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애였는데. 원래 이런 애라는 걸 알았는데.
주의: 내용이 다소 우울하고 자조적이고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좀 모난 구석이 있던 애였다. 그에 살짝 거리 두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 속에서 우린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저번엔 꽤나 의지하기도 했었다. 근데 그러다가 오늘처럼, 그의 모난 구석에서 비롯된 사건이 터지고 마면. "아 맞다, 원래 이런 애였지" 하고 마는 거다. 편견? 선입견? 그런 건 있어야 된다. 날 지키기 위해서. 아, 처음처럼 너무 마음 주지 말 걸. 편견, 선입견, 그런 건 있어야 한다.
난 나랑 안 맞는 사람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리고 끝은 늘 실패뿐이었다. 선을 잘 지켜야 되는데, 그런 어른은 많지 않다. 특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선, 살짝 넘은 선에도 혈압이 올라 터질 것 같다. 물론 나는 화를 내진 않았지만, 또 마음속으로 손절을 하고 말았다. 어째 요새 잘 지내나 했다. 믿었던 내가 바보지.
마음이 다쳤다. 상처를 받았다. 근데 뭐 어떻게 할까. 이해를 시킬까, 아님 사과를 받을까.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엔 그냥 화를 내고 싸웠는데, 지금은 그냥 입을 닫고 화를 참는다. 싸울수록 적만 생기고, 적이 많은 건 위허하더라. 그래서 그냥 속으로 꾹 참고 마음속으로 손절을 한다.
그냥 좀 상처를 안 받고 싶다. 왜 맨날 실망할까. 왜 맨날 기대해서. 예민해지지 않겠다, 자책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 말 하나에 기분이 좌우되지 않겠다, 그렇게 되겠다고 요즘 많이 노력했는데. 원래 걔가 그런 애인 걸 알았는데.
난 사람을 너무 잘 읽는다. 단점을 다 안다. 피하고 다른 얘기만 하려고 했다. 우리의 공통적인 부분만 다루려 했다. 본능적으로 안다. 다른 가치관에 대해 절대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예상하지 못하기에. 사람들과 일어나는 일은 내 마음대로 안 되기에. 내 말에 왜 대체 그딴 반응이 나온 걸까? 응? 응?...
내가 이렇게 상처를 받은 것조차 걔는 모를 거다. 그러니 무심한 그 말을 뱉었겠지. 대부분 그렇다. 날 상처 준 사람들한테 내가 화내면, 화를 낸 내가 예민한 사람 취급되고, 넘어가면 아무것도 모른다. 난 그냥 피하기밖에 못한다. 어떻게 화를 안 내고 대화로 잘 화해하는지도 모르겠고.
원래 내가 싫어하던 그 사람의 단점이었고, 애초부터 나랑 안 맞는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설득도, 이해도 안 될 거다. 적당한 사과는 나올지언정. 그럼 난 무기력하잖아. 다름에서 온 상천데, 결국 다름이 좁혀지진 않을 거잖아.
역시 사랑은 불행하다. 사랑은 아프다. 아플 것 같아서 시작도 못하고. 하면서도 눈치를 봐서 온전히 즐기지도 못한다. 내가 뭘 좋아하면 그것들이 날 더 섬세하게 행복하게 해 줄 거라며. 근데 나는 너무 아픈데.
내가 인간관계를 너무 좋아한다. 난 인간을 사랑한다고. 오늘의 불행은 그거다. 내가 친구들한테 마음을 또 너무 많이 줬고, 맨날맨날 자기 방어를 세우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정말 많이 벽치고 가려가며 만났는데 왜 결국 이모양인 거야. 다 연 끊을 거야. 타인이잖아. 완벽한 내 편은 없어. 어떻게 늘 내 말에 동의해 주고 내 생각대로 말해주겠어? 근데 적어도 날은 세우지 말아야지. 멍청해. 아, 지금 나도 날세 우지? 나도 멍청하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정말 부드럽게 물어본다. '근데 정말 너 말에 태클을 걸려는 건 아니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너 의견은 존중해'라고 한다. 근데 이건 민감한 주제에서 격식을 차린 상대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거지. 그 사람이라고 일상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건 아닐 테다. 그럼 일상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무심함에 상처를 받는 건 그냥 필연이네? 필연이네.
23:32-23:55, 2025-05-05-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