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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결국 결말은 사랑일거야. 사랑을 마지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by 흩나

친구들을 거의 안 만나며 외로움에 몸서리 친지 꽤 되어간다.

이제는 슬슬 적응해볼 마음도 든다.


처음엔 이리저리 외부의 것들에 휩쓸리다가, 요즘엔 다행히도 다시 내면에 집중해보게 됐다.

그러한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더 깊게 빠져있고 싶기에. 요즘 근황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


내 안의 내 세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끝도 없이 탐색한다.

헤엄치고 빠지고 헤아리고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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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오글거리는 남의 일기 속 감성적 문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점차 그것들을 닮아가고 있는 걸 보면, 잘 쓰여진 문학에 역시 위로를 많이 받아왔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감히 감성적인 것들을 좋아하게 된다.

사실 오래 전부터 그래왔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인정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잘 사먹지도, 친구들이랑 가는 거 외에는 잘 가지도 않지만. 여전히 비싸다고 툴툴대면서도,

"저도 감성카페 좋아해요~!"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사실 커피와 카페에 대한 애정보다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지만.

예쁜 공간이 좋아서. 향긋한 향이 좋아서. 작게 들리는 소음과 적당한 생동감 또한.


이건 정말 어디에 꺼내보이지 않은 나만의 비밀 취향인데.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축구하는 아이들의 소음을 좋아했다.

1층 교실 창문으로 들으면 딱 적당한 거리였다.

조용한 교실에서 창밖의 그 소음을 듣는 걸 좋아했다.

친구랑 수다떨며 운동장을 빙빙 돌던 그 시절의 산책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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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책벌레였다. 아침자습시간, 점심시간, 쉬는시간에도, 주말에도, 책을 읽었다.

비록 초등학교 졸업 후 어릴 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소설이란 사랑하는 취미를 잃었지만.

그러렇게 보면 돌고돌아 그에 대한 갈망이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것으로 뻗어나가는 건 그닥 신기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요즘 이것들에 대한 중독을 고민하다가, 이를 감히 중독이 아닌 사랑으로 정의해보기로 했다.

나는 아무래도 문학을 사랑하나보다. 없이는 안되나보다.


심미성이라는 단어를 몇 해 전부터 마음 속에 점찍어놨다.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이야기하며 걷다가 얘기가 길어져서 "데려다줄게, 노을이 예쁘니까."라는 말을 했었는데, 의외라는 반응을 받았었다.

가끔 별이 예쁘다는 말을 해도 종종 그런 말을 들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성격이니 이해한다.

이런 답을 했었다. "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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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난 녹음, 그러니까 초록빛 숲을 좋아한다.

창밖을 보며 "우와아- 예쁘다아. 전 풀을 좋아하거든요."라는 말을 했을 땐 "난 당연히 파란 하늘이 예쁘다는 줄 알았는데, 풀이었어? ㅋㅋㅋㅋ"라는 웃음기 적신 말을 들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 차를 타고 도착한 전망 좋은 카페에서 통창으로 푸른 산을 바라봤던 날 또한 아주 아름답고 선명히 남아있다.

그럼 난 자연을 사랑하나보다.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름다워할 줄 아는 사람이란다.

무한히 고정된 시선과 작게 내뱉는 감탄사. 그 속에서 느끼는 해방감. 아름다움에 대한 탄식. 자유로움. 감정의 파동. 설레는 마음.

어느 순간 하나도 아름다운 시간이 아닐 리 없다.



그래서 돌고돌아 예술가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들의 깊이에 오글거린단 말을 더이상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나 또한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창작을 더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가까이 하고 싶다.

내가 만든 무언가를 세계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싶다.

그건 내 세상을 열어보인다는 것이라, 나만의 공간과 경계가 뚜렷하고 싶은 나에겐 다소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것에 손가락질 당할 구석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진지함과 깊이를 폄하할 순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웃을 지언정, 누군가는 손 내밀 것이다.



이성적인 편이고, 때론 공감능력이 없다는 소릴 듣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민상담에 따스한 문장보단 둥근 말투로 포장한 악의없지만 다소 뾰족한 말을 뱉어내는 경우도 다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사실 혼자 있을 땐 책을 보며, 영화를 보며,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꽤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편이라.

혼란하기도 하였다. 이성적인 사람일까, 감성적인 사람일까. 그 사이에서.

하지만 이것은 결코 단순한 편가르기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분명한 건 내가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섬세하게 사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애정을 듬뿍 담아 사랑하고 싶은 걸 사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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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내 예술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지 마지 않는 것은, 내 주변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 정도로, 음악이다.

음악에 대해선 꽤나 오래전부터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발해왔다.

물론 친구들에겐 좋아하는 거라고 표현해왔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사랑이었다.

새카만 방 안에서 조명 하나 없이 홀로 음악을 듣는 순간, 그 순간의 다채로운 감정의 물결의 향연은, 형용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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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당히 하고 마무리하려 했는데, 사랑하는 것에 대해 쓰자니 글을 끝내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도통 끝낼 수가 없어졌다.


내가 특별히 독특하게 좋아하는 것은 정적과 암흑이다.

힘들 땐 방의 불을 아예 켜지 않곤 한다.

새카맣게 깜깜한 그 암흑은 내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곤 한다.

바스락소리나 웅웅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온연한 정적을 사랑한다.

이따끔씩 먼 바깥에서 나는 엔진 소리는 상관 없다.

정적인 공간에서 나는 평온함을 넘어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로움.

혼자있는 걸 이렇게나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모순에 대해서는 더이상 짚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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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색 조명으로 감싸진 그 공간의 빛을 사랑한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커튼이 있던 2층 침대의 좁은 공간에서, 그 조명은 나에게 따스함이 되어줬다.

실수투성이였던 혼자만의 여행의 첫날밤, 나는 그 속에서 힘을 내어 일기장을 꺼내 일기를 썼다.

그리곤 무기력하던 몸을 일으켜 밥을 먹으러 나갔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얼마 후 조명을 샀다.


글쓰는 걸 좋아한다는 건 물론 더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묘사해보고 싶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시간을.

깜깜한 방에서 촛불같은 조명을 어둡게 켜올리고,

내 예쁜 스피커를 통해 공간을 음악으로 가득 매워버린 다음,

글을 쓴다.

남들에게 쉽게 일기라 칭하곤 하지만, 사실 난 글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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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은 대체로 추상적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완벽하게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기엔, 어렵다.

종종 나의 인간관계 상담에서, "자세히 말을 좀 해봐, 예시가 있어? 사례가 있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추상적인 대화만큼 아름다운 게 없잖아?

사실 일상적인 대화에선 정말 솔직하고 정직한 편이기에 이 또한 내가 가진 공존.


사람들은 어느 쪽 하나에 기울어져 있길 선호한다고 했다. 정의하기도 평가하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순도 어려울 것도 깊어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면만 보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나는 복잡한 사람이고, 그 복잡성은 나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모순, 아이러니.. 그렇게 칭하지 않겠다. 공존. 다면. 유연함. 그런 것들이다.

그래도, "말 뒤집는 속도가 고기 뒤집는 속도보다 빠르네!"라는 문장은 그 재치로움에 반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사실 바로 아침까지도 '왜 사랑은 고통일까', '예술가들의 비애인가?'라는 생각 따위 했었다.

감정은 시시각각이라. 불과 어젯밤, 오늘 아침까지도 힘들어했다가도 오늘 밤은 행복해하는 내가, 누군가에겐 다소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덕이 아니라, 그저 물결이고 흐름, 그리고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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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사랑은 그 모든 무수한 고민을 이길 것이다.

지금처럼.

결국 돌고 돌아, 멀리 돌아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을 마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처럼.

결말은 결국 사랑일거야.


글을 쓰며 사유에 젖어 그 속에서 고통스러움 또한 있지만,

엄청 오랜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하고 적고 그러다보니, 좋아졌다.

이제 비로서 나로 돌아왔다.

글을 행복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눈물 젖은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던 나로 돌아왔다.

그래, 이거였다, 내가 사랑하던 글쓰기 시간은.

오늘 밤은 행복하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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