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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말레이시아, 페낭.

초등학생 두 명을 데리고 진짜로 와버렸다. 하이! 말레이시아, 페낭.

그때부터였나 보다.

교육에 하나도 관심이 없던 남편이 열정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던 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해야 할까?
'맹모 삼천지교'라고 해야 할까?


분당에서 카페 한 지 5년 차.

남편이 교육에 더 열정이 많아졌다.


아이들을 위해 유아전집을 살 때도, 아직 애가 읽지도 못하는데 그걸 왜 사냐고 했던 그 남편 맞나 싶다.


카페를 같이 했지만 거의 모든 일은 남편이 했다.

학교 앞 카페 + 학원 상가이기에 아이들 학원 보내고 기다리는 엄마들의 방앗간 같은 존재였다.


이사를 올까 하다가도 사실 분당이라는 곳의 높은 교육열에 움찔했던 게 사실이다. 

내가 여기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하루종일 카페에 있던 남편은 퇴근 후 맥주 한잔을 하며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고 있었다. 

일하면 옆에서 들리는 엄마들의 교육정보들,
카페에서 외국인과 아이가 영어로 이야기하는 상황들..


사실 남편의 친척 중에는 미국에서 사는 친척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언어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신혼여행 말고는 외국에 가본 적 없는 남편이었기에 더 궁금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카페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는 날, 남편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 애들하고 외국에서 사는 거 진짜 해볼래?


20대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던 나는 결혼하고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끔 비췄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 그래, 근데 어디로 어떻게? "


나의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남편은 카페일이 끝나면 남편은 혼자 필리핀, 밀레이시아, 캐나다 , 호주 등 여러 이민국가를 찾아보았고 그중 우리의 상황에서 갈 수 있는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


동남아로 이민을 간다는 것에 두려움반 호기심반.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격이기에, 일단은 진행하기로 했다. 


이민 이야기기가 나오고 한 달도 되지 않아 MM2H회사를 선택해서 비자를 진행하였고 말레이시아에 MM2H비자를 받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가는 한 달 동안 우리는 서로의 희망 거주지를 비교분석 하기로 했다.


남편 :  조호바로  VS  아내 : 페낭


남편이 원했던 조호바루, 내가 원했던 페낭의 학교를 보러 가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여정은 한 달 : 조호바루 10일 - 쿠알라룸푸르 3일 - 페낭 10일 - 랑카위 3일- 코타키나발루 3일 - 태국 3일 

2020년 2월 그렇게 한 달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내고 비자를 받아서 들어왔다. 


어디가 나을까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두 군데를 다 가보라는 말은 건네고 싶다.

조호바루에서 10일, 페낭에서 10일 을 지냈고 그 후에도 남편은 조호바루를, 나는 페낭을 택했다. 




모든 여행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정하고 입학서류를 제출하니 웨이팅이 2년이라고 했다.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으로 다시 열심히 일하자며 웨이팅을 걸고 기다리는데 , 5월 즈음 갑자기 연락이 왔다.

9월 입학 가능하니 인터뷰 볼 수 있다고...


말레이시아 - 한국 줌으로 30분 동안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고, 아이들의 테스트도 보았다.

테스트 + 인터뷰 통과 - 그리고 입학준비가 시작되었다. 


Covid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빠졌나 보다.

Covid 때문에 2년 웨이팅이 6개월로 짧아졌다.


2020년 9월 입학하려고 7월 입국을 준비했으나,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1월 입학도 다시 4월 입학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보류는 한 번뿐.. 1월 입학으로 오지 안 오면 탈락이 된다 하여 12월 입국준비를 진행했다.


갑작스러운 말레이시아 입국소식에 준비가 안된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나와 아이들만 말레이시아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제일 심했던 2020년 12월,

MM2H비자와 국제학교 입학원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어느 날, 남편이 아닌 내가 원했던 페낭으로

나라마다 락다운에 2주라는 격리기간을 거쳐야 입국할 수 있는 제일 심각한 해에 나는 아이들과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그래서 나의 정착지는 페낭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가장 멀지만, 여행하며 아이들이 좋아했던 곳, 학교투어에서도 아이들이 제일가고 싶어 했던 페낭,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제일 편안했던 페낭. 페낭 안녕?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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