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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우리 이야기를 네가 알게 된대도

내 브런치를 지인들이 알게 되면 어떨까?

by 흩나


약속이 줄어들자

지난 약속을 곱씹고 지낸다



약속이 있었던 날이면 나눴던 대화에 대한 기록을 해두는 편이다. 만남이란 시간이 휘발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 의미를 만들어두기 위해서도 있지만, 실은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친구를 덜 만나게 되었다. 단순히 만남을 늘린다고 해서 채워질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만남의 질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나'가 아닌, 내가 만나고 싶은, 좋아하는 이들과의 만남이어야 한다.


그래서 만남이 줄어듦에 적응해보고자 했다. 좀 더 나에게 집중해보자 싶었다. 그러나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남과 대화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누굴 만나고 오면 여전히 너무 좋았고 더 많은 만남을 갖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 만남을 복기하면서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기록으로 끝나는 '일기'의 관점이었다면, 지금은 훨씬 더 깊게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약속이 없다면, 지난번의 약속을 곱씹기라도 해 보자. 곱씹어 체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만남을 글감으로 써먹기까지 하겠다는. 만남의 갈망을 이런 식으로라도 해소해보고자 하는 다소 발칙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친구와의 약속이 컨텐츠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화를 어떤 글로 풀어 쓸지 흥분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과 진솔했던 대화를 내가 이용해 먹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든다.




오늘은 내가 브런치 글을 쓰면서 하는 고민들에 대해 적어본다. 내 브런치를 지인들이 알게 되면 나는 괜찮은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닌지, 글을 너무 두루뭉실하게 쓰는 건 아닌지, 그래서 브런치를 공개할 생각이 있는지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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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인 줄

알겠지?



“경험 바탕으로 글을 쓰거나 가사를 쓰거나 하게 되면 당사자들이 자기 얘기인 줄 알겠지?”


“음, 아마 당사자라면 자기 얘기인 줄 알겠지.

심지어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혹시 이거 난가?’하고 몰입할 수도 있고."


“헉, 이별 직후 노래 가사가 다 내 얘기로 느껴지는 것처럼?

하긴, 사람이 원래 도끼병이란 것도 있고, 착각 쩌는 동물이니까.”


"ㅋㅋㅋㅋㅋㅋ 그렇게까지?"


그래, 사실 자신의 이야기임을 모를 리가 없다. 알 거다, 분명.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데 자신의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정말이지 피곤할 것이다.

'이거 내 이야기 아니야? 왜 함부로 이런 글 써? 기분 나쁘게.'
'어..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이거 너 이야기 진짜 진짜 아니야...'
'들켰다고 거짓말하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네. 내가 모를 것 같애?'
'아니, 진짜 너 이야기 아니라니까...(억울)'




그렇다면 아마, 최대한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 분명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두루뭉실 서술한다 해도 공간과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하고 싶으니까.






네가 알게 된다면

나는 괜찮나?



“그럼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인지 알아도 너는 괜찮은 거야?


“글을 통해서 내가 그를 좋아했거나 싫어했다는 걸 알게 될 거고. 그렇다면 일단 부정적인 글의 당사자들은 당연히 절대 알아선 안되고. 긍정적인 글의 당사자들은... 내가 소중히 아끼는 사람인만큼 나를 잘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 괜찮을 것도 같은데.


그래도 혹시나 소재로 쓰이는 게 불쾌하진 않을까에 대해 걱정이 있지.”


"자신과의 추억을 소중히 생각해 주고 그걸 네가 글로 잘 표현해 줘서 반짝반짝 빛나게 남게 됨에 고마워할 거야.”


“그러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말이지. ‘설마 얘 나 좋아했나?’ 싶어서 당황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그 순간이 좋았던 거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까진 아닌데, 요즘 내 글은 그런 ‘좋아함’에 대한 감성을 담고 싶어 해서 더 과하게 느껴질 순 있을 듯.


“네가 그 순간 그 정도의 감정까지 느낀 거라면. 싱대도 이미 그때에 너랑 비슷한 무언가를 함께 느끼지 않았을까? 너 글을 보고 '아, 나도 그때 몽글몽글했었는데, 얘도 나랑 비슷했구나.' 하는 거지.”


“와 그렇겠다 내가 걔를, 그때를, 그때에도 좋아했더라면, 분명 상대 또한 느꼈을 거야. 우리와 그때의 각별함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있는 거야?



그럼 상대가 글쓴이가 너이고 이게 우리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 아예 없다면 거짓말일까?

음, 그래도 나는 그저 ‘우리의 그 시간을 내가 이렇게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상대가 ‘얘 혹시 날 좋아했었나?’하고 당황스럽거나 부담스럽게 하려는 건 절대 아니야.”


“그렇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네 말처럼 읽는 사람이 자신이 소재가 되었단 게 불쾌할지, 싫어하는 사람이 설마 나인가 싶어서 짜증 날지, 얘가 설마 날 좋아했나 싶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울지... 그런 반응을 하나하나 다 예상할 순 없잖아.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라.. 그럼 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결과라는 거네. 그 말 안심된다.”


원래 걱정이란 게 그렇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하는 거지.”


“그래, 그냥 내 의도가 잘 담긴다면 분명 잘 전해질 수 있을 거야. 그냥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우리의 좋았던 찰나를 적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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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우리의

좋았던 찰나를 적을게.











글을 너무
두루뭉실하게 쓰나...



“난 오히려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서술하다 보니까 독자들이 상황 이해 못 할까 싶어서 고민이기도 해. 원체 그렇게 두루뭉실하고 비밀스럽게 쓰는 걸 좋아하거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분위기나 감정은 충분히 전해져. 네가 의도하는 바도 그렇지 않아? 상대가 누구였고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까지 밝히지 않더라도 그때의 각별한 감정을 나누고 싶은 거잖아. 네 글의 초점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상황 나열보단 분위기 묘사와 그 속에 담긴 너의 감정이라는 거고.


오히려 모호함 속에서 자기만의 경험을 투영하게 되는 게 문학이나 가사의 힘이지.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서술도 매력적이고.


“맞네.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여백이 있는 글도 좋으니까.”






아,

그냥 전부

예술가의 숙명이려나...



"그렇겠지. 예술가는 자기감정, 기억, 관계를 재료로 쓰니까. 진짜 이야기를 예술로 가공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개인의 비밀이 아니라 ‘공유된 감정’이지.”


“몰랐어. 왜 항상 사랑 노래만 많고 전 애인 얘기를 쓰고 짝사랑 얘기를 쓰고 자기가 성공한 얘기를 가사로 쓰는지.

근데 예술가들은 그냥 '자기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나도 마찬가지로 그저 내 얘기가 하고 싶어. 내가 느낀 것들, 나의 감정, 생각, 그때의 온도를 나의 언어로 공유하고 싶어. 정말 아름답기도, 정말 쓰라리기도 했으니까.”






브런치를 공개한 걸

후회한다던데.



이후 브런치를 지인들에게 공개한 걸 가장 후회한다는 글들을 몇 가지 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브런치 구독자를 늘릴 수 있나를 찾아보기 위해서 브런치의 검색창에 '브런치'라는 키워드를 입력해보았다가 보게 된 글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지인들에게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자랑도 약간은 하고 싶고, 관심도 약간은 받고 싶고, 구독자 수도 늘리고, 지인들 중 출판업을 하는 이의 눈에 띄어도 보고 싶고, 출간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지인에게 공개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응원과 격려도 해주고 '네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위로도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노출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글에서 완전무결하게 솔직함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는 엄청난 단점을 나누어주었다.






공개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브런치를 먼저 공개할 것 같지는 않다. 일기장에는 원래 남들 욕도 좀 있고, 내 자뻑도 있고 그런 거다.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이고 우울한 자신과, 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자신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이곳에 쓰는 내용은 조금 더 정제되고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 다듬어진 글들일뿐, 내가 남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는 쉽사리 하지 못하는 내 속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는 일기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사실,

알아줬으면 좋겠어.



얼마 전에 친구랑 한 대화에서도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아직까지 내 글을 공개할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나는.”
“...? 대체 뭘 쓰는 거야 ㅋㅋㅋㅋㅋ”
“그냥 뭐, 인간관계나 되게 비관적인 속마음들. 비밀이 많아, 내가 쫌.”

고백컨데 위 대화에 허점이 있다면, 저 말은 사실 모든 걸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단 말을 한 후였다는 점이다. (ㅎㅎ 머쓱;;) 그러니까 내가 언젠간 내 브런치를 공개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을 만난다면,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까?라는 무서운 (하나도 안 무서운) 이야기 ㅎㅎ



“뭔지 안다. 알아줬으면 좋겠고, 근데 몰랐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 공존하는 법이지.”




7/24 초고, 틈틈이 수정, 8/2 17:47 수정 완.

이미지: pinterest, 원본: twitter @caisimingart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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