho’s Market)]**라고 매직으로 삐뚤빼뚤하게 쓴 골판지 간판을 기둥에 걸었다. 바람이 불자 골판지가 힘없이 펄럭거렸다.
​초라했다. 창피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새로운 성(Castle)이었다.
​오픈 준비를 마치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낡은 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도매상 김 사장의 트럭이었다.
​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 사장에게 줄 외상값이 꽤 밀려 있었다. 독촉하러 온 걸까? 준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박 사장! 살아 있었구만!”
​트럭에서 내린 김 사장은 대뜸 준호의 등짝을 후려쳤다.
​“김 사장님...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누가 돈 달래? 장사 다시 시작한다며?”
​김 사장은 트럭 뒤 칸을 열었다. 그곳에는 싱싱한 배추와 무, 과일 박스가 가득 실려 있었다.
​“자, 받아. 일단 팔고 나중에 갚아.”
“네? 아니, 이 많은 걸 외상으로 주신다고요?”
“박 사장, 내가 자네랑 거래한 게 몇 년인데 그걸 못 믿어? 은행 놈들은 서류만 보지만, 우리는 ‘사람’ 보고 장사하는 거 아니야.”
​김 사장은 박스들을 천막 안으로 척척 날라다 주었다.
​“이 동네 사람들 지금 마트가 없어서 굶어 죽을 판이야. 자네가 빨리 문 열어야 나도 먹고살지. 안 그래?”
​투박하지만 따뜻한 말이었다. 준호는 코끝이 찡해져 고개만 끄덕였다. 신용(Credit)은 은행 전산망에 있는 게 아니라, 지난 10년의 땀방울 속에 쌓여 있었다.
​물건을 진열하고 나니 제법 가게 태가 났다.
하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했다. 무거운 쌀포대를 옮기려 끙끙대고 있는데, 천막 입구에 누군가 그림자처럼 섰다.
​말릭이었다.
어제 준호가 모진 말로 쫓아냈던 그 녀석.
​준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말릭을 쳐다보았다. 미안함과 민망함이 밀려왔다.
​“...너, 오지 말라니까.”
“시급 안 주셔도 돼요.”
​말릭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성큼성큼 들어와 준호가 들고 있던 쌀포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유통기한 임박한 빵이랑 우유, 남으면 저 주세요. 동네 애들 나눠주게.”
​말릭은 쌀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볍게 날랐다.
준호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 임마. 유통기한 남은 거 줄게. 새걸로 가져가.”
“Deal (콜).”
​말릭이 씩 웃었다.
다시 세 사람이 모였다. 준호, 지현, 그리고 말릭.
완벽한 팀이었다.
​“가게 문 엽니다!”
​준호가 발전기 줄을 당기자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 안의 알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노란 불빛이 어둑해지는 거리를 밝혔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유일하게 켜진 불빛이었다.
​그 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골이었던 히스패닉 할머니, 갓난아기를 업은 흑인 아주머니, 옆집 세탁소 부부...
​“어머, 박 사장네 다시 열었네!”
“우유 있어? 우리 애가 며칠째 우유를 못 마셔서...”
“Thank God! 문 열어줘서 고마워요.”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서 준호의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러 온 게 아니었다. 일상이 회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 작은 천막 가게는 그들에게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어서 오세요! 싱싱한 배추 있습니다!”
“Hello! Fresh fruits here!”
​준호는 한국어로, 말릭은 영어로, 지현은 스페인어로 손님을 맞았다.
천막 안은 금세 시끌벅적한 활기로 가득 찼다.
​준호는 계산대(라고 해봐야 나무 상자 위였지만) 너머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번듯한 건물도, 에어컨도, 자동문도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게’다웠다.
​물건과 돈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과 안부가 오가는 곳.
준호는 비로소 깨달았다.
불에 탄 것은 건물일 뿐, 내가 지난 10년 동안 쌓아올린 진짜 자산인 ‘사람들’은 타지 않았다는 것을.
​“말릭! 거기 사과 상자 좀 더 가져와!”
“On it, Boss! (갑니다, 사장님!)”
​준호의 외침에 말릭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폐허 위로, 다시 삶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 화, 최종회에서 계속)



​[작가 노트]
​폐허 위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은 '잡초'라고 하죠. 잡초는 밟혀도 죽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립니다.
이민자들의 삶도 잡초와 닮았습니다. 시스템이 버리고 자본이 외면해도,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흙 삼아 다시 일어섭니다.
​11화는 웅장한 재건이 아니라, 초라하지만 단단한 '생활의 복구'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닌, 펄럭이는 천막 아래서 오히려 더 빛나는 인간애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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