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리고 재즈
요즘 들어 새로운 꿈이 생겼다. 기타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며 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어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관객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전엔 없던 꿈이다. 이전까지의 난 오로지 나의 감정을 눌러 담은 곡들을 쓰고 싶었고,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가 없을지라도 가슴 한구석에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솔로 연주자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며 에너지를 쏟아내는 재즈 뮤지션들이 너무나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내가 축구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재즈는 같은 곡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연주하더라도 같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 이는 매번 같은 경기가 나올 수 없는 축구와도 같다. 그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이 바로 재즈의, 축구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그루브, 뉘앙스, 간격 등 수많은 요인들은 연주에 큰 영향을 준다. 마치 축구 선수들의 다양한 특성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그리고 연주자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늘 다르게 나오는 즉흥연주는 마치 경기장 위에서 반사적으로 뛰고 있는 축구 선수의 움직임과 매우 비슷하다. 공이 나에게 왔을 때, 그 찰나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펼쳐지듯이 연주 중 나에게 주어진 마디,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의 분위기가 좌우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패스를 하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슛을 날려 성공하는 선수의 모습은 짜릿할 만큼 멋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경기'라는 것이 정해져있지만 수도 없이 많은 훈련을 통해 그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기 때문이다. 능숙한 재즈 연주자가 멋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오던 음악을 운동과 비교하자면 바로 마라톤이다. 누군가와의 합보다는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 중요한 종목이며, 이것만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솔로 연주자로서 나만의 곡을 쓰고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내 모습은 마치 마라토너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은 결국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구나 싶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경기장을 장악하는 축구 선수를, 관객들을 사로잡는 재즈 연주자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무대를 장악하는 재즈 연주자나, 경기장을 뒤흔들며 박수갈채를 받는 축구 선수나 결국 그들의 인생을 길게 보면 마라톤이다. 그리고 음악 속에서 고민하고, 또 노력하며, 무너지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내 인생도 마라톤이다. 나는 어떤 길에서 뛰고 있던지 늘 항상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찰나의 순간들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마라토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소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