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누군가는 보는구나. 그렇게 내게 응원을 건네기도 하는구나.
오늘은 반드시 글을 쓸 것이다.
주제가 뭐가 될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개의치 않기로.
오늘은 좋아하는 언니를 만났다.
삭막하기 그지없이 메마른,
약속 없는 일상 속에 적응해 나갈 쯔음,
찾아와 내린 단비.
시작은 예전에 친구들이 우르르 군대 갔을 때, 인편으로 썼던 연재글.
그때 좀 웃긴 에세이를 썼었다. 재밌는 문체로.
설명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호들갑 떨며 길게 끌어갔던 글이랄까.
단톡방에서 인기가 좀 좋았다.
내심 그런 진지한 칭찬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선,
안 그래도 어디 가서 처음 얘기하는데, 사실 브런치를 개설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 이후엔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블로그도 조금 끄적였었으니,
언니는 내 글을 좀 더 보게 된 셈이다.
"그런 완결된 글이 좋아, 내가 못 하는 거라서. 딱 구성이 있고."
"나 완결 안 되는데? 그냥 쓰다가 말고 아, 오늘은 끝! 이러는데. 구성도 없는데."
"그래도.. 그것도 그거대로 좋아."
"음, 나는 그냥 딱 내 성격대로 쓰니까. 그게 담겨 있지. 흠, 신기하네."
완결이 잘 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발행은 마쳐진 나의 글들.
나는 그조차도 내 성격이라 생각하기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기에 오늘도 주제 없이 시작해서 이 글을 써내려 나간다.
언니는 내 글을 꽤나 즐겁게 읽고선 어느새 밍잘알이 되어있었다.
글 속에 담긴 나의 모습을 완벽히 숙지해 버린 그녀.
단둘만의 만남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꼽을 만큼,
분명 그리 많은 횟수를 만나지는 않았음에도.
언니는 어느새 나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 글을 통해서.
그런 기분은 묘했다.
내가 이 얘기를 했었던가.
아, 글에서 했던가.
그렇게 꼼꼼히 읽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비록 좀처럼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읽은 사람 수만 조용히 올라가는 블로그란 공간에서도.
내 글을 누군가는 보는구나.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구나.
그리고 내 글을 즐기는구나.
그렇게 내게 응원을 보내기도 하는구나.
곧 환경이 바뀔 예정이어서 소재도 다양해질 예정이라, 이런 응원도 받아본다.
"그때 돼서 거기 가면 글 올려줘."
"응, 안 그래도 나도 그때 되면 진짜 1일 1 글 할까 생각했었어.
아, 그러고 보니 올해엔 2주에 글 하나 쓰기, 그런 목표도 있었는데, 하하.
혼자 쓰는 일기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걸 어딘가에 게재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 진짜 좀 올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올렸어, 제주도 간 것도, 여수 간 것도, 전주 간 것도!"
"그래, 좀 올려! 혼자 꽁꽁 숨겨두지 말고!"
한 소리도 들어보고.
"원고는 많은데."
"아 진짜?"
"응, 2021년 치부터 쌓여있어."
이 공간에 대한 반성도 함께.
당시 브런치를 개설했을 땐,
꾸준히 해보겠단 마음가짐과 동기부여가 최대였다.
그러나 개설과 겹쳐버린 나의 인생에 찾아와 버린,
어떠한 폭풍우.
한없이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나의 운영계획도 함께 처참히 날아가버렸고.
"그때 진짜 잘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그때 진짜 좌절했었어.
그 일에 대해서밖에 글을 못 쓰겠더라고.
나에 대해서 다른 것들은 못 쓰고."
힘든 시기를 돌아보며,
눈동자에 차오르는 눈물 비스무리한 것도 조금 훔쳐보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샤워하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대화했던 주제들 잠깐 복기하고,
언니한테 오늘 재밌었다며,
일기를 꼭 쓰고 자겠단 인사도 마친 후.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을 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좋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이 약속이 끝난 후 즐거웠던 대화를 복기하는 시간도
좋다.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도
좋다.
마침.
2025-07-04 02:28-02:59-03:22(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