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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마녀 Oct 27. 2024

앞에서 걷는 엄마, 뒤따라 오는 아들



어느덧 여행 마지막 날이다. 엄연히 따지면 1박 1일이 더 남아있지만 출국하는 날은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모든 방문과 구매는 이날 다 해결해야 했다. 일명 '리커버리 데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속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옵션 A는 지우펀에 다시 가기. 버스 투어하던 날 흐리고 비 오는 날씨로 인해 제대로 즐기지 못한 까닭인데,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움직일만한 적극성은 다 소진되어서 둘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꼭… 가고 싶어?" 다른 답변을 유도하는 '꼭'이 따라붙었으니 눈치껏 괜찮다고 답하는 아들. 그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출국 전 꼭 해야 할 일은 까르푸 쇼핑도, 진천미 방문도 아닌 박물관 재관람이었으니까.



사건은 이러했다. 국립 고궁 박물관을 다녀온 다음 날, 여행 카페에 올라온 누군가의 박물관 후기를 보고 아……… 하는 탄식을 멈출 수 없었다. 3충에 주요 볼거리가 다 있으니 3층부터 보고 내려오라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1층은 패스했는데,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보물이 1층에 있었던 거다! 아… 내 상아공! 아… 내 상아탑! 사실을 안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다시 가는 거 도슨트 투어를 신청할까, 목적 달성만 할까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의외는 첫째가 순순히 호응한 것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니 본인도 궁금하다,라는 것이 그의 논지인데,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던 점이 '내가 하자는 대로 안 하면 너희들이 별 수 있냐?' 싶은 아이들의 수동적 태도였다. 어느 집 아들은 해외 나오면 부모 대신 길 묻고 식당 찾는다던데…. 비교의 유혹을 차단하고 약간의 과일을 사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무리 상아공, 상아탑이 목적이라 해도 귀 막고 눈만 뜰 수 없으니 오디오 가이드 한 대 빌려서 106번 방으로 직진! 보물을 만나기 10분 전, 5분 전, 1분 전…. 그렇게나 고대했던 만남을 시시하게 끝낼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감탄과 웅성거림은 자체 소거하고 결정적 장면을 연출하듯 천천히 다가갔다.





꺄악. 방송에서만 보던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현재의 과학 기술로도 제작 비법을 알 수 없다는 전설의 유물답게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두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느 시대에, 누가 제작했는지에 관한 지식이 뭐가 중요할까 싶을 정도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 우아함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슬쩍 보고 지나가기엔, 사진만 찍고 이동하기엔 아까운 만남이 그곳에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용케도 아이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싶은 만큼 실컷 본 뒤, 어쩌면 오래도록 남았을 미련과 아쉬움을 오디오와 함께 반납하고 나왔다.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못했다. 무슨 오기인지 한국인들이 먹여살리는 식당은 가기 싫고, 철판구이 먹으러 한 번 더 가기엔 동선이 꼬이고. 그렇다고 오래 고민할 수도 없었다. 다음 일정 연구 차원에서 잠시 멈추거나 틈만 보이면 게임하는 빌런들이 눈에 밟혀서. 확신은 없지만, 아이들이 원했던 초밥을 먹으러 '삼인수산'으로 향했다. 사실, 이때만 생각하면 '미련한' '어리석은' '똥 멍청이' 같은 표현들이 자동으로 떠오르는데, 택시 타면 15분 만에 도착할 곳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나서도 한참을 걸어갔던 것이다. 세 명의 대중교통비를 합치면 택시비랑 엇비슷했을 것인데….





돈도 버는 사람이 더 벌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택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가끔 택시 러버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내 성격에는 절대 맞지 않는 일이야' 하고 선을 그었었는데, 그 선이 너무 깊고 넓어서 넘기가 쉽지 않은듯했다. 아무튼 있는 체력 없는 체력을 다 소진해가며 도착하니 '서서 먹어야 한다'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일본 스시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이끄는 곳이라 한들 초밥은 초밥인데,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서비스 차지까지 붙는 곳에서 서서 먹어야 한다고? 되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려서 주문을 하긴 했다만, 굳이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하는 후회와 회의는 나 혼자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서서 먹건 앉아서 먹건 입으로 들어가는 게 맛있으면 장땡인 녀석들. 다행히 '오늘의 초밥 세트'에 눈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엄마, 후회하지 마' '엄마의 선택이 옳았어'라고 응원해 주는 듯한 만족스러움을 드러내주었고, 정말이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불렀다. 아니, 힘들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예쁜 건 "엄마, 엄마도 좀 먹어" 하고 챙겨주는 둘째 아들의 말. 제가 아끼는 맛을 사수하느라 "엄마, 이것만 빼고 다 먹어"라고 말하는 아들 1호에 비해, 이럴 땐 아들 2호의 다정함이 사랑스러워서 힘들게 찾아온 수고로움이 싹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비슷한 조건에서 한국에서의 한 끼 식사와 비교해 가성비, 가심비는 떨어지지만, 아이들이 잘 먹었으니 이즈음이야. 호기롭게 카드를 꺼내는데 현금밖에 안 받는단다. 다행히 남아있는 돈이 있어 어글리 코리안이 되는 걸 피할 수 있었다만, 마지막 날 카드 안됨의 타격은 비교적 컸다. 그래서일까. 꼭 현금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다음 목적지까지 택시로 이동하기로 해놓고 또다시 '40분 도보 이동'의 테러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대만에서 하루에 10km는 걸었다'라고 동네 방방곡곡 떠들고 다닌다는 소식을 입수했는데, 어쩌면 사실에 가까웠을 터. 스스로도 '나 왜 이러고 있나'싶을 때가 많았으니 걷기는 진짜 많이 걸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히 따라와 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상태에서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디저트 가게에 도착했다. 푸진지에에 가면 반드시 들러볼 곳이라 하기에, 그보다 무료 시식을 할 수 있다 하기에 찾아간 곳인데, '아, 내가 또 무료에 낚였구나' '이보다 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렸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추가로 사서 먹자니 박스로만 구입 가능하고, 그렇다고 앉아서 쉬자니 돈 안 되는 손님들이고. 결국, 아이들에게 약속한 자유 시간을 어기고 2차 시식 장소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도대체 푸진지에가 어디지? 골목길마다 빼곡히 심어진 나무가 이 동네의 시그니처인가 했지만, 눈길을 끄는 상점도, 돌아다니는 사람도 드문 한적한 길가를 걸을수록 마지막 날을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초조함이 몰려왔다.





들쑥날쑥한 기분을 잠재운 건 역시나 달달한 먹거리.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고 그저 펑리수를 먹어볼 수 있다고 해서 간 건데, 입장하면 자리를 안내하고 인원수대로 펑리수와 차 세트를 내어주는 시스템에 살짝 놀랐더랬다. '이렇게 공짜로 준다고?' 단 하나 옥에 티가 있다면 바로 옆에서 동족 언어의 비극이 펼쳐쳤다는 것인데, 너무 소란스러워서 다른 자리로 옮길까 하다가 아예 불쑥 끼어들기도 했다. 아, 여기가 메인역에서 택시 타고 올 만큼 유명한 '썬메리'라는 가게였구나, 하는 것도 그때 알게 된 사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우습지. 남들이 부러 찾아온 곳에 나도 와봤으니 완전한 시간 낭비는 아니었단 생각에 한순간 마음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그래, 꼭 무언가를 보고, 겪고, 생산적이지 않으면 뭐 어때서.



아무리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칼을 꺼냈으면 파라도 썰고, 길 따라 흘러왔으면 푸진지에의 실체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걷다가 육상 트랙이 있는 작은 체육공원을 발견했는데, 평일 낮 시간임에도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우리 아이들의 생활 체육인 본능도 절로 깨어났나 보다. 서로 초 재기 경주를 했는데, 첫판에서 동생에서 자존심을 구긴 큰아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다시금 형의 기록을 깨기 위해 달리는 둘째 녀석의 승부 근성이 불타오를수록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연장되는 게 감사했다. 이토록 생기 넘치는 생명력이 내 곁에 살아 숨 쉰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자축할 일이 있었다. 여행 기간 내내 버스 타는 게 수월하지 않아서 지하철만 타고 다녔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구글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 타는 데 성공! 이걸 왜 지금 알았느냐고 한탄해도 어쩔 수 없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 게 여행이고 인생일 테니까. 마지막까지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 역시. 숙소가 있는 동먼으로 가려다 옵션 B였던 화산 1914로 가는 버스가 왔길래 냉큼 올라탔다. 숙소에서 걸어가면 20분 거리인 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저 찾아가는 길이 약간 애매하다는 말에 미루고 있던 곳인데, 전날 밤 불 꺼진 상점만 본 게 못내 아쉬운 까닭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화산 1914의 하이라이트는 작은 독립서점. 2층 아담한 공간에 어찌나 오밀조밀 잘 꾸며놓았는지, 그대로 복사해서 한국에 붙여놓고 싶을 만큼 탐나는 공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머무르며 책으로 가득한 공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싶었으나, 관심 없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엄마, 5분 지났어"라고 알람 노릇 하는 아들 덕분에 보는 둥 마는 둥. 결국, 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그 외 리빙 숍, 전시관은 나도 관심 밖이라 가볍게 발 도장만 찍었는데, 유료 관람이었던 '오징어 게임' 전시관은 과연 입장료를 낼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가볍게 패스했다.





됐다. 모든 아쉬움, 미련은 버리고 술이나 사러 가자. 그래, 나에게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가 남아있었다. 바로, 카발란 위스키 사기. 뽕주나 막걸리, 가끔 소주나 마셔대는 사람이라 위스키가 무슨 맛인지 몰라도, 국내 판매가의 1/3이라는 위스키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지 않은가. 아무리 다른 이들이 쇼핑 떼 샷을 올려도 '중독되면 살쪄. 시작을 말자' '우리나라 약이 더 좋고, 올리브영이 더 재밌어' 하면서 아랑곳하지 않았다만, 술만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100만 원이 넘는데 대만에서는 40만 원이 채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왜 또 흔들리던지. 먹는 게 남는 게 아니라 술 사는 게 가장 남는 일처럼 느껴졌다.



더 재밌는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위스키 두 병을 구매하자마자 큰아들이 자진해서 전담 마크했는데, 떨어뜨릴까 봐 우려했는지 아무리 무거워도 내 손에는 맡기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실시간 통화로 제 아빠에게 위스키 입고 예정임을 알리고 말이다. 한편, 되돌아가는 길에 현지인 맛집 향기가 물씬 나는 이자카야 한곳을 발견했는데, 이곳에 자리 잡았어야 하는 것을 '마지막 식사'에 너무 큰 의미를 둔 나머지 다른 식당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평범한 식사로 마무리하고는 많이 후회했더랬다. 가볍게 맥주 한잔하고 건너편 빙수집에서 입가심했어야 하는데…. 나는 돈을 아꼈던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올 구실을 만들기 위해 미련을 저축한 것인가. 마지막까지 이런저런 후회화 아쉬움에 뒤엉켜 하루 뒤 예정된 몸살을 부추겼으나, 누구 하나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시간이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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