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거리의 사람들

06화. 옥상 위의 아버지들

by SW

제6화는 평범한 이웃들이 총을 들어야 했던 비극적인 밤, '루프 코리안(Roof Koreans)'의 본격적인 방어전을 다룹니다.


---------------------------------
​“사격 중지! 아직 쏘지 마!”
​옥상 위,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확성기를 찢고 나왔다.
준호는 모래주머니 뒤에 몸을 숨긴 채 38구경 권총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밴 땀 때문에 총 자루가 미끌거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러뜨릴 듯이 뛰었다.
​광장 입구로 낡은 픽업트럭 세 대가 굉음을 내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는 복면을 쓴 남자들이 가득했다. 그들의 손에도 쇠파이프뿐만 아니라 샷건과 권총이 들려 있었다.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조명탄 쏴!”
​피유우우웅- 펑!
​하얀 섬광이 밤하늘을 갈랐다. 대낮처럼 밝아진 시야 속에서, 트럭들이 급제동하며 멈춰 섰다.
​“Get out! Loot everything!”
(나와! 싹 다 털어!)
​트럭에서 내린 폭도들이 고함을 지르며 진입을 시도했다. 그들은 이곳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경찰도 도망간 도시에 남겨진, 겁 많은 동양인 가게 주인들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이곳 옥상에 있는 남자들은 평범한 세탁소 주인, 식료품점 사장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은 몇 년 전까지 군복을 입고 전방을 지키던 예비역들이었다.
​“위협 사격 개시! 사람 맞히지 말고 바닥에 쏴! 일제 사격!”
​지휘를 맡은 예비군 모자의 중년 사내가 손을 내리저었다.
​타탕! 탕! 타다당!
​수십 발의 총성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고막을 때리는 진짜 총성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총알이 박히며 불꽃이 튀었다.
​폭도들의 발앞에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그들은 기겁하며 트럭 뒤로 몸을 숨겼다.
​“What the f...?! They have guns!”
(젠장! 저 놈들 총이 있어!)
​폭도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그들이 원한 건 손쉬운 약탈이지, 목숨을 건 전쟁이 아니었다.
​준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지만, 차마 당기지는 못했다.
옆에 있던 쌀가게 김 씨 아저씨가 능숙하게 엽총의 탄피를 갈아 끼우며 중얼거렸다.
​“미치겠구만... 월남전 때도 안 쏴본 총을 LA 한복판에서 쏘게 될 줄이야.”
​그의 얼굴은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었지만, 눈빛만은 매서웠다. 내 가족, 내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가장의 본능이 공포를 누르고 있었다.
​교전은 짧고 강렬했다.
하지만 물러가던 폭도 중 하나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질렀다.
​“불질러 버려!”
​어둠 속에서 불붙은 병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화염병이었다.
병은 바리케이드로 쌓아둔 목재 팔레트 위에 떨어졌다.
​콰앙!
​순식간에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야! 불 꺼!”
​사람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길은 바람을 타고 주차된 차량 쪽으로 번지려 하고 있었다. 차량 연료통에 불이 붙으면 연쇄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림자처럼 튀어 나갔다.
말릭이었다.
​“말릭! 안 돼! 위험해!”
​지현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말릭은 주저 없이 불길 옆에 쌓여 있던 모래 포대를 집어 들었다. 깡마른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는 무거운 포대를 찢어 불길 위로 들이부었다.
​“흙 덮어요! 물은 안 돼요!”
​말릭이 영어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멍하니 있던 준호가 정신을 차렸다.
​“도와줘! 모래 가져와!”
​준호가 뛰쳐나가 말릭 옆에서 모래를 퍼부었다. 다른 사람들도 합세했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찔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말릭의 후드티 소매에 불이 옮겨붙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으로 불씨를 덮었다.
​몇 분간의 사투 끝에 불길이 잡혔다.
폭도들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하아... 하아...”
​검댕 투성이가 된 말릭이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금 전까지 그를 ‘스파이’라고 몰아세웠던 험악한 인상의 청년들이었다.
​배트를 들었던 청년이 쭈뼛거리며 말릭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수통을 내밀었다.
​“...마셔.”
​말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청년을 쳐다보았다. 청년은 쑥스러운 듯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너 아니었으면 차 다 터질 뻔했다. ...고맙다.”
​말릭은 수통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물줄기가 턱을 타고 흘러내려 검댕 묻은 목을 씻어냈다.
​준호는 그 광경을 보며 쥐고 있던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총성이 멈춘 옥상 위로, 처음으로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더 이상 적대감 섞인 침묵이 아니었다.
​피부색도, 언어도 달랐지만,
오늘 밤 우리는 모두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저씨.”
​말릭이 숨을 고르며 준호를 불렀다.
​“왜 그러냐, 말릭.”
“저... 한국말 하나 배웠어요.”
“뭔데?”
“...우리(Woori).”
​말릭의 서툰 발음에 쌀가게 김 씨 아저씨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지옥 같은 밤, 화약 냄새 진동하는 옥상 위에서 터져 나온 엉뚱하고도 서글픈 웃음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웃을 수 없었다.
멀리서 또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경찰차가 아니었다. 소방차였다.
그러나 그 소방차마저 이곳으로 오지 않고, 저 멀리 할리우드 방향으로 꺾어지고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 이 작은 옥상 위에서만큼은 서로가 서로의 등을 지켜주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작가 노트]
​당시 언론은 한인들을 '자경단(Vigilantes)'이라 부르며 총을 든 폭력적인 이미지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훈련받은 살인 병기가 아니라, 평생 일궈온 터전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절박한 아버지들이었습니다.
​6화에서는 그 절박함 속에서 피어난 말릭과의 진정한 화해를 그렸습니다. '우리(We)'라는 단어는 한국 문화에서 매우 독특하고 폐쇄적인 울타리를 뜻하지만, 재난 속에서 그 울타리가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불타는 거리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