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무

by 정원선

멀다는 것과 나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나무는 조금만 멀어지면

꽃이나 나뭇잎을 떨구고

잊어버린다


새가 날아와도 잊어버리고,

새집이 생겨 식솔이 많아져도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속성은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잠자코 앉아 바라볼 뿐,

나무는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


자기의 그림자 범위 안에서

상상하고 춤을 추고,

갈등하고 반성한다

나무의 세계에서는 반성한다는 말이

번성한다는 말로도 통한다


나무도

여유롭게 호기를 부려본다

경이로움은 먼데 있는 게 아니라는 듯 -

절벽에서 피어난 철쭉꽃도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듯 -


파도는 나무의 속마음을 모른다

나무는

열매나 꽃에도 알려주지 않는다


바닷속에는 풍경이 없다는 말도

물고기에는

쓸쓸한 물고기만 있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좋은 노래는 다 거짓말로 때깔을 부린다


바닷속에 뛰어든 햇빛이 다정해질 때쯤이면

곱게 노을이 진다

그럴 때

갈매기가 바다 위로 홀로 내려앉으면

수평선 위로

나무 한 그루가 품위 있게 자라난다


바다와 나무와

물고기는

갈매기 날개만큼의 거리를 두고,

쓸쓸하면서도

다정스럽게 속삭이며

하루를 살아간다


서로, 라는 말이

미련 때문에

속세를 떠나지 못하는 데는 사정이 있는가 보다


먼 나무에도 이제

열매가

붉게 물들어가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